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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예술의 벽 너머...시각-공간의 선 넘어

입력 2025. 12. 18   16:36
업데이트 2025. 12. 1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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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전시공간 & 전시 백남준아트센터와 조안 조나스 : 인간 너머의 세계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 전자기술·예술 융합한 선구자…
다양한 매체 활용 예술 경계 확장 조나스, 다양한 존재 공존하는 순간 시각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 전시장 전경. 필자 제공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 전시장 전경. 필자 제공



동시대 사회에서 예술작품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아니, 예술에 경계라는 게 있기는 할까. 온갖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미술을 생각한다면 경계 없이 무한히 뻗어 나가며 감히 생각지도 못한 영역까지 포괄하는 게 동시대 예술일 것이다. 어쩌면 매체와 재료가 다양하고 융합적인 성격까지 더해진 현대사회에서 예술의 의미와 범위를 정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백남준(1932~2006)은 TV, 음악,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기존의 예술형식에 도전했던 대표적인 작가다.

비디오아트 창시자인 백남준은 1960년대부터 전자기술과 예술을 융합한 독창적인 시도를 하며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선구자로 전 세계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는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의 예술을 기념하고 연구하기 위해 2008년 설립됐다. 한 사람의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미술관을 세우는 것은 백남준이란 예술가의 상징성과 중요성을 공개적으로 기념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백남준아트센터는 2003년 국제설계 공모를 거쳐 선정된 독일 건축가 키르스텐 쉐멜과 마리나 스탄코비치가 공동 설계했다. 지상 3층과 지하 2층 규모로 조성된 건물 내부에는 전시실, 비디오 아카이브, 세미나실, 교육실 등이 마련돼 백남준의 선구적인 비디오 작품들뿐만 아니라 관련 연구도서와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건축물의 특이점은 건물 외형이 백남준의 영문 알파벳 ‘P’ 자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랜드피아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음악과 미디어,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렀던 백남준의 작품세계를 상징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의 선구적인 작품을 연구하고 전시할 뿐만 아니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으로서 미래의 아티스트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탐구를 지속하며 갈등 없는 사회를 꿈꿨던 백남준 예술의 현재적 의미를 오늘의 예술가와 함께 사유하고 확산한다’는 목적으로 2009년 ‘백남준 예술상’을 제정했다. 2년마다 실험성과 창의성을 지닌 국제적인 예술가를 선정해 전시를 지원하는 ‘백남준 예술상’은 국제적 권위를 지닌 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백남준아트센터에선 지난해 8번째 ‘백남준 예술상’의 수상자로 선정된 조안 조나스(1936~ )의 ‘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2025년 11월 20일~2026년 3월 29일)가 열리고 있다. 미국 출신의 작가 조나스는 여성성, 정체성, 생태적 위기 등의 주제를 비디오와 퍼포먼스 등 실험적인 방식으로 보여 주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그는 1960~197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비디오아트와 퍼포먼스아트의 선구자라는 점에서 백남준과 공통점을 지닌다. 전통적 장르로 여겨지는 회화, 조각과 달리 비디오, 드로잉,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예술의 경계를 확장해 온 것 역시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조나스는 특히 몸짓·행위·공간을 예술의 핵심 요소로 확장하고 몸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공연으로 미술의 경계를 넓혔다. 이번 전시는 매체의 경계뿐만 아니라 자연, 인간, 비인간, 기후, 생태 등 인간 너머의 세계로 예술의 의미를 확대한 조나스의 예술세계를 전반적으로 조명한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 전시장 전경. 필자 제공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 전시장 전경. 필자 제공



전시는 ‘실험-급진적인 순간들’ ‘여행-자연의 정령·동물 조력자’ ‘공생-되살림과 변주’라는 3개 파트로 구분돼 있다. ‘실험-급진적인 순간들’은 퍼포먼스라는 형식과 초기 비디오 실험이 공명하는 순간을 다룬 작품, 매체 실험을 보여 주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퍼포머의 움직임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한 1968년 작 ‘바람’과 공기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연을 천장에 설치한 ‘바람처럼 내 귀를 스쳤다’(2014) 등 자연과 인간 혹은 특정 사물의 상호작용·관계성을 시각화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과 청각적·촉각적 감각을 시각적으로 변환하는 동시에 즉흥성·우연성의 순간을 비디오에 담아 다양한 존재가 공존하는 순간을 시각화한다.

‘여행-자연의 정령·동물 조력자’는 여행에서 발견한 세계와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는 작가적 시각과 함께 자연에서 공생하는 동물과 인간, 생명체의 모습을 비디오로 보여 준다. ‘아름다운 개’(2014)는 작가의 반려견 ‘오즈’의 목에 소형 카메라를 부착해 개의 시선을 따라가게 한 작품이다.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은 거칠게 움직이는 개의 움직임을 느끼게 하며, 개의 시각에서 화면을 바라보다 보면 또 다른 생명체의 감각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공생-되살림과 변주’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반복되는 동식물, 기후 등 자연과의 관계망에서 여러 생명이 공존하고 순환하는 의미를 담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가장 최근에 제작한 ‘빈 방’(2025)은 제목처럼 누군가 떠나고 비어 버린 공간을 시각화하며 사라진 존재와 흔적에 관해 이야기한다. 공중에 떠 있는 종이로 만든 조각과 앙상한 나무들을 그린 드로잉, 그림자들이 등장하는 영상은 상실과 부재, 남아 있는 기억과 흔적, 그리움의 정서를 오롯이 표현한다. 작가가 오랫동안 실험해 온 다양한 언어가 집약된 이 작품은 사라짐 이후 남은 것들이 다시 공존하고 순환하는 과정을 암묵적으로 보여 준다.

미술은 이미지 혹은 시각언어라는 하나의 공통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특히 몸짓과 행동은 언어가 달라도 감정 혹은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매체가 된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히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작가는 50여 년의 활동 기간 언어적 관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러 생명체와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시도를 해 왔다.

전시된 작품은 대부분 영상으로 촬영됐지만 작가에게 비디오는 단순히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장치가 아닌 하나의 청중이었다. 조나스는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비롯한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인간 너머의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사물, 생명체의 연결 과정, 관계의 방법 등을 섬세한 시각으로 보여 준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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