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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질게、 海맑게 … 오래 살펴야 보인다

입력 2026. 01. 08   16:23
업데이트 2026. 01. 0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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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옛 그림 속 숨은 이야기(14) -  관찰로 세상을 살피다 ‘어개화첩’


조선 어해도 대가 장한종의 사실적 묘사 
조개 껍데기 결, 꽃게 털까지 세밀하게
식재료 벗어나 애정·관찰의 영역 확장
시대가 원하던 ‘하이퍼리얼리즘’ 실현

장한종 어개화첩 2면_ 꽃게와 가오리(홍어)
장한종 어개화첩 2면_ 꽃게와 가오리(홍어)




멀리 떠난 휴가지에서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흑백요리사’를 보게 됐다. 여러 식재료가 나왔는데, 셰프들이 선호하는 재료 중 하나가 ‘꽃게’였다. 꽃게살을 잘못 발라내 입에 조각 하나라도 걸리면 탈락의 기로에 서야 했고, 탈락이 결정되는 중요한 자리에서 한 셰프는 ‘꽃게의 헤엄치는 발’만을 골라 주재료로 삼는 치밀한 승부수를 던졌다. 심사위원의 미각과 이를 만족시키려는 참가자의 치밀한 계산, 그리고 허를 찌르는 전략과는 무관하게 전공이 옛 그림인지라 머릿속에는 꽃게를 보자마자 도식적으로 ‘장한종’과 특이한 화첩 하나가 떠올랐다. 

‘어개화첩(魚介?帖)’은 장한종이 남긴 강가와 바닷가에 사는 어패류를 총 8첩의 그림으로 구성한 화첩이다. 전체 화첩에는 ‘옥산후인(玉山后印)’ ‘장한종인(張漢宗印)’이 찍혀 있다. 이 화첩이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일반적인 물고기 그림과 다르게 조개와 낙지, 가오리(홍어), 소라 등 우리가 흔하게 먹는 것들이 도감처럼 아주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부터 물고기와 게 등 강가와 바다의 물속 생물을 표현한 ‘어해도(魚蟹圖)’를 그렸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13세기에 문인화가인 정득공이 그렸다는 기록과 공민왕이 잉어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이어도(鯉魚圖)에 대한 기록이 있다. 예로부터 물고기·게 등 강가와 바닷속 생물들의 그림은 시의 소재가 되는 문화적 아치를 넘어 유교문화와 접목돼 왕과 신하의 관계, 입신양명, 출세, 복록, 다산 등을 축원하는 것으로 그 뜻이 넓게 파생됐다.

먼저 ‘어개화첩’을 살펴보자. 첫 면인 ‘복사꽃과 쏘가리’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많이 인용되는 소재와 시어다. 복숭아 가지에 흩날리는 도화꽃 사이로 쏘가리가 있다. 이는 ‘어부가(漁父歌)’로 유명한 당나라 시인 장지화의 유명한 시어에서 빌려온 시구로, 많은 화가가 봄날의 정겨운 소재로 인용해 복사꽃과 쏘가리 그림을 그렸다.

“서새산 앞에는 백로가 울고 복사꽃 흐르는 물에는 쏘가리 살쪄 있네(西塞山前白鷺飛, 桃花流水?魚肥).”

서새산은 중국 절강성 호주시 남서쪽에 있는 산이며, ‘궐어’는 쏘가리를 뜻하는 한자어다. 후대에는 이를 인용해 사람들은 쏘가리를 궁궐에 들어가는 물고기로 생각해 입신양명할 수 있는 복이 담긴 그림으로 따로 그렸다. 시구처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쏘가리는 옆으로 눕히거나, 등을 구부린 자세를 그렸다.

두 번째 장면에는 ‘가오리(홍어)와 꽃게’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꽃게와 가오리(홍어)의 모습이다. 예로부터 홍어목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를 가오리라고 통칭했고 홍어는 암수 구별이 가능한데, 암컷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꽃게는 등껍데기를 비롯해 날카로운 집게발과 발마다 다른 모양과 색깔, 털, 관절까지 채색도 다르게 해 아주 세밀하게 표현했다.

