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간서치를 보고 싶다

입력 2026. 01. 08   14:58
업데이트 2026. 01. 0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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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운영 중인 책방 문을 열다가 문득 ‘간서치(看書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책에 미친 바보’라는 뜻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책이 넘쳐나지만 읽는 사람이 별로 없는 시대에 ‘간서치’란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청소년의 문해력이, 사회지도층의 도덕불감증이, 분노조절장애가 어떻다는 말이 들릴 때마다 간서치는 더욱 그리운 존재로 다가온다.

2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2003년 국방FM(현 KFN 라디오)에서 ‘책마을 사랑방’의 진행을 맡은 적이 있다. 매주 일요일 오후 4~5시 한 시간 동안 방송되는 책에 관한 내용으로만 채워진 프로그램이었다. 국군 장병들을 주된 청취자로 하는 방송이었지만, 전파 경계가 없는 만큼 일반인 청취자의 반응도 적지 않았다. 매주 의미 있는 책 한 권을 선정해 저자를 직접 스튜디오로 초대해 대담시간을 갖는 한편 성우들이 책의 일부를 드라마 형식으로 낭독해 주는 코너, 출판사 탐방, 여행 중인 장병들과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 신간 안내코너 등으로 꾸며 나갔다.

‘책마을 사랑방’은 그렇게 그해 봄부터 가을까지 30회가 방송됐다. 그때 스튜디오에서 만난 저자와 출판일꾼들, 책 읽기에 빠진 장병들의 모습에서 우리 출판문화의 현실과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언제나 불황기에 있는 출판계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자기가 만든 책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려는 편집자들의 열의와 함께 독서야말로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라는 믿음의 소유자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마을 사랑방’을 마친 뒤에도 ‘국민과 함께 국군과 함께’에서 ‘좋은 책을 들려드립니다’라는 코너를 맡아 좋아하는 책을 소개할 수 있었다.

공자(孔子) 어록으로 알려진 『논어(論語)』의 첫 장인 ‘학이(學而)’ 편 첫 문장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로 시작된다. 여기서 파생된 단어가 바로 배우고 익힌다는 뜻의 ‘학습’이다. 특히 ‘습’이란 글자는 “부리가 하얀(白) 어린 새가 끊임없이 날갯짓(羽)을 연습함으로써 끝내 스스로 날아오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복습’한다는 말을 쓰곤 하는데, 바로 그 뜻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공자는 또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말을 남겼다.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었다”는 뜻으로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現)’과 함께 책 읽기의 고단함 혹은 그 방법을 일러 주는 경구로 알려져 있다. 이 말들이 생겨난 시절의 책은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책이 아닌 이른바 ‘죽간(竹簡)’이었다. 대나무를 쪼개 엮어 만든 형태로 ‘책(冊)’이라는 낱말을 파생시킨 매체였으며 ‘위편삼절’은 죽간을 엮었던 가죽끈이 세 번씩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읽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책을 학습수단으로 요긴하게 이용해 왔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당시 죽간을 만들고 거기에 필사하는 일과 그것을 둘둘 말아 놨다가 틈나는 대로 펼쳐 읽기란 또 얼마나 번거로웠을까. 게다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져 나가도록 읽었다니! 온갖 첨단 매체가 즐비한 오늘날, 우리는 ‘위편삼절’은커녕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이라도 책을 읽긴 하는 걸까. 특히 학습의 뜻을 온몸으로 느끼고 진리를 깨닫고자 몸부림쳐야 할 청소년과 장병들에게 ‘책’은 어떤 존재일까.

책을 읽지 않아 바보가 되느니 책에 미친 바보가 많은 세상이 더 이롭지 않을까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김기태 세명대학교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교수
김기태 세명대학교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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