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훈련병의 편지

선택의 순간, 해병대를 택하다

입력 2026. 01. 14   15:40
업데이트 2026. 01. 1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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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나 복수국적을 갖게 됐다. 두 살 때 우리나라로 돌아왔고,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다시 미국으로 가 학창 시절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솔직히 말해 어린 시절엔 군 복무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며 군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아버지는 “너는 복수국적자이지만 동시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며,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아버지의 확고한 신념을 곧 받아들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UC버클리대에 진학해 학교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SNS로 해병대 관련 영상을 접했다. 영상 속 문구 하나가 강하게 마음에 남았다. “안 되면 될 때까지!” 그 문장을 보면서 이런 정신을 가진 조직이라면 군 생활을 넘어 앞으로의 삶에도 큰 자산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병대 입대를 결심했다.

복수국적자란 사실을 아는 지인들은 왜 굳이 해병대를 선택하냐고, 사서 고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어차피 이행해야 할 병역이라면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곳을 선택하고 싶다고 답했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군 복무가 아니라 ‘안 되면 될 때까지’라는 정신으로 도전하고 성취하며, 성장하고 싶었다.

입대 후 마주한 환경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였다. 몸은 힘들었지만, 훈련교관들의 절도 있는 행동과 강인한 태도는 다시 한번 해병대에 매료되게 만들었다. 그들과 같은 해병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분명해졌다. 산악전훈련, 각개전투, 천자봉 고지정복훈련이 연달아 진행된 극기주는 체력과 정신력을 한계까지 몰아붙인 경험이었다. 지친 몸과 마음에 약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동기들과 함께 버티며 끝까지 완주했다. 우리를 이끌어 주신 훈련교관들의 이름을 빛내고 싶다는 마음도 큰 힘이 됐다.

이제 ‘빨간명찰’을 달고 수료만을 남겨 두고 있다. 입대한 순간부터 극기주를 거쳐 수료를 앞둔 지금까지 해병대를 선택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교육훈련단에서의 시간은 국방의 의무가 무엇인지, 국가를 위한 헌신이 무엇인지 몸과 마음으로 깨닫게 해 줬다. 2개의 국적을 가졌지만 선택한 책임은 하나였다. 대한민국 해병대원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어떤 자리에서든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해병대원으로서 당당히 살아가겠다.

이선재 이병 해병대교육훈련단
이선재 이병 해병대교육훈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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