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의 시작과 함께 짐을 싸고 있다.
6일 대한민국 레바논평화유지단(동명부대) 32진의 일원으로 파병을 떠나기 위해서다. 왜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험지를 자원했는지 묻는다면 두 조부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두 분 모두 6·25전쟁의 포화 속을 뚫고 나라를 지켜 내셨고, 친할아버지께서는 베트남전쟁 파병까지 다녀오셨다.
6·25전쟁의 참화와 베트남전쟁 파병이라는 대한민국의 거친 격랑을 헤쳐 온 집안 내력 덕분에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가 사실은 누군가의 피와 땀, 눈물로 빚어진 것임을 배우며 자랐다. 그 ‘자유의 무게’를 눈으로 확인하는 여정이 지난여름과 가을 내 아이에게 먼저 찾아왔다.
첫째 아이가 국가보훈부에서 주관하는 ‘유엔 참전국 글로벌 아카데미’ 단원으로 선발돼 태국과 네덜란드, 벨기에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네덜란드 방문은 우리 가족에게 운명과도 같았다. 우리 가족이 터를 잡고 사는 강원 원주시는 1951년 2월 네덜란드 ‘판호이츠’ 부대가 중공군의 거센 파상공세를 온몸으로 막아 낸 치열한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그 부대는 지금도 해체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예하 중대의 이름을 ‘원주’로 명명해 70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치렀던 전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육군36보병사단 복무 시절부터 횡성 참전기념비를 찾으며 그들을 기려 왔지만, 내 아이가 직접 그 부대를 찾아 고사리손으로 감사를 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름도 모르는 낯선 나라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참전용사의 증손자가 그들의 눈앞에서 증명해 보인 순간이었다.
조부님들의 빛바랜 참전일기와 아이가 보내온 네덜란드 사진을 번갈아 보며 생각에 잠겼다. 75년 전 낯선 땅 원주를 지켰던 네덜란드의 청년들도, 전장을 누비셨던 조부님들도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자 아버지, 형제였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뒤로하고 포화 속으로 뛰어든 그 숭고한 결단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75년 전 세계의 도움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대한민국이 세계 평화를 위해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 그 역사의 대전환점에 참전용사의 후손인 내가 서 있다. 레바논의 풍경은 전쟁 직후 우리네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한다. 과거 네덜란드 청년들이 낯선 땅 원주에서 우리의 자유를 지켜 줬듯이 나 또한 레바논 국민이 잃어버린 평화와 자유를 찾는 데 기여하고 싶다. 도움을 받았던 대한민국 군인이 도움이 필요한 레바논에서 그 사랑을 돌려주는 것. 그것이 할아버지가 목숨 걸고 지켜 낸 나라의 군인으로서, 세계인의 일원으로서 내가 진 ‘자유의 빚’을 갚는 가장 확실하고도 정의로운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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