원래 중국에서도 게는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의미로 그려졌다. 향시(鄕試) 1등을 해원(解元)이라 불렀는데, ‘게(蟹)’를 차용해 같은 소리로 바꾸어 그린 ‘게 한 마리’ 그림이 향시에서 1등을 하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게의 딱딱한 껍질도 ‘갑(甲)’을 상징, 최종 시험인 전시(展試)에서 최상위 3명을 ‘일갑(一甲)’이라 불러 장원급제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 번째는 ‘붕어와 미꾸라지’다. 버드나무 가지 아래로 물가에 있는 미꾸라지와 붕어를 그렸다. 붕어는 비늘마다 먹점을 찍어 질감을 표현했다. 네 번째 화첩에는 바위 위에 소라라고 부르는 피뿔고둥과 맵사리로 보이는 다양한 크기의 고둥, 꼴뚜기, 갯가재를 그려 넣었다. 다섯 번째는 자라와 물고기를 주제로 그렸고, 국화처럼 보이는 꽃이 주변에 피어 있다.

여섯 번째는 조개가 주인공으로, 화면 상단에 모시조개라고 부르는 가무락조개가 다양한 구도로 그려졌다. 그 아래로 네모난 가리맛조개, 새알조개, 조그만 담치류까지 그려 갯벌에서 만날 수 있는 조개들을 보여준다.

그다음으로 뻘갯벌에 살고 있는 농게와 낙지, 새우를 그렸다. 농게는 집게발이 크고 몸 전체가 붉다. 농게와 낙지는 앞뒤의 모습을 보여주며 생물의 구조를 하고 있다. 농게는 등과 배 부분을 각각 한 마리씩 그렸다. 낙지도 앞부분과 안쪽의 출수구 등을 세밀하게 관찰해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백합과 갯강구가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백합을 요리조리 둘러본 듯 다양한 각도로 그리고 있다. 껍데기의 결 모양도 각각 세필로 공들여 그렸다. 갯강구로 보이는 절지동물류도 함께 그렸다. 전체 화첩을 읽어보면 소재는 물가와 강가, 갯벌에 있는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일반적인 축수의 목적을 가지고 제작하는 그림병풍과 다르게 소재를 바라보는 방식과 묘사의 수법에서 ‘관찰’이라는 의도를 명확히 알아챌 수 있다.

그림을 그린 장한종은 당대의 유명한 화원화가였다. 그는 화원을 배출하는 가문으로 유명했던 인동장씨 집안 사람이었다. 장인도 당대 유명한 화가였던 김응환이었고, 아들과 손자 역시 모두 화원으로 활동했다. 장한종의 이력은 화려했다. 일찍이 20대 초반인 1788년부터 1815년까지 무려 27년간 규장각 소속의 차비대령화원으로 일했다.

유재건이 쓴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는 장한종이 소년 시절 숭어, 잉어, 게, 자라 등속을 사다가 자세히 그 비늘과 껍질을 살펴보고 모사했다고 전한다. 대표작으로 전하는 ‘어해도’ 8폭 병풍은 수십 종의 물속 생물을 그렸다. 이렇게 습득한 기술은 장한종의 또 다른 작품 ‘책거리’ 병풍에서 각 기물을 자세히 묘사한 부분과도 연결된다.

규장각의 초계문신이던 남공철은 장한종의 게 그림에 제시를 남기기도 하고, 100여 종이 넘는 물고기가 있는 어해도를 봤다고 기록하고 있어, 아마도 사실적인 경향의 어해도가 당시 관심을 받던 그림의 종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장한종 역시 당시 규장각에서 접했던 시대적 학문 경향인 박물학적 지식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돌이켜보면 장한종은 자신이 몸담고 있던 화원 가문의 소재 선택이나 시구, 상징에서 벗어나 관찰 영역으로 들어서며 당시의 학문이 요구했던 ‘하이퍼리얼리즘’을 실현한 화원이었다.

장한종의 화첩을 다시 들여다보며 새해에는 작년과 다르게 조금이라도 주변 관찰을 시작하자고 다짐한다. 이렇게 시작한 관찰이 나의 큰 변화를 이끌 수도 있다.

장한종 ‘어개화첩’ 4면 소라, 고둥, 갯가재와 7면 낙지, 농게, 새우.
장한종 ‘어개화첩’ 4면 소라, 고둥, 갯가재와 7면 낙지, 농게, 새우.



 ※ 화첩에서 제시한 생물 이름은 윤종균의 ‘장한종 어해도 소재의 생태학적 분석 및 장황 재구성’ 연구를 인용, 수록했다.

한세현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
한세현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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