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 조지아 트빌리시와 태국 치앙마이<上>
해외에서 한 달 살기 13년째…어느새 51번 거듭하며 느낀 깨달음은
동떨어져 보이는 두 도시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조지아어로 ‘따뜻한 곳’을 의미하는 트빌리시는 태국 치앙마이를 떠올리게 한다
태초의 와인이 시작된 곳, 숱한 침략 속에도 민족적 자긍심 잃지 않은 곳
수영장에선 반드시 슬리퍼를 신어야 하는 위생문화 경험에서 여행자의 미덕을 생각해 보자
2013년 처음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13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51번째 ‘한 달 살기’를 마쳤다. 오랫동안 배낭여행을 하며 유명한 랜드마크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만으론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 갈증이 있었다. 다행히 ‘한 달 살기’라는 여행법을 통해 풀 수 있었다. 위치도, 인종도, 언어도 다른 도시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공통점은 우리를 흥분시켰다.
세계 여러 곳에서 한 달을 보내다 보니 다른 듯 닮은 도시를 발견하게 된다. 그중 조지아 트빌리시와 태국 치앙마이는 얼핏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인다. 트빌리시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치앙마이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자리한 동남아시아 도시다. 두 도시는 전혀 다른 대륙에 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로 불린다는 점이다. 세계를 유랑하는 디지털 노마드는 특정 도시에 매료돼 오래 머물곤 한다. 디지털 노마드가 특정 도시에 매혹돼 장기 체류하는 건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유라시아의 교차로에서 8000년 와인의 향기를 지켜 온 조지아 트빌리시와 태국 북부 고산지대에서 느림의 미학을 예술로 승화시킨 치앙마이가 바로 그런 곳이다.
|
‘따뜻한 곳’에서 피어난 불멸의 영혼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우리에게 낯선 땅이다. 천천히 들여다보면 와인과 음식, 저렴한 물가 등 흥미로운 점이 많다. 조지아어로 ‘따뜻한 곳’을 의미하는 트빌리시는 5세기경 조지아의 군주가 사냥을 나왔다가 따뜻한 물에 빠진 꿩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지형적 이점과 온천에 반한 왕은 수도를 트빌리시로 옮긴다. 트빌리시의 아바노투바니 유황온천지대는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도 극찬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푸시킨은 조지아 방문 이후 이 땅에 흠뻑 취했던 모양이다. 트빌리시 온천뿐만 아니라 “조지아 음식은 한 편의 시와 같다”는 칭송도 했다.
트빌리시의 역사가 이름처럼 따뜻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 땅은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다. 캅카스산맥을 등지고 흑해와 카스피해를 잇는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탓에 오스만제국, 페르시아, 몽골부터 현대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복자의 발길에 짓밟혔다. 그럼에도 그들이 견뎌 낼 수 있었던 힘은 ‘와인’ ‘기독교’ ‘고유문자’에 있었다.
|
8000년을 이어온 신의 선물 크베브리 와인
조지아에선 끼니마다 와인이 필수다. 조지아인은 아무리 마셔도 술에 취하지 않는지 이른 아침 버스 안에서도 술냄새가 난다. 와인을 마신 뒤 우리만 비틀거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물보다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 앞에서 그야말로 무장해제당했다.
조지아인에게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태초의 와인이 바로 조지아에서 시작돼서다. 크베브리는 800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전통 양조법이자 조지아 와인 그 자체를 뜻한다.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크베브리는 점토 항아리를 땅속에 묻고 포도 껍질과 씨를 통째로 넣어 발효시키는 방식인데, 인위적인 조작 없이 자연의 힘으로 빚어낸다. 조지아인은 와인을 지키는 게 신이 자신들에게 내려준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조지아인은 잦은 전쟁에도 와인을 만들고, 슬픔을 잊고, 내일을 꿈꿨다.
나리칼라요새 언덕에 서 있는 ‘조지아 어머니상’은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엔 친구에게 건넬 술잔을 들고 있다. 고난 속에서도 이방인을 향한 환대를 잊지 않겠다는 그들의 단단한 의지다.
