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건강도 행복도 미모도 미리미리 챙겨… 불확실한 미래 통제한다

입력 2026. 01. 07   16:10
업데이트 2026. 01. 0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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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트렌드 2026-레디코어 - 어떤 상황이 와도 대처할 수 있는 현실주의 지향


“교수님, 저 P인데요. 정말 생활하기 힘들어요.”

트렌드 강의가 끝나고 학부생 한 명이 찾아와 한 말이다. 여기에서 ‘P’란 MBTI에서 흔히 즉흥적 성격으로 알려진 ‘P(perceiving·인식형)’ 유형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성향은 ‘J(judging·판단형)’ 유형으로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위 학생이 생활하기 힘들다고 말한 이유는 요즘 무엇이든 J형처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맛집을 가더라도 ‘캐치테이블’ 같은 예약 앱을 사용해야 하고, 공연·팝업스토어·스포츠경기를 보러 가더라도 미리 알아보고 예약해야 한다. ‘P도 계획하는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준비’가 일상을 넘어 인생 전반에 걸쳐 필수가 되고 있다. 『트렌드코리아 2026』에서는 준비를 삶의 핵심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여기는 요즘 사람들의 가치관을 일컬어 ‘레디코어(Ready-core)’라고 명명했다.

레디코어는 지나온 경험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이 세대는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보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나는 준비돼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철저한 현실주의를 지향한다. 레디코어의 면면을 살펴보자.

레디코어는 10대부터 시작된다.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화두는 ‘슬로에이징(slow-aging)’이다. 아직 성장도 끝나지 않았을 나이지만 일찍부터 관리해야 노화를 늦출 수 있다며 주름개선 기능성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을 구매하고 모델링 팩을 하는 등 ‘나이트 루틴’을 챙긴다. 메이크업도 이른 나이부터 시작하지만 피부가 나빠지지 않도록 성분을 꼼꼼히 따지고 유산균 등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여드름 케어에 힘쓰기도 한다. 수험생활에는 체력이 중요하다는 말도 흘려듣지 않는다. PT와 러닝을 시작하는 학생도 많아지고 있다.

최근 2030세대의 건강관리법 역시 레디코어의 흐름을 보여준다. ‘저속노화’ 인기가 높아지면서 액상과당이 포함되지 않은 ‘제로’ 음료를 찾고, 백미밥 대신 현미밥이나 잡곡밥을 선택한다. ‘혈당 스파이크’가 건강뿐만 아니라 다이어트와 피부 관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지며 식품업계에서는 ‘저당’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일부에서는 주로 당뇨 환자에서 찾던 연속혈당측정기(CGM)를 다이어트에 활용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육아에서도 레디코어 흐름이 강해진다. 요즘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 등장한 ‘기획육아’가 대표적이다.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육아법을 의미한다. 이유식을 시작할 단계라면 관련 도서와 강의를 찾아보며 이유식 종류와 조리법부터 학습한다. 자녀에게 맞춤화된 육아를 제공하기 위해 자녀 성향을 파악하는 것도 필수다. 이를 위해 발달검사부터 시작해 인지능력, 정서, 스트레스 대처방식, 사회성 등 다방면에서 소위 ‘심리적 종합검진’을 받아보는 부모도 많아졌다.

인생 준비에서 2030세대가 이전 세대와 가장 다른 지점 중 하나가 노후 대비다. 최근 캐릿×토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대 응답자에게 ‘노후 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이는?’이란 질문을 한 결과 압도적으로 ‘30대 이하부터’라는 응답이 많이 나왔다(73.7%).

실제로 노후준비에 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재테크 공부’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과외와 학원으로 공부한 세대답게 재테크도 ‘인강’과 학원을 찾는다. 부동산 투자를 하고 싶다면 관련 교육 플랫폼에서 기초이론 강의를 듣고 조 편성에 따라 스터디그룹 멤버들과 함께 임장에 나선다.

주식은 물론 연금 투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테크 강의가 쏟아지고 있다. 코난테크놀로지의 소셜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올해 ‘스터디’ 연관어로 ‘투자’나 ‘경제’와 같은 재테크 관련 단어의 언급량이 크게 늘었다.

인생 준비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커리어 준비다. ‘평생직장’이란 말이 사라지면서 멀티커리어를 준비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현재 하고 있는 일 외에 다른 커리어 옵션을 고려하기 위해 곁가지를 만들어 가는 ‘옆그레이드 전략’이다.

실제 직업과 연결되는 기술사 자격증을 공부하는 2030세대 숫자가 늘고 있고, 다른 전공의 대학원을 고려하는 직장인도 많아졌다. 새로운 커리어를 준비하기에 ‘늦은 나이’라는 것도 없다.

이처럼 소비와 인생 전반에 걸쳐 앞당겨 준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 번째로는 정보가 많아진 환경에 있다. 음식점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그곳 분위기가 어떤지, 종업원 서비스가 어땠는지 ‘미리보기’가 당연시된 시대다. 온라인에서는 ‘30대가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 ‘50대가 되고 나서 후회하는 것들’ 등 온갖 경험 리뷰가 쏟아진다. 인생 미리보기가 가능해진 시대에 향후 닥쳐올 문제들에 대해 준비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용인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나아가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적 환경에서 ‘준비’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인공지능(AI)으로 인해 사회 변화가 가속화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5년 뒤, 10년 뒤 모습조차 예측하지 못하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이에 지금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건강관리를 통해 성취감을 얻고,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 불안을 통제한다.

레디코어가 필수가 되는 시대, 비즈니스와 조직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개인의 인생 시나리오 속에서 다양한 ‘준비’ 포인트를 발굴하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상조회사를 통해 부모 장례를 준비했다면, 이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많아지며 상조회사에서 반려동물 장례도 지원한다.

다만 레디코어를 모토로 살아가는 독자라면 인생을 바라보는 전략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AI 시대라는데 어떤 직업을 해야 안전할까요? 무엇을 공부해 두면 좋을까요?’란 질문을 많이 한다. 하지만 누구도 ‘이것만큼은 안전하다’고 100% 확신할 수 없는 시대다.

정답이 사라진 시대에 정답을 향해 달려가는 ‘과녁형 인생’보다는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유연하게 파도타기를 즐길 수 있는 ‘돛단배형 인생’이 더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계획대로만 살고자 한다면 우연히 찾아오는 인생의 기회를 못 보고 놓칠지도 모른다.

일찍부터 관리해야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공감대가 주를 이루며 청소년의 기능성 화장품 구매도 늘고 있다. 한 뷰티 브랜드 매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는 소비자들. 연합뉴스
일찍부터 관리해야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공감대가 주를 이루며 청소년의 기능성 화장품 구매도 늘고 있다. 한 뷰티 브랜드 매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는 소비자들. 연합뉴스



권정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권정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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