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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대 집중탐구] 24인의 시작 80년의 책임…멈추지 않는 K해군의 힘

입력 2026. 02. 03   17:36
업데이트 2026. 02. 0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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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대 집중탐구
해군군수사 정비창, 창설 80주년 맞는 전군 최초 정비부대

충무공정에서 이지스 구축함까지…
세계적 수준 군직 정비역량 보유
핵심 전투 정비능력은 군직 유지
민간은 선별 분담 ‘기술 분배’ 고수
IoT·AI 기반 스마트 정비체계 구축

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해군 전투력은 정비 현장에 의지해 서 있다. 그 현장이 무너지는 순간, 전투력 역시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 1946년 국군 최초의 정비부대로 출발한 해군군수사령부 정비창은 전쟁과 평화의 시간 속에서 전투 현장의 요구에 기술로 응답해 왔다. 함정 수명과 국가 전투 지속 능력을 동시에 책임져 온 정비창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 해군 기술 독립의 역사와 다름없다. 오는 27일 창설 80주년을 앞둔 해군군수사 정비창을 소개한다. 글=조수연/사진=조용학 기자

경남 창원시 진해 해군기지 내 해군군수사령부 예하 정비창 추진체계공장 고속직장에서 군무주무관들이 함정 엔진 정비를 하고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 해군기지 내 해군군수사령부 예하 정비창 추진체계공장 고속직장에서 군무주무관들이 함정 엔진 정비를 하고 있다.



국군 최초의 정비부대 ‘해방병단 조함창’

해군군수사령부 정비창의 뿌리는 광복 직후인 1946년 2월 27일 ‘해방병단 조함창’이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이는 육·해·공군을 통틀어 가장 먼저 창설된 국군 최초의 정비부대다. 일제가 남긴 폐허 위에서 시작된 정비창의 초창기 인원은 단 24명. 이들은 군복도 없이 작업복 차림으로 기름때 묻은 기계를 닦으며 대한민국 해군 정비의 첫 임무를 개시했다.

당시 손원일 제독은 함정 수리 능력 없이는 해군이 존재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진해 공창(工廠)에서 기술을 익혔던 한국인 기술자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예산과 자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 정비창은 부속을 직접 제작하며 함정을 살려 냈다. 그 집념의 정점은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함정 ‘충무공정’이다. 충무공정은 오늘날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는 해군 정비 기술력의 출발점이자 자주국방을 향한 기술 독립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 해군기지 내 해군군수사령부 예하 정비창 추진체계공장 고속직장에서 군무주무관들이 함정 엔진 정비를 하고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 해군기지 내 해군군수사령부 예하 정비창 추진체계공장 고속직장에서 군무주무관들이 함정 엔진 정비를 하고 있다.




군직 정비기술, 전투력 떠받치는 마지막 보루

오늘날 정비창은 이지스 구축함(DDG) 등 수백만 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복합무기체계를 정비하는 세계적 수준의 군직 정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단순 수리를 넘어 함정 전체의 상태를 진단하고 전투 지속 능력을 유지하는 고도의 기술 영역이다.

정비창은 핵심 군직 정비기술 개발로 연간 약 126억 원의 국방예산을 절감했고, 76㎜ 함포 선회베어링 조립체 등 군직 정비 전환으로 추가 절감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비용 절감을 이러한 성과의 본질로 보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군직 정비기술은 전시 대비 능력, 즉 민간 자원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전력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안보의 최후 안전판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비창 조직은 약 1300명 규모로, 이 중 현역은 40명가량에 불과하고 대부분 기술직 군무원으로 구성돼 있다. 순수 기술직 군무원이 조직을 떠받치는 구조이지만 인구절벽에 따른 아웃소싱 압박,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확대 논의가 더해지며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비창은 핵심 전투 관련 정비 능력은 반드시 군직으로 유지하고, 민간이 수행 가능한 영역만 선별적으로 분담하는 ‘기술 분배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

군직 정비 능력이 무너진 해외 사례에선 전력 유지 시스템이 붕괴된 사례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 사이의 정설이다. 정비창 관계자는 “100% 민간 아웃소싱은 전투력을 포기하는 선택”이라고 단언한다. 결국 전투함을 살리는 마지막 판단은 사람, 즉 숙련된 기술직 군무원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추진체계공장 고속직장에서 산업용 로봇이 함정 부품 세척작업을 대신하고 있다.
추진체계공장 고속직장에서 산업용 로봇이 함정 부품 세척작업을 대신하고 있다.

 

표준측정시험소에서 한 군무주무관이 인장검사기를 활용해 와이어로프 인장검사를 준비하고 있다.
표준측정시험소에서 한 군무주무관이 인장검사기를 활용해 와이어로프 인장검사를 준비하고 있다.

