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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기란 결국 과거형… 다가올 황금기를 기다리며…

입력 2026. 01. 22   16:12
업데이트 2026. 01. 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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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 영화 속 미술 - ‘미드나잇 인 파리’와 예술의 황금기 

1920년대 파리로의 시간 여행
피카소와 스타인 등 내로라하는 거장들
밤새 토론하며 예술적인 영감 나눠
창조 원천, 허무와 상실감이었을지도


 ‘미드나잇 인 파리’ 메인 포스터 속 주인공 길이 파리 센강을 걷는 장면과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펼쳐져 있다. 2 아브라함 판 베이예런 ‘만찬 정물’, 1655년, 캔버스에 유채, 99.5×120.5㎝. 3 영화 속에 등장하는 피카소의 ‘거트루드 스타인 부인의 초상’. 사진=필자 제공
 ‘미드나잇 인 파리’ 메인 포스터 속 주인공 길이 파리 센강을 걷는 장면과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펼쳐져 있다. 2 아브라함 판 베이예런 ‘만찬 정물’, 1655년, 캔버스에 유채, 99.5×120.5㎝. 3 영화 속에 등장하는 피카소의 ‘거트루드 스타인 부인의 초상’. 사진=필자 제공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미국인 약혼 커플이 파리로 여행을 오면서 시작된다. 주인공 길 팬더는 바게트를 끼고 파리의 카페에 앉아 글을 쓰며,
다락방에서 살아가는 낭만적인 삶을 꿈꾸는 인물이다. 그에게 파리는 오래전부터 동경의 대상이다. 주변 사람들과는 결이 달라 인정받지도, 이해받지도 못했던 길은 어느 밤 쓸쓸히 거리를 걷다 자신을 부르는 자동차에 올라타며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그가 도착한 곳은 그토록 갈망하던 1920년대 파리였다. 그 순간부터 그의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그곳에서 길이 만난 인물의 면면은 화려하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노인과 바다』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현대 미술의 시작을 알린 파블로 피카소까지. 문학과 예술, 영화사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장과 비평가, 후원자가 한 장면 속에 공존하는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영화적 상상만은 아니다. 길이 도착한 1920년대 중반의 파리는 20세기 최초로 예술의 황금기를 맞이하던 시기였다. 실제 수많은 문화예술가가 파리에 모여 작품 활동을 펼쳤고, 그들이 교류할 수 있는 모임과 파티가 끊임없이 열리며 도시는 거대한 사교장이 됐다.

이 시기 문화와 지성의 중심지는 카페였다. 카페 드 플로르와 레 뒤 마고에는 문학가, 철학가, 예술가가 모여 밤새 토론을 이어갔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삶의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전쟁의 충격으로 환멸을 느낀 세대, 이른바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피카소, 피츠제럴드, 헤밍웨이는 밤의 카페에 앉아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고 대화를 나누며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다. 황금기를 만들어낸 그들의 창조 원천은 어쩌면 허무와 상실감이었을지도.

당시 카페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사교장이 있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등장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집이다. 1920년대 파리에서 내로라하던 예술가, 문학가, 비평가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스타인의 집에 모였다. 파리 문화예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던 스타인은 특유의 안목으로 미술과 문학작품을 비평했고, 이 집을 드나들던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인맥을 넓혀 갔다.

아브라함 판 베이예런 '만찬정물', 1655년,캔버스에유채,99.5×120.5㎝. 사진=필자제공
아브라함 판 베이예런 '만찬정물', 1655년,캔버스에유채,99.5×120.5㎝. 사진=필자제공


영화에서 피카소와 스타인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배경에 보이는 초상화는 피카소가 그린 ‘거트루드 스타인 부인의 초상’이다. 실제 인물과 얼마나 닮았는지 여부를 떠나 단단한 심지와 위엄 있는 분위기로 표현된 이 초상화는 스타인의 강한 존재감을 잘 드러낸다. 유럽과 미국에서 파리로 모여든 지식인과 예술가를 가리키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는 용어 또한 스타인이 만든 말이다. 그렇다면 ‘미드나잇 인 파리’ 속에서 거장들이 한 공간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과장이나 환상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재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길이 만난 1920년대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이 사는 시대를 황금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바라본 진정한 황금기는 1880~1890년대 파리, 이른바 벨 에포크 시대였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대’를 뜻하는 벨 에포크는 문화예술의 황금기로 불리기에 충분한 시기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네, 고흐, 고갱, 드가 역시 이 시기 파리에서 활동하며 서로 교류했다.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연극 전반에서 수많은 걸작이 탄생했다. 카페와 카바레 극장, 바는 밤새 불이 꺼지지 않은 채 파리의 밤을 장식했다. 이 시기 프랑스는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안정을 누렸고, 외부적으로는 식민지 건설에 힘을 쏟았다. 프랑스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장되며 문화와 교육, 과학이 함께 번성하던 시기였다.

그러고 보면 미술사에는 유독 황금기 혹은 전성기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서양 미술의 역사는 유럽 대륙 곳곳에서 피어난 여러 황금기를 엮어 하나의 흐름으로 만든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술에서 황금기라는 표현은 일반적 비유를 넘어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를 가리키는 고유한 용어이기도 하다. 16세기 말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공화국을 수립한 뒤 해상 무역을 중심으로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며 세계 최강국 반열에 올랐다. 부유한 상인과 중산층의 두터운 후원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회화 역시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 네덜란드 미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물화의 유행이다. 그것도 당시 네덜란드 사회가 누리던 부를 과시하듯 화려하고 풍성한 정물화다. 다채로운 색의 꽃, 윤기 나는 과일, 반짝이는 은식기, 죽은 사냥감이나 가재와 같은 고급 식재료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피카소의 '거트루드스타인 부인의초상'. 사진=필자제공
영화속에 등장하는 피카소의 '거트루드스타인 부인의초상'. 사진=필자제공


그러나 만약 이 그림들이 과시용에 그쳤다면 오늘날까지 주목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네덜란드 황금기 정물화는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풍요로움 뒤에 숨은 공허함과 덧없음을 함께 담아냈다. 한때 전 세계를 호령한 네덜란드의 황금기 또한 영원하지 않았고, 어느 나라에서 꽃피운 미술의 황금기든 결국 다음 세대와 다른 지역에 그 자리를 내줘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이 갈망한 1920년대 파리 이후, 예술의 황금기는 어디로 향했을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수많은 문화예술인은 유럽을 떠나 비교적 안전한 뉴욕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현대미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 1950~1960년대 뉴욕 현대미술 이후의 다음 황금기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황금기란 결국 시간이 흐른 뒤, 일정한 역사적 거리를 두고 후대가 붙이는 향수 어린 이름이기 때문이다.

황금기는 때로 경제적 번영을 발판 삼아 등장했고, 때로는 역사적 암흑기 속에서 척박한 땅을 뚫고 올라온 싹처럼 피어나기도 했다. 역사는 늘 그래 왔듯 또 다른 황금기가 도래하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처럼 말이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필자 김유미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관에서 교육을 연구하는 일을 맡고 있다. 동시대 미술에서 배움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필자 김유미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관에서 교육을 연구하는 일을 맡고 있다. 동시대 미술에서 배움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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