스페인 빌바오와 대만 가오슝 <上>
대서양 대구로 풍요 누리다 어장 고갈·내전…고난 끝에 철광석 캐내며 산업 도시로
철광업도 쇠퇴하며 ‘생채기’시민단체 중심 재개발 나서 문화·친환경 도시로 거듭나
'비늘 같은' 구겐하임미술관·트램·모던한 지하철 입구…위기를 기회로 만든 롤모델
도시도 생명처럼 태어나 성장하다가 쇠락을 맞는다. 과거의 영광이 클수록 변화에 따른 생채기는 더 두드러진다. 이번에 소개할 두 도시 스페인 빌바오와 대만 가오슝이 그렇다. 국가 경제를 떠받치던 거대한 중공업 도시였지만 산업이 무너지는 위기를 맞았다. 회생 불가해 보이던 두 도시는 ‘문화’라는 새 피를 수혈받아 기적처럼 되살아났다. 단순히 건물을 새로 짓는 ‘재개발’이 아니라 산업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도시재생’의 진수를 보여 준 것이다.
바스크인의 고집스러움
한여름의 스페인이라니! 가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빌바오엔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더위가 없었다. 지척에 둔 대서양 덕분이다. 이곳 사람들은 여름에도 가벼운 재킷을 입고 강변을 거닌다. 이 낯선 여름 덕에 빌바오는 스페인 최고의 여름 휴양지가 됐다. 빌바오 방문의 최적기는 한여름인 7~8월이다. 다른 계절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잦은 안개가 낀다. 집마다 빨래건조대 위에 비를 막아 줄 우산 덮개를 씌워 놓는 재미난 풍경도 볼 수 있다.
빌바오는 독특한 날씨만큼이나 스페인 안에서 별종으로 불린다. 빌바오가 속해 있는 바스크 지방은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 국경에 걸쳐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자신을 바스크인이라고 부르며 스페인도, 프랑스도 아닌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산다. 언어도 따로 있다. 어느 어족에도 속하지 않는 신비로운 바스크어다. 이런 자부심은 정치적 독립을 향한 열망으로도 이어졌다. 바스크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무장조직 ETA의 탄생으로 발전했다. 1990년대 ETA는 바스크 독립을 외치며 폭탄 테러 등 과격한 움직임으로 도시를 공포에 빠뜨리기도 했다. 스페인 정부는 2018년 ETA가 공식 해산 선언을 할 때까지 수십 년간 억압정책을 펼쳤다.
이런 갈등에도 바스크인은 문화를 지키려 애썼다. 프로축구팀 아틀레틱 클루브가 대표적이다. 다른 명문 구단들은 스타 선수를 영입하지만, 이 팀은 바스크 혈통이거나 지역 출신 선수만 쓰는 ‘칸테라’ 정책을 고수한다. ‘채석장’이란 뜻의 이 정책은 지역 유소년을 키워 팀 선수로 만드는 장기적인 계획이다. ‘강등될지라도 영혼만큼은 안 판다’는 구단 철학은 바스크 공동체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125년 넘게 유지된 이런 고집 속에서 바스크 선수만으로 8번의 리그 우승과 24번 컵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팬들은 아틀레틱 클루브를 스페인 왕국이 짓밟지 못한 바스크 자부심의 상징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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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챙이에 꽂힌 지혜와 맛
중세시대 중심지인 ‘카스코 비에호’는 바스크의 정체성을 지키는 대표적인 장소다. 1300년대 만들어진 중세 골목에 들어서면 미식의 향연이 펼쳐진다. ‘핀초스’는 작은 빵에 신선한 해산물과 고기 등을 올리고 나무 꼬챙이로 꽂은 요리다. 겉보기엔 타파스와 비슷하지만 차이는 손이 아닌 꼬챙이로 집어 먹는 방식에 있다. 목축이나 작업장에서 일한 뒤 더러워진 손을 대지 않고 먹으려 했던 삶의 지혜다.
