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스파이, 그들이 온다

스파이 혐의…철퇴 휘두르는 中, 국가정보기관 창설…칼 가는 日

입력 2026. 01. 04   14:03
업데이트 2026. 01. 0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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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그들이 온다
격화하는 중·일 정보전

중·대만 갈등에 일 ‘자위권 발동’ 언급

양국 군사 긴장 격화 정보전으로 번져
중, 스파이 혐의 적극 체포·처벌 강화
일, 전체주의 우려에도 기능 강화 추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왼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왼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중국의 공세적 대일 방첩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새해에도 해소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지난해 11월 7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야당 의원 질의에 답변하며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무력행사를 한다면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촉발된 분쟁의 여파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존립위기 사태’란 2015년 제정된 일본의 신안보법제에 따라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 요건에 해당돼 일본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를 이른다. 집단적 자위권은 다른 나라가 공격을 받았을 때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인데, 미·중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일 안전보장 조약에 따라 일본이 미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법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정부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도발로 간주하는 이유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다음 날 오사카 주재 중국 총영사는 SNS에 “더러운 목을 벨 수밖에 없다”는 글을 올리며 격하게 반응했다. 이후 중국은 일본여행 자제령 등 경제적 압박과 함께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주축으로 하는 함대가 오키나와를 포위하듯 기동하며 군사 긴장을 고조시켰다. 나아가 일본 연예인들의 중국 내 공연 중단 등 문화적 여론전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당연히 정보전도 치열하다. 중국 방첩기관인 국가안전부는 지난해 11월 19일 공식 SNS 계정에 일본을 ‘선을 넘어 도발하는 불장난꾼’으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최근 몇 년간 중국을 겨냥한 일본 스파이를 무더기로 체포했다”며 “보이지 않는 전선에서 국가를 분열시키려는 모든 책략을 분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밀하게 활동하는 전통적 정보기관의 태도에서 벗어나 상대국을 겁박하는 외교전에 직접 뛰어든 모양새다.

실제로 중국은 일본인 대상 방첩에 유난히 적극적이다. 2014년 반간첩법 시행 후 학자·기업인 등 일본인 17명이 스파이 혐의로 처벌됐는데, 동중국해와 대만 문제로 양국 관계가 악화됐을 때 집중됐다. 다분히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2023년 3월 일본 제약사 중국법인 임원이 체포된 것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으로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이 베이징을 방문하기 일주일 전이었다. 자국민 석방을 요청해야 하는 일본으로선 외교전에서 불리한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16년 7월 체포된 중·일 교류협력 활동가 스즈키 히데지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가 3년 전 중국 당국자와 식사하며 북한 장성택 처형에 관해 문의해서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일본 공안조사청으로부터 금전을 받은 것은 인정했으나 스파이 혐의는 부인했다. 중국이 체포시기를 조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아베 신조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요건 변경 등 친미 행보에 대응하고 자국민의 일본인 대상 방첩 경각심을 제고하기 위해 일부러 중국 내 인맥이 넓은 일본인을 처벌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5월에도 상하이법원이 일본 공안조사청에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50대 일본인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7월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서 간첩죄로 재판받은 17명 중 9명이 일본 정부, 특히 공안조사청에 정보를 제공하고 금전적 대가를 받은 것으로 판결문에 명시됐다. 중국의 반간첩법이 엄격한 탓도 있지만 해외 정보 수집체계를 갖추지 못한 일본 기관들이 민간인을 정보원으로 활용했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정보력 강화에 칼 가는 일본

일본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나 영국 비밀정보국(MI6)처럼 해외에서 정보 수집과 공작 활동(HUMINT)을 하는 제대로 된 국가정보기관이 없다. 외무성, 방위성, 경찰청, 공안조사청 등 부문별 기관들이 수집한 정보를 종합분석해 총리에게 보고하는 내각정보조사실(CIRO)이라는 소규모 기관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정보기관 설립 시도가 있었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특별고등경찰·헌병대의 부정적 이미지와 ‘강력한 정보기관은 전체주의 부활’이라는 국민적 인식으로 매번 좌절됐다. 그런 일본에서 최근 정보 활동 관련 법령 정비와 국가정보기관 창설 등 정보력 강화를 위한 조치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자민당 정부는 외국세력의 스파이 행위 단속을 위한 ‘스파이 방지법’ 제정에 착수했다. 또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처럼 외국 정부나 기업의 이익 활동을 사전 등록하게 하는 법령 제정도 추진 중이다. 관계 각료들로 구성된 ‘국가정보회의’와 정보 활동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 설치도 서두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체결된 자민당과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의 연립정권 합의서에도 ‘취약한 국가정보의 기능 강화가 급선무라는 인식을 공유하며 2026년 정기국회에서 국가정보국을 창설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해 12월엔 경제안보의 핵심 정보를 ‘특정비밀’ 범위에 포함시키는 법령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공지능(AI), 양자기술, 반도체 등 민간 기술의 군사적 전용 가능성에 대비해 2013년 아베 총리 당시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 제정된 ‘특정비밀보호법’에 경제안보 개념을 추가, 국가기밀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해 7월 중국 방문 일본인을 위한 스파이 혐의 회피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가이드라인엔 △현지인과 대화 시 정치 관련 주제를 피하고 기록하지 말 것 △중국의 정치·경제·군사 관련 정보를 일본 기관에 전달하지 말 것 △정보 제공 대가로 금전을 받지 말 것 △국가기밀이 아니라도 외국 기관과 정보협력 자체가 처벌된다는 사실을 인지할 것 등이 담겼다. 중국의 일본인 대상 방첩 강화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정보전 역량 갖춰야 주권 지켜

중국·일본의 스파이전과 정보력 강화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2023년 12월 중국 반도체 기업에서 일하던 50대 한국인 교민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됐다. 2014년 반간첩법 시행 후 구속된 첫 한국인이다. 같은 해 7월 한 차례 개정으로 대폭 강화된 반간첩법이 한국인에게도 언제든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반도체를 비롯한 한·중 첨단 기술 분야 인적 교류가 빈번하고,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중국이 중간지대여서 한국인이 중국에서 북한인을 접촉할 기회도 많다.

문제는 개정된 중국 반간첩법이 간첩 행위 적용 대상을 기존의 ‘국가기밀을 빼돌리는 행위’에서 ‘국가안보 및 이익과 관련된 자료 제공’으로 크게 넓혔고, 제3국 간첩 행위도 처벌하도록 확대돼 북한인을 접촉하는 한국인에게 적용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중국은 한·미·일 밀착을 중국을 향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어 외교적 압박이나 영향력 확보가 필요하면 자국 내 한국인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정책 변화를 촉구하거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취하려 할 수 있다. 중국을 방문하는 우리 국민에게 간첩 혐의를 받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고, 방첩 역량을 강화해 유사시 대응력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제3국 사이의 정보전이 전개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130여 년 전 청일전쟁이 왜 한반도에서 일어났는지를 돌이켜 보고 정보전에서 지역 내 약한 고리가 되지 않도록 먼저 알고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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