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클래식과 함께하는 전쟁사

춘래불사춘…그래도 봄을 노래한다

입력 2025. 12. 16   16:25
업데이트 2025. 12. 1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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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과 함께하는 전쟁사
혁명과 오랜 전쟁의 여진, 새로운 음악사조 등장

나폴레옹 전쟁 후 새로운 질서 모색
전쟁 이전 돌아가는 ‘빈 체제’ 가동
세기의 평화 ‘벨 에포크’ 지속되면서
경제·기술 발전, 예술적 욕구 표출
내면의 감성 중시하는 낭만주의 대표
슈베르트 ‘봄의 찬가’ 일상 평화 노래해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흔히 낭만주의 시기라고 부른다. 음악 역시 이 시기에 슈베르트, 베버, 로시니, 멘델스존, 리스트, 슈만 등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이 활동했다. 오스트리아 국립중앙묘원 내 있는 슈베르트의 묘(맨 오른쪽). 필자 제공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흔히 낭만주의 시기라고 부른다. 음악 역시 이 시기에 슈베르트, 베버, 로시니, 멘델스존, 리스트, 슈만 등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이 활동했다. 오스트리아 국립중앙묘원 내 있는 슈베르트의 묘(맨 오른쪽). 필자 제공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은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면서 전쟁 후 뒤처리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프랑스 전역은 물론 지중해·북유럽·러시아까지 유럽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공포와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가 일상이 돼 있는 상태인지라 긴 터널을