요즘 빌바오는 핀초스를 맛보기 위해 전 세계인이 찾는 미식의 성지다. 하지만 과거엔 산이 험해 농사도 짓기 힘든 곳이었다. 다행히 그들 앞에는 대서양이 있었다.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바다와 맞서 새로운 생계를 개척했다. 바스크 어부들은 살기 위해 대서양을 넘어 북해까지 나갔고, 거기서 잡은 대구를 오래 보관하려고 소금에 절이는 기술을 익혔다. 대서양을 잘 아는 바스크 선단과 좋은 소금밭을 가진 빌바오는 1000년간 이어진 기독교 규율 아래서 성장했다. 유럽 기독교는 사순절 40여 일간 육류 섭취를 금지해 대구는 육류 대용으로 주목받았다. 크고 보관이 쉬운 염장 대구는 단백질 보충수단이자 부를 가져다준 효자상품이었다. 대구어장이 당시 국가급 비밀이었던 이유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바스크 음식은 ‘바칼라우 알 필필’이었다. 바스크인은 풍부한 재료로 대구 요리인 바칼라우 알 필필을 만든다. 염장 대구를 불려 마늘과 고추를 넣고 올리브유에 약하게 끓여 내면 대구 껍질에 붙은 젤라틴이 기름과 섞여 크림 같은 하얀 소스가 된다. ‘필필’은 소스가 끓는 소리를 흉내 낸 단어다. 바칼라우 알 필필을 완성하는 행위는 단순한 요리가 아닌 척박한 현실에서도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꿔 낸 바스크 정신의 상징이다.
대구에서 철강으로
염장 대구로 풍요로움을 누렸던 빌바오는 19세기 초 어려움을 겪는다. 대서양 대구어장의 고갈, 냉장·냉동기술의 발달은 물론 스페인 내전 중 발생한 ‘게르니카 폭격’으로 바스크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살길이 막막해진 이들은 신대륙으로 대이민을 떠난다. 남미 혁명사의 큰 별인 체 게바라가 이때 이주해 간 바스크 출신이다.
이민으로 생긴 빈자리를 채운 것은 땅속에 묻혀 있던 철광석이었다. 실업률이 치솟던 19세기 중반 철광 개발이 인구 유입과 일자리를 만들며 도시가 되살아났다. 19세기 말 산업 변화가 광업 붐으로 이어지고 빌바오는 스페인 최대 철강·조선 도시로 변신했다. 1920년대 초 빌바오 주변 탄광 노동자만 3만 명이었다. 이곳 철강은 유럽 산업화의 기반이 됐다. 빌바오는 가난한 이민 도시가 아니라 세계 자본과 기술이 모이는 경제의 심장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척박해 사람들을 남미로 몰아냈던 바스크의 산이 산업 변화와 함께 부를 가져다줬다.
1970년대 철강산업의 쇠퇴와 아시아 조선업의 부상이 빌바오를 다시 한번 직격했다. 수출이 급감하며 공장은 잇따라 문을 닫았고 번영하던 도시의 심장이 서서히 멎어 갔다. 실업률은 30%에 달했고 빌바오의 동맥 역할을 하던 네르비온강은 산업 폐수로 썩어 갔다. 설상가상으로 1983년 발생한 대홍수는 도시의 70%를 침수시키며 빈사상태에 마지막 타격을 가했다. 모두가 “빌바오는 끝났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거대한 재앙은 시민들에게 ‘공포의 공감대’를 형성시켰다. 이는 변화의 강력한 동력이 돼 빌바오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프랭크 게리와 구겐하임
빌바오는 세계 도시 역사 속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을 이뤄 낸 곳이다. 공장 굴뚝으로 대표되던 도시는 이제 문화와 도시재생의 상징이 됐다. 그 중심엔 구겐하임미술관이 있다. 이 미술관은 구겐하임재단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난해 작고한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건물과 그 외벽을 장식한 티타늄 패널 3만3000개를 빼곤 이야기할 수 없다. 게리는 처음부터 고가의 소재인 티타늄으로 건물 외벽을 덮을 생각은 아니었다. 자신의 상상을 실현해 줄 외벽 소재를 찾던 중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을 바꾸는 티타늄을 발견했다. 티타늄은 태양의 방향에 따라 은빛에서 황금빛까지 보여 주는 마법 같은 효과를 지녔다. 그러나 너무 고가라 작업실 창가에 티타늄 조각을 걸어 두고 아쉬워만 했다고 한다.
