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병영의창

“요즘 힘든 일은 없나요?”

입력 2025. 12. 23   15:52
업데이트 2025. 12. 2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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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상 소령 육군대학
조효상 소령 육군대학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는 찾아온다 
그럴 때일수록 혼자 견디려 하기보다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작은 고민이라도 상담관은 귀 기울여 듣고 함께 해결책을 고민해준다”

국방부 보건정책과에서 ‘지난 10월 10~31일 정신건강홍보주간’을 맞아 ‘마음건강을 지키는 나만의 방법’을 주제로 진행한 체험수기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을 소개합니다.

동료들은 나에게 ‘멘탈이 강하다’고 말하곤 한다. 아마 군 생활 동안 수많은 사건·사고를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작은 소위로 임관한 뒤 첫 부대에서 받았던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당시 스트레스와 개인사까지 겹쳐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결국 병과 전환이라는 큰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새 부대에서도 시련은 이어졌다. 직속 중대장이 징계를 받고 현역복무부적합으로 전역한 것을 시작으로, 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피해자나 참고인으로 연루되어 감찰과 군사경찰, 검찰 조사를 수도 없이 받았다. 

조사는 내가 대위지휘참모과정에 입교해서까지 이어져 수업 도중 자리를 비워야 하는 일이 잦았다. 대위지휘참모과정을 수료 후 전입 간 부대에서는 인사과장 보직을 받았는데 당시 실무자들의 전출로 나 혼자 인사과 업무를 감당해야 했다.

그때 마침 코로나19가 창궐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요직위자들의 비위가 적발되어 징계, 분리 조치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부대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나는 법무실에 참고인 신분으로 수시로 불려 다녔다.

조사를 마치고 복귀한 뒤 인사과에서 혼자 밀린 업무와 코로나19 대응을 하다 보니 정시 퇴근하는 날은 거의 없었다. 그 와중에 전입신병이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그린캠프에 입소했고 현역복무부적합 심의 서류준비까지 해야 했다.

‘왜 나의 군생활은 이렇게 가혹한 걸까?’라는 혼잣말과 함께 얼굴은 웃음을 잃어갔고 흡연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식사도 거르기 일쑤라서 얼굴은 점점 핼쑥해졌다. 나를 본 주변 동료들의 “고생 많다”는 말은 어느새 “너 괜찮니?”라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무 부적응 용사의 현역복무부적합 심의 서류를 받기 위해 병영생활전문상담관(상담관)을 찾았다. 그때 상담관이 서류와 함께 음료를 건네며 “요즘 힘든 일은 없나요?”라고 물었다.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고, 그동안 겪었던 일들과 마음의 짐을 상담관에게 털어놓았다. 여러 고충을 털어놓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렇게 상담을 마무리하고 자리를 떠나기 전 상담관은 “힘들면 언제든 찾아오세요”라며 격려해주었다. 상담 간 특별한 해결책을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 이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후 마음이 답답할 때 종종 상담관을 찾았다. 그때마다 상담관은 친절히 맞아주며 내 상황에 공감해주었다. 현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나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덕분에 어려웠던 인사과장 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이듬해에는 소령 진급의 영광도 누리게 되었다.

소령 진급 후 여러 부대를 거쳐 OO부대로 전입을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같은 부서의 A주무관을 알게 되었다. 주무관은 다소 늦은 나이에 신규임용된 군무원이었는데 바쁜 업무에도 불구하고 늘 밝은 얼굴로 근무했다. 그러나 부서장을 비롯해 많은 부서원이 교체되는 동시에 부대에서 각종 신규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주무관은 격무에 시달리게 되었고 지쳐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전입 후 처음 인사했던 주무관의 밝은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에는 마치 인사과장 시절 나의 모습과 같은 어둠이 드리웠다.

하루는 부서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에 음주를 즐기던 주무관이 회식 후 다시 부대로 들어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며 술잔을 들지 않았다. 어두운 표정이 마음에 걸려 회식 후 따로 만나 맥주 한잔을 하자고 권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나의 간곡한 부탁에 우리는 어느 작은 호프집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예전 상담관이 내게 했던 것처럼 주무관에게 물었다.

“요즘 힘든 일은 없나요?”

그 순간 주무관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는 다른 신규임용 군무원들보다 나이도 많고 직장 경험도 있다 보니 본인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자책이 된다고 했다. 또한 가족과 멀리 떨어져 근무하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나는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진심으로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 부대를 지원하는 상담관에게 주무관의 상담을 요청하는 웹메일을 보냈다. 이후 상담관은 주무관과 여러 차례 상담을 진행했고, 부서 내에서도 그의 업무를 분담하며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점차 주무관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돌아왔고, 가족과 가까운 곳으로 전출을 간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지금도 종종 주무관과 연락하며 안부를 묻는다. 새로운 부대에서 승진도 하고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때 상담관에게 메일을 보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는 찾아온다. 그럴 때일수록 혼자 견디려 하기보다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작은 고민이라도 상담관은 귀 기울여 듣고 함께 해결책을 고민해준다. 한편 여전히 상담을 받으면 ‘문제 있는 사람’으로 오해받거나 진급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 우려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담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나와 건강한 부대를 만들기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이다.

마음이 힘들다면 주저하지 말고 상담의 문을 두드리자. 직접 방문이 어렵다면 전화나 SNS 메신저를 통한 상담도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힘들어하는 동료가 있다면, 그 마음을 외면하지 말고 상담관을 연결해주자. 서로의 마음 건강을 챙겨주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우리 부대는 더 강하고, 안전하고 따뜻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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