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1일 새벽 4시46분. 아덴만의 여명을 향해 고속단정이 파도를 가르던 그날의 긴장감이 15년이란 세월을 넘어 가슴을 뛰게 한다. 당시 대위로서 검문검색대(UDT/SEAL) 공격팀장을 맡았던 내게 ‘아덴만 여명작전’은 군인으로서 소명을 증명해야 했던 운명의 시간이자 인생에 새겨진 가장 뜨거웠던 기록이다.
작전 준비 중 1차 작전에서 부상으로 이송된 검문검색대장님의 피탄 고글을 썼다. 그 고글은 두려움을 떨쳐 낼 용기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동시에 안겨 줬다. 하지만 대원들 한 명 한 명의 실탄 장전소리를 듣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는 평소 ‘훈련의 땀 한 방울이 실전의 피 한 방울’이라는 신념으로 훈련해 온 전우들을 향한 굳건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전이 시작되고 삼호주얼리호를 오르던 가장 위험한 순간을 지나 선교를 장악하고, 석해균 선장님의 긴급후송이라는 고비를 넘긴 뒤 전 격실을 완전히 수색해 작전을 종료하기까지 모든 과정은 단 한순간도 기적이 아닌 적이 없었다. 그 기적은 현장 지휘관의 단호한 결단과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부대원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청해부대장이었던 조영주(예비역 해군준장) 부대장님은 최영함을 ‘21세기 거북선’으로 명명하며 우리 대원들을 사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솔선수범하며 현장을 지휘하셨다. 검문검색대 대원들은 수없는 반복을 통해 몸에 새겨진 조건반사적 움직임으로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도 최상의 팀워크를 발휘했다. 300명의 청해부대원이 각자 위치에서 혼연일체가 됐기에 ‘완벽한 구출작전’이라는 신화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15년이 흐른 지금도 작전 종료 후 대원들과 나눠 먹었던 초코파이는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맛으로 기억된다. 그것은 과자가 아니라 뜨거운 전우애였다. 작전을 마친 나에게 아내는 ‘당신은 해적 8명을 죽인 게 아니라 우리 국민 포함 선원 21명을 살린 것’이라며 다독여 줬다. 15년 전에는 없던 두 아이가 12세, 9세로 자라난 모습을 볼 때면 그날의 기억은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그날 지켜 낸 게 선박 한 척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평온한 일상이었음을 다시금 절감하며 대한민국 해군으로서 무한한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
아덴만에서 휘날리는 청해부대의 태극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국민에게는 무한한 자랑이자 해적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두려움의 상징이다. 아덴만의 여명은 대한민국을 밝히는 영원한 빛이 될 것이다.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