그 무렵 소련이 해체되면서 군수물자로 보관하던 티타늄이 시장으로 대거 유입, 단가가 폭락했다. 게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냉전 끝에 만난 우연이 세계적인 미술관을 만든 것. 건물은 용의 비닐을 덮은 것처럼 웅장하게 반짝인다. 호기심 많은 이들은 미술관 내부 테라스에서 티타늄 외벽을 넋 놓고 감상한다.
위치 선정과정에 담긴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애초 빌바오시 당국은 도심 한가운데 오래된 와인창고를 부지로 제안했다. 빌바오를 방문한 게리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건물은 도시의 맥락과 대화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미술관을 위한 최적의 장소를 물색했다. 그렇게 빌바오의 동맥인 네르비온강변의 버려진 자동차 야적장을 부지로 택한다. 도시의 혈관처럼 강물이 흐르고, 과거의 조선소 흔적이 남아 있는 그곳이야말로 빌바오의 부활을 알릴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시 당국이 제안했던 와인창고는 빌바오문화센터가 됐다. 수영장 바닥을 유리로 만들어 올려다보면 사람들이 수영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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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포스터의 지하철과 트램
빌바오의 성공은 구겐하임이라는 거대한 조각품 하나로 이뤄진 건 아니다. 티타늄 외벽의 마법 같은 빛이 사람들을 현혹하는 동안 시민의 일상을 바꾼 것은 노먼 포스터다. 애플 신사옥인 애플파크 설계로 유명한 이 건축가는 지하철을 세상에서 가장 미니멀하고 모던한 장소로 만들었다. ‘포스테리토스’로 불리는 반구형 유리 캐노피 지하철 입구는 지상의 빛을 지하로 끌어들이고 내부 활동을 외부와 연결한다. 투명한 유리돔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마주하면 도시 전체가 빛으로 숨 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어디서나 보이는 플랫폼의 개방성은 사람들 눈에 잘 띄게 환경을 만들어 범죄를 막는 ‘범죄 예방환경 설계(CPTED)’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빌바오는 철거했던 트램 노선을 부활시켜 친환경 도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녹색으로 가득한 도심 정원을 달리는 듯한 트램은 누구라도 ‘이 도시는 자연과 가깝구나’라고 느끼게 한다. 트램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빌바오가 ‘빨리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머무르고 쉬는 곳’으로 바뀌었음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트램이라는 대중교통을 통해 보행자 중심의 살 만한 도시로 전환한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정부가 아닌 시민들이 만든 성과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시정부 대신 시민단체 모임을 중심으로 ‘빌바오 리아 2000’이라는 대규모 재개발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빌바오의 쇠퇴를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후 네르비온강변은 10년간 시민협의체를 중심으로 문화·상업지로 바뀌었다. 공공·민간협력 모델로 정치적 갈등을 넘어 도시의 미래만 바라보며 달려간 협력의 역사는 도시행정의 교과서가 됐다. 이 역사는 변화의 롤모델을 원하는 전 세계 도시가 벤치마킹하는 모범사례로 자리 잡았다.
변화는 위기의 다른 이름이다. 산업 변화는 빌바오가 쥐고 있던 염장 대구와 조선업의 주도권을 빼앗았다. 그러나 빌바오는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변화는 위기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빌바오는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이 연대해 재개발을 성공시킨 사례다. 오늘날 많은 도시가 빌바오의 전략을 따라 변화를 시도한다. 다음 편에 소개할 대만 가오슝에서 눈에 띄는 성공적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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