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연말이 찾아왔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기를 준비하는 성찰의 시간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위기의 순간 세상을 지탱해 온 것은 거대한 시스템이나 제도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용기와 결단이었다는 사실이다.
현대사회, 특히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군대에서 성희롱·성폭력 문제에 맞서는 일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최근 56년 만에 재심을 거쳐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성폭력 피해자 최말자 할머니의 사례는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오랜 침묵과 편견을 요구해 왔는지 잘 보여 준다. 자신을 방어한 행동조차 처벌받았던 고난의 세월, 할머니를 지탱한 것은 스스로의 용기뿐만 아니라 함께한 조력자들의 연대였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곁에서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고 말해 주는 동료의 목소리다.
이러한 따뜻한 용기와 연대는 우리 군에서도 서로를 지키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전우 간 신뢰와 존중은 전투력의 토대이자 우리 군 기강의 근본이다. 그렇기에 성희롱·성폭력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공동체의 결속을 해치는 위협이 된다. 연말연시는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는 따뜻한 시간이지만, 동시에 들뜬 분위기에서 경계가 느슨해지기 쉬운 시기이기도 하다. 군이 이 기간을 ‘성희롱·성폭력 예방 강조기간’으로 지정하고 경각심을 높이는 이유다.
우리 군은 그동안 인권친화적 병영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예방·대응체계를 정교하게 갖추고 지속 발전시켜 왔다. 아무리 촘촘한 제도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은 결국 각 구성원의 인식과 태도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자. “부당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 외면하지 않을 용기가 있는가?” “고통받는 전우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고 얘기해 주고 손을 내밀 연대의 마음이 있는가?”
국민이 신뢰하는 강군은 첨단 무기로 무장한 군대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구성원 모두가 존중받고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단단한 조직, 전우를 지켜 낼 수 있는 성숙한 군대가 진정한 강군이다. 성희롱·성폭력 없는 건강한 조직문화를 갖춘 군이야말로 자연스럽게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 나아가 안정된 안보환경을 만드는 굳건한 토대가 된다. 변화는 거창한 구호가 아닌 우리의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서로를 세심히 살피는 관심과 부조리한 것을 멈추게 하는 용기, 이 두 마음이면 충분하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의 용기와 연대가 모여 전우에게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국민에게는 흔들림 없이 신뢰받는 강군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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