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판도 바꾸는 드론·AI - 드론을 바보로 만드는 마법 ‘전파 교란’
우크라 전자전 공격에 속수무책 당하던 러 ‘샤헤드136’
GPS 안테나 최대 4배 늘려 가짜 신호 걸러내기 안간힘
특정 주파수 대역 방해로 조종 신호 차단하면 ‘눈먼 드론’
센서·LTE 모듈 이용 자율 비행 드론 등 회피 기술 발전
그러자 AI가 자동으로 주파수 쫓는 ‘스마트 재밍’ 개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장을 지배하는 자폭 드론의 핵심 기술은 놀랍게도 드론 레이싱 동호회에서 나왔다. 양측이 사용하는 ELRS(Express Long Range System)와 크로스파이어 조종 시스템의 핵심 부품인 ‘로라(LoRa)’ 칩은 원래 가로등 제어나 토양 습도 측정용 사물인터넷(IoT) 기술이었다.
러시아군은 상업용 드론 부품을 온라인에서 저렴하게 구매해 전술 드론을 제작한다. ELRS의 숨겨진 힘은 오픈소스다. 깃허브(GitHub)에 공개된 프로그램을 전투 현장 기술자들이 수정해 드론의 작동 주파수를 바꾼다. 러시아군은 900㎒용 부품을 730~1050㎒ 범위로 재설정해 우크라이나군 전자전을 피한다. 전파에 의존하는 모든 드론이 싸워야 하는 보이지 않는 적 재밍(Jamming)이다.
재밍의 위협은 러시아의 샤헤드136 드론 개조 사례가 잘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투입된 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유도 드론은 우크라이나군의 전자전 공격에 무력화됐다. 2023년 중반부터 격추된 샤헤드를 분석한 결과 원래 4개였던 GPS 안테나가 8개, 12개, 심지어 16개로 늘어난 것이 발견됐다. ‘제어 수신 패턴 안테나’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은 재밍 신호 속에서도 진짜 GPS 신호를 골라내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자전 효과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전파의 전쟁에서 보여준 공격자와 방어자의 치열한 기술 경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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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밍은 드론 대응의 핵심 수단이다. 원리는 드론이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에 더 강한 전파를 방사해 정상 신호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시끄러운 공사장 소음 때문에 전화 통화가 안 되는 것과 같다. 드론과 조종자 간 ‘대화’가 끊어지면 드론은 사전에 프로그램된 비상 절차를 실행한다. 대부분의 상용 드론은 RTH(Return to Home) 모드로 전환돼 출발 지점으로 돌아가거나 정상적인 신호를 받을 때까지 선회하거나 그 자리에 착륙한다. 군용 드론은 좀 더 복잡하다. 마지막으로 받은 명령을 계속 수행하거나, 인공지능(AI)이 상황을 판단해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재밍의 가장 큰 장점은 ‘파괴 없는 무력화’다. 물리적으로 드론을 격추하지 않으므로 파편이나 2차 피해가 없다. 도심 지역, 공항 근처처럼 민감한 장소에서 특히 유용하다. 한 번 장비를 구축하면 추가 비용 없이 계속 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재밍은 강력한 전파를 발산하므로 아군의 통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광섬유 케이블로 연결된 드론을 사용하면 재밍이 곤란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투입한 ‘ZALA 421’ 같은 유선 드론이 대표적이다. 또한 날씨와 지형에 따라 방해 효과가 달라진다. 산악 지형에서는 전파가 산에 가로막혀 효과가 떨어지고 비가 오면 전파 감쇠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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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밍의 효과는 주파수 대역에 따라 다르다. 소형 드론이 주로 사용하는 2.4㎓ 대역은 와이파이, 블루투스와 같은 주파수로 레저용 드론 대부분이 사용한다. 이 대역을 방해하면 조종 신호가 완전히 차단된다. 5.8㎓는 주로 고화질 영상 전송에 사용되는데 이를 교란하면 조종자가 드론의 카메라 영상을 볼 수 없다. FPV(1인칭 시점) 드론은 영상이 끊기면 사실상 조종이 불가능해진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특성을 활용해 선택적 재밍 전술을 개발했다. 영상 신호만 차단해 드론을 ‘눈먼’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드론은 여전히 날고 있지만 조종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정확한 조준이 불가능하다. 러시아는 이에 대응해 주파수 도약(Frequency Hopping) 기술을 적용한 드론을 투입했다. 이는 통신 주파수를 초당 수백 번씩 바꾸는 방식으로, 방해를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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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은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는 재밍 시스템을 개발해 왔다. 러시아의 크라수하4(Krasukha-4) 시스템은 트럭에 적용돼 반경 300㎞ 내의 공중 감시 레이다와 드론 통신을 교란할 수 있다. 미군은 CREW(Counter Radio-Controlled IED Electronic Warfare) 시스템을 운용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선 조종 폭발물을 막기 위해 개발된 이 장비는 차량에 탑재돼 부대와 함께 이동하며 주변의 모든 무선 신호를 감시하다가 드론으로 의심되는 신호를 자동으로 재밍한다.
우리 군도 드론 재밍 기술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2022년 11월 방위사업청은 LIG넥스원과 244억 원 규모의 소형무인기대응체계(Block-I) 개발에 착수했는데 이제 완료를 앞두고 있다. LIG넥스원은 배열안테나로 재밍 신호에 대응하는 GPS 복합재밍 능동대응 장치 응용연구를 완료했고, 드론 데이터링크 통신재밍, AI 기반 자율형 전자공격 등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 국방부는 드론 위협 대응을 위한 탐지자산과 소프트킬, 하드킬 무기체계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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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밍 기술이 발전하자 드론도 진화하고 있다. 최근 드론은 조종자의 개입이나 GPS 신호 수신 없이 탑재된 관성항법 장치, 영상 센서와 디지털 지형 데이터를 비교하는 방법 등을 활용해 목적지까지 비행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 GPS 신호 없이 센서만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미리 생성된 좌표와 비교해 자율 비행을 수행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LTE 모듈을 적용한 드론도 사용되고 있다. 이동통신 기지국을 통해 통신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러시아군도 LTE 커버리지를 활용해 드론을 운용하고 있다. ‘회색 지대’를 통과한 뒤 이동통신 신호가 잡히는 지역에서 드론을 발사하는 전술을 사용한다. 이런 드론을 재밍하려면 민간 이동통신망까지 차단해야 하는데, 이는 막대한 피해를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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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재밍 기술은 더욱 지능화되고 있다. AI가 드론의 통신 패턴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가장 효과적인 재밍 주파수와 출력을 자동으로 선택한다. 여러 대의 드론이 서로 다른 주파수를 사용해도 AI가 각각을 추적하며 동시에 재밍할 수 있다. 또한 ‘스마트 재밍’ 기술을 개발 중이다. 아군 통신은 보호하면서 적 드론만 선택적으로 교란하는 것이다. 복잡한 전파 환경에서도 표적만 정확히 방해하는 방법이다.
21세기 전장에서 전자기 스펙트럼을 지배하는 자가 하늘을 지배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를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 양측 모두 매일 수십 대의 드론을 띄우지만 실제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절반도 안 된다. 나머지는 전자전의 보이지 않는 그물망에 걸려 추락하거나 길을 잃는다. 하지만 재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러시아는 이미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 값싼 가짜 드론을 대량으로 투입해 방공망을 혼란시키는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이 기만용 드론이 어떻게 현대 방공 체계를 무력화하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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