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다른 이름, 생존
나를 지키는 판단, 전우 살리는 처치
이동 쉽지 않은 함정 안에서 초기 응급처치 관건
승조원 개개인 숙련도가 ‘전우 생존 가능성’ 좌우
육·해상부대 12개 팀 ‘골든아워 사수’ 진검승부
속도가 생명…80㎏ 더미 들고 계단 오르락내리락
피격 상황 등 ‘해군 특수성’ 맞춰 실전 같은 훈련
전투 현장에서 의무요원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과 전우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전투부상자처치(TCCC) 개념은 해상과 함정이라는 특수한 전장 환경에 놓인 해군에게 더욱 절실하다. 함정은 평지와 달리 이동이 쉽지 않고, 교전이나 화재 상황에선 병원 후송도 지연될 수 있다. 그만큼 초기 응급처치의 신속성과 정확성이 생존성을 좌우한다. 해군2함대 TCCC 경연대회 현장에서 그 중요성을 증명하는 장병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글=조수연/사진=조용학 기자
실제 같은 공간, 실전 같은 경연
13일 해군2함대 화생방훈련장에서 TCCC 경연대회가 열렸다. 좁은 격실과 철제 계단, 낮은 천장까지 실제 함정과 똑같이 구현된 공간. 평소에는 화생방·손상통제훈련이 주로 이뤄졌지만, 이날은 부대가 공들여온 TCCC 훈련 성과를 평가하는 경연이 펼쳐진 것이다.
부대는 이날 해상·육상부대 장병 60여 명이 참가하는 TCCC 경연대회를 실시했다. 육상·해상부대 12개 팀이 참가했다. 각 팀은 장교 1명, 부사관 1명, 병 3명 등 총 5명으로 구성됐다.
의무요원은 참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투 중 누군가 다쳤을 때 특정 인원만이 아니라, 근무자 누구나 골든아워에 전우를 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대회는 해군 전장 환경에서 ‘전우를 살릴 수 있는지’를 끝까지 검증하는 자리였다. 이번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상황이 사전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상자 선정, 부상 유형, 장소, 이동경로까지 모두 무작위로 부여됐다. 팀원들이 순발력 있게 역할을 나누지 않으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박한얼(대위) 간호과장은 “특정 상황만 반복 연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요소를 랜덤으로 설정했다”며 “실제 전투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회는 실제 전투 상황을 반영해 CO2 재킷을 착용한 채 두 명의 부상자를 동시에 처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눈길을 끈 것은 실제 인원과 함께 80㎏에 달하는 더미를 활용한 점이다. 의식을 잃은 성인 남성은 체감 무게가 더 커진다는 사실을 반영해 부상자 이동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그대로 적용했다. 더미는 머리 부분만 들어도 쉽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함정이 가진 특성에 따라 계단을 반복해 오르내려야 하는 상황도 주어졌다. 모든 게 해군의 전투 환경을 고려한 조치다.
장병들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처치와 후송에 집중했다. 격실 안에서 부상자를 찾아 긴급 지혈했고, 함포 피격 상황을 가정해 피해가 없는 구역으로 옮겨 본격적인 처치를 이었다.
현장에 배치된 의무교관 4명의 손에는 평가표가 들려 있었다. 평가표에는 41개에 달하는 평가 항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평가자로 나선 교관들은 ‘참가자들이 얼마나 빨리 응급처치 하는지’보다 ‘정확하고 현실성 있는 조치를 하는지’를 과정 하나하나 촘촘히 살폈다.
들것에 부상자를 바르게 들어 올렸는지, 이동 중 추가 손상 위험은 없었는지까지 평가 항목에 포함됐다.
돌발 압박 질문도 이어졌다. 교관들은 장병들에게 “지혈 거즈가 오염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분이 없다면 다음 조치는 무엇입니까?” 등을 물었다. 압박 붕대법이 정확하지 않은 장병에게는 “이 상태로는 출혈이 계속된다”며 정확한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질문과 피드백을 반복했다.
유도탄고속함(PKG) 박동혁함에 근무하는 최수창(소위) 전투정보관은 “두 달 이상 팀원들과 훈련했음에도 평가받는 자리에선 사소한 부분을 많이 놓친 것 같아 아쉽다”며 “승조원 총원이 응급상황에 초기대응할 수 있도록 TCCC 기술 숙달에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해군 특성에 맞춰 반복 훈련
함정 내부에선 부상자를 끌어 운반하는 ‘끌기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출입문과 통로가 좁고 구조물이 많아 환자를 끌면 오히려 추가 부상 위험이 커진다. 이 때문에 함정에서는 기본적으로 부상자를 들어서 옮겨야 하는데, 통로 폭이 좁아 여러 명이 동시에 이동하기도 쉽지 않다.
육상과 달리 해상의 함정에선 지원 요청과 의료인력 투입도 즉각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육상에서는 상황에 따라 외부 의료진이나 전문인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함정은 정박보다 해상에 나가 있는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이다. 해상에서 교전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전문 의료요원은 함정당 의무장교 1명에 불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TCCC 절차를 정확히 숙지하고 반복 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군에서의 응급처치는 ‘누가 오기 전까지 버티는 처치’가 아니라 ‘전우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이어지는 초기 대응’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이는 곧 승조원 개개인의 숙련도가 전우의 생존 가능성을 좌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 간호과장은 해군 TCCC의 특수성에 대해 “육군이나 공군은 비교적 빠른 후송이 가능하지만 해군, 특히 함정은 외부 의료인력이 즉시 진입하기 어렵다”며 “함정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중증도 분류와 대량 출혈 처치가 얼마나 정확히 이뤄지느냐가 생존을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TCCC 교육 역량 집중하는 2함대
2함대는 일반 장병도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교육 기회를 확대하면서, 해군에 맞는 TCCC 체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함정 구역별로 전투인명구조(CLS) 요원을 지정해 교육하고 있지만, 특정 인원이 아닌 전 인원이 전술적 응급처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도 넓혀가고 있다. 장병들의 역량이 기존에는 심폐소생술 수행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전투 상황에서 즉각적인 응급처치까지 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는 2함대가 지난해 발간한 『응급처치 가이드북』도 적극 활용됐다. 2함대는 가이드북을 손바닥 크기의 소형 책자로 제작해 장병들이 언제든 휴대할 수 있도록 했다.
박 간호과장은 “비의무 인원이나 일반 장병이 단기간 교육 내용을 모두 소화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며 “교육 이후에도 스스로 복습하고 상황을 가정하며 고민할 수 있도록 가이드북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경연대회를 기획한 이찬양(소령) 의무대장은 “실제 전투 상황을 반영한 대회를 통해 장병들이 침착하고 정확한 TCCC 능력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도 실전적 교육과 훈련을 지속해 전우의 생존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해군의 TCCC는?
TCCC는 전장에서 전투원의 생존성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는 응급처치법이다. 해군은 2024년 12월 작전사령부 차원에서 TCCC 개념을 최초 도입했다. 이런 결심에 따라 2함대도 지난해 상반기부터 TCCC 전문교관 양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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