 

표준측정시험소 3차원 측정실에서 물체 측정을 하는 군무주무관.
표준측정시험소 3차원 측정실에서 물체 측정을 하는 군무주무관.



함정이 멈추지 않도록 만드는 스마트한 힘의 원천

정비창은 전군 최초로 사물인터넷(IoT) 기반 함정 정비 통합관제 플랫폼을 구축하고 정비 패러다임을 ‘사후 수리’에서 ‘사전 예측’으로 전환하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를 결합한 스마트팩토리는 함정 통합정비관리체계와 연동돼 실시간 정비 데이터를 시각화하고 ‘종이 없는 정비 현장’을 구현했다.

현재 호위함(FFG-Ⅱ) 3척에 시범 적용된 상태기반정비(CBM+) 체계는 주요 장비 10종의 이상징후를 사전에 포착하는데, AI 분석모델은 정비 예측 정확도 90%를 기록했다. 이는 불필요한 재고를 줄이는 동시에 함정의 작전 중단을 원천 차단하는 핵심 기술이다.

3D 프린팅을 활용한 자체 제작 시스템은 물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외산 단종 부품과 긴급복구 부품을 즉각 생산하며 현재까지 864종 1만여 점의 부품을 제작, 평균 조달기간을 6개월로 단축했다.

나아가 정비창은 글로벌 함정 MRO 플랫폼 구축으로 K함정의 해외 운용 신뢰성을 책임지는 ‘보이지 않는 품질보증기관’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  정연수(군무이사관) 정비창장
정비 현장 무너지면 전투력도 무너져… 가장 큰 자산은 사람

정연수(군무이사관) 정비창장은 지난해 3월 해군대령 예편 후 같은 해 4월 취임했다. 그는 자신에 관해 말할 때 직위보다 먼저 현장 얘기를 꺼낸다. 정 창장은 “현역 시절 기관 정비를 전담하는 엔지니어 장교였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함정에 올라 기관을 관리하고 잠수함 엔지니어 장교로 현장 경험을 탄탄히 쌓았다. 육상 근무 때도 정비창, 잠수함 수리창, 함대 정비지원조직을 경험했다.

정 창장의 시선이 바뀐 것은 예편 이후였다. 대령으로 예편한 뒤 곧바로 정비창장에 부임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이 조직을 기술직 군무원이 중심이 된 ‘순수 기술조직’으로 바라보게 됐다. 결국 기술에 능통한 전문가가 눈으로 확인하고 분해하고 판단하는 영역이라는 것.

그래서 정 창장은 기술직 군무원을 ‘대체 불가능한 전투자산’이라고 표현한다. 함정에서 일하는 환경은 이른바 ‘3D(Difficult, Dirty, Dangerous)’. 그가 부대원들의 처우 개선을 고민하는 것도 기술을 지키는 방식 중 하나다.

혹서기·혹한기 작업 중지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3D 직렬에는 전투 휴무를 부여하고 있다. 창장 주관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해 한낮 작업을 피하고, 현장 인력의 체력을 보호한다.

정 창장은 “‘정비 현장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전투력이 무너진다’는 말에는 과장이 없다”며 “정비창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처우 개선은 끝까지 밀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정비창이 아웃소싱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그가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 창장은 2016·2017년 펜타곤(미 국방부) 근무 당시를 떠올린다. 그때 군직 정비 능력을 잃은 국가는 전력 유지비와 주도권을 동시에 상실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정 창장은 “미 해군의 군직 정비 능력이 무너지는 과정을 현장에서 봤다”며 “코로나19 시기 미 해군은 군 정비창의 역량 저하로 함정을 민간 조선소로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민간은 건조 중심이어서 정비 대응이 되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수십 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핵심 전투 관련 정비 능력은 반드시 군직으로 유지해야 한다”며 “육·공군은 물량 분배 개념이지만, 해군은 기술 분배 개념이다. 배 전체를 민간에 맡겨도 최소 30%는 군이 직접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각종 첨단 과학기술을 정비 현장에 도입하는 데 대한 관점도 분명하다. 정 창장은 “이제 정비사는 고장을 고치는 이가 아니라 고장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기술전문가가 됐다”며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무거워진다”고 설명했다.

정비창 80년을 돌아보며 그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사람’이었다. 정 창장은 기술보다 태도를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내는 문화, 현장을 존중하는 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자세. 이것이 24명의 기술자로부터 시작된 정비창의 정신이고, 100주년에도 반드시 남아야 할 유산이라고 믿는다. 그는 부대원들을 향한 애정 가득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기술은 기록하고 이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임감과 사명감은 사람을 통해서만 전해집니다. 그래서 정비창의 가장 큰 자산은 언제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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