조지아에는 ‘수프라’라고 불리는 성대한 잔치문화가 있다. 이 술자리에는 반드시 ‘타마다’로 불리는 사회자가 자리한다. 신과 평화, 건강을 기원하며 건배사를 주도한다. 그저 술자리 진행자가 아니라 타마다의 허락이 없으면 술잔을 입에 댈 수조차 없다. 그만큼 재량이 막강해 그날 마실 술의 종류, 건배 횟수, 건배사 내용까지 모두 결정한다. 멋진 건배사와 분위기를 휘어잡을 줄 아는 타마다는 인기가 높아 수프라에 초대하려면 일찌감치 예약해야 한다.
|
고난을 견뎌 낸 신앙과 문자의 힘
트빌리시에서 지내다 보면 볼 수 있는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정교회당을 지날 때마다 성호를 긋는 현지인의 모습이다. ?버스에 타고 있어도 성당이 보이면 그리하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성호를 긋는 광경에 놓일 때도 있다. 신과 종교를 대하는 그들의 신실함은 널리 알려져 있다. 조지아는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초기 국가 중 하나로 337년부터 정교회 신앙을 지켜 왔다. ‘지켜 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주변 이슬람 세력의 압박에도 믿음을 이어온 것은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트빌리시에서 가장 큰 성당인 트리니티 성당 안에는 외세의 침공 당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이들을 그린 성화가 하나 걸려 있다. ‘이슬람으로 개종이냐’ ‘목이 잘리느냐’의 선택 앞에서 많은 조지아인이 목숨 대신 신앙을 지켰다. 성화에 그려진 강 위에 목이 떠다니는 장면은 조지아에선 종교가 단순한 믿음이 아닌 민족적 정체성 그 자체였음을 보여 준다.
조지아인은 자신들만 사용하는 고유문자를 지녔다. 3가지 다른 표기법이 존재하는 이 문자는 외세에 맞서 그들의 영혼을 지켜 온 유산이다. 일제의 핍박에도 한글을 지킨 우리 민족과 닮았다.
우리가 방문한 시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 차례’라는 생각 때문인지 인접국이자 문화와 역사가 닮은 우크라이나에 강한 유대감을 보였다. 트빌리시 거리 곳곳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 있었던 이유다. 러시아의 침략에 강한 연대의식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오랜 역사가 곧 저항과 자유를 향한 갈망이어서다.
|
독재자의 인간적 단면: 스탈린의 흔적
트빌리시에는 여러 투어상품이 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소비에트 투어다. 조지아는 과거 소비에트연방(소련)에 속해 있었다. 투어는 1991년 해체된 소련 시절 배급했던 주택을 방문한다. 부호의 주택 하나를 여러 세대가 공간 분할해 사용하는 모습은 지금 보면 기괴할 정도다.
소비에트 투어를 즐기는 동안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오시프 스탈린이다. 조지아 출신인 스탈린은 원래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청년이었으나 볼셰비키 혁명에 참여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 됐다. 흥미로운 점은 수많은 정적을 처단하며 냉혹한 독재자로 군림했던 스탈린이 유독 자신의 어머니에게만은 무척 약한 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트빌리시를 내려다보는 언덕 므타츠민다 판테온에는 스탈린의 어머니 묘가 있다. 스탈린이란 인물의 복합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장소다.
|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 옛 공간의 화려한 변신
트빌리시는 언제부터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의 사랑을 받게 됐을까? 팬데믹 시기를 전후해 디지털 노마드들은 트빌리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조지아의 1년 무비자정책과 저렴한 생활비, 음주에 관대한 문화, 안정적인 인터넷 환경이 주요 매력으로 작용했다. 또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쪽 육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인의 유입이 폭증하면서 본격적인 허브로 성장했다.
디지털 노마드는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가장 유명한 디지털 노마드 명소는 파브리카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군복과 작업복을 만들던 봉제작업장을 대형 호스텔, 카페, 레스토랑, 코워킹 스페이스로 재탄생시켜 트빌리시의 디지털 노마드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수영장에서 만난 공산권 보건문화
트빌리시에서 겪은 가장 독특한 경험은 현지 수영장에서다. 공산주의 시절의 흔적이 남은 조지아의 공중보건 시스템은 매우 엄격하다.
수영 월 정액권을 구매하기 전 보건 담당 의사의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단순히 혈압을 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양말을 벗어 발 상태, 즉 무좀이 있는지도 확인받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물에 들어가기 전까지 반드시 슬리퍼를 착용해야 한다. 샤워장에서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수영장으로 이동할 때는 슬리퍼를 신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몰라 맨발로 걸어 다니다가 관리인에게 크게 혼쭐나기도 했다. 공산권의 철저한 공공위생 관념이 만든 독특한 풍경이다.
트빌리시 수영장에서 슬리퍼를 찾아 신으며 ‘이 신발이 우리가 타국의 문화를 대할 때 혹은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맨발(=상식)이 아무리 편해도 그 땅의 흙을 밟기 위해선 그들이 마련한 슬리퍼(=규칙)를 신어야 한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야말로 진짜 여행자의 미덕이란 생각과 함께 트빌리시를 떠나 치앙마이로 향했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