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배 위에서 밤새 일렁거린 가슴…
푸른 여명 깨치고 섬을 찾다, 아니 산에 닿다
겨울이면 거친 파도에 닿기 힘들던 곳
개항 앞둔 울릉공항,
곧 서울서 1시간 거리로
굳이 7시간 크루즈 타는 이유라면
새벽녘 선실 창에 스며든 빛에
자태 드러내는 가슴 벅찬 푸른 실루엣
풍랑주의보에도 끄떡없는
카페리에 기대를 싣고
하얀 겨울의 섬을 마주하러 가보자
울릉공항이 개항을 앞두고 있다. 머지않아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한 시간이면 닿는 시대가 온다. 하지만 비행기로는 경험할 수 없는 게 있다. 자정 무렵 경북 포항시를 출발해 동해를 가르며 보내는 7시간의 항해, 새벽녘 선실 창으로 스며드는 푸른 여명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화산섬의 실루엣. 느린 여정에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동해 한가운데 솟아오른 울릉도는 겨울이면 하얀 눈에 뒤덮인다. 육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적설량과 깎아지른 해안 절벽,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설경이 펼쳐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겨울철에는 울릉도에 닿기 어려웠다. 작은 쾌속선들이 번번이 결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 카페리 ‘울릉크루즈’가 취항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풍랑주의보에도 운항하는 이 배 덕분에 이제 사계절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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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 위 떠 있는 숙소
포항 영일만신항. 밤 11시가 넘어서야 승선이 시작된다. 뉴씨다오펄호는 승객 1200명을 태울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카페리다. 쾌속선처럼 좌석에 앉아 가는 게 아니라 모든 승객이 객실을 이용한다. 2층 침대가 놓인 4인실에 짐을 풀고 나면 배가 움직인다. 창밖으로 포항의 불빛이 점점 멀어진다.
배 안에는 편의점과 식당, 카페가 갖춰져 있다. 식당에선 밤마다 공연이 열리고, 파도가 잔잔한 날에는 야외 갑판에서 밤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선실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것도 좋다. 출항 후 약 7시간 뒤 동쪽 수평선이 밝아질 즈음에야 울릉도 사동항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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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암, 동해 3대 비경의 으뜸
차가운 바닷바람과 함께 하얀 설경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7시간의 항해는 마침표를 찍고 섬 안에서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셈이다. 자가용, 렌터카, 택시 또는 버스를 타고 울릉도 한 바퀴를 둘러보자.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삼선암이다. 사동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북면으로 향하면 바다 위로 우뚝 솟은 3개의 바위와 마주한다. 울릉도 해상 3대 비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다. 멀리서는 2개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3개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전설에 따르면 하늘에서 내려온 세 선녀가 울릉도 경치에 취해 복귀시간을 놓쳤고,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저 멀리 홀로 떨어진 바위가 막내 선녀인데, 옷을 잃어버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겨울이면 거친 파도가 바위를 때리고, 하얀 포말 사이로 드러나는 바위의 자태가 더욱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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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등대와 대풍감
서면 태하리에는 태하향목관광모노레일이 있다. 304m의 레일을 따라 6분쯤 오르면 산정에 닿는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우거진 길을 10분쯤 걸으면 태하등대가 나온다. 등대 앞에 서면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지고, 천연기념물인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가 절벽 위로 보인다. 해안 절벽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이 길 끝에 대풍감이 있다. 조선시대 이곳에서 육지로 돌아가는 배가 바람을 기다렸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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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나리분지
울릉도는 이름만 섬이지 거의 산이다. 섬이 화산 폭발로 형성돼 그렇다. 섬 전역에서 높고 가파른 산과 절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태풍처럼 화산의 흔적 또한 중심부가 가장 고요하다. 나리분지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넓은 평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만5000~2만 년 전 화산 폭발로 분화구가 함몰되며 형성된 칼데라 분지다.
겨울철 나리분지의 적설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눈이 허벅지까지 쌓이는 것은 예사이고, 최심적설량이 1m를 넘기도 한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탓에 눈이 잘 녹지 않아 3월 말까지도 설경이 이어진다. 울릉도의 겨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게 바로 나리분지의 독특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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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지 한편에는 전통가옥인 투막집이 전시돼 있으니 함께 살펴보자. 눈이 많이 오는 기후적 특성을 극복하기 위한 울릉도 주민들의 지혜가 담긴 집이다. 투막집은 통나무를 우물 정(井) 자로 쌓아 벽체를 만들고, 겉을 우데기로 두른 것이 특징이다.
나리분지에 왔다면 더덕전이나 산채비빔밥으로 허기를 달래는 것도 좋다. 이 일대에서 자란 산나물로 만든 음식은 육지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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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도, 다리 건너 무인도로
울릉도 북동쪽 끝, 천부리 앞바다에 관음도가 있다. 죽도와 독도에 이어 3번째로 큰 울릉도 부속섬이다. 2012년 연도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배로만 갈 수 있었던 무인도였다. 이제는 다리를 건너 곧바로 섬에 발을 디딜 수 있다.
관음도에는 2개의 탐방코스가 있다. 짧은 A코스를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울릉도 본섬과 죽도, 삼선암이 한눈에 들어온다. 운이 좋다면 수평선 너머 독도의 실루엣을 마주할 수도 있다.
긴 B코스를 따라가면 관음쌍굴이 나온다. 주상절리 절벽 아래 높이 14m의 두 동굴이 나란히 뚫려 있다. 예부터 해적의 소굴로 쓰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겨울에는 기암괴석 위로 소복이 내린 설경이 펼쳐져 사계절 중 가장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송곳산 아래 ‘카페 울라’
추산몽돌해변 인근 해안에서 5분쯤 올라가면 ‘카페 울라’가 있다. 코스모스리조트가 운영하는 이 카페에선 송곳산의 뾰족한 봉우리와 동해가 함께 보인다. 송곳산에는 구멍 뚫린 바위가 있는데, 보름달 빛이 이 구멍으로 새어 들어온다고 한다. 코스모스리조트가 자리한 땅은 울릉도 최고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울라’는 ‘울릉도 고릴라’라는 뜻으로, 코스모스리조트에서 개발한 울릉도 캐릭터다. 카페에선 울라 캐릭터 큐브가 들어간 라테와 마시멜로 초코 음료를 맛볼 수 있다. 숙박객이 아니어도 카페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니 울릉도 여행 중 잠시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다시 바다 위로
낮 12시30분 사동항에서 돌아가는 배가 출항한다. 울릉도에서 포항까지 다시 7시간. 갑판에 나가 멀어지는 울릉도를 바라보면 삼선암이 점점 작아지고, 관음도의 실루엣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울릉공항이 열리면 한 시간이면 올 수 있는 섬이 된다. 하지만 이 7시간의 뱃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밤바다 위에서 보내는 하룻밤, 새벽녘 창밖으로 보이는 화산섬. 빠른 길만이 좋은 길은 아니다. 울릉도는 천천히 다가가야 제맛이다. 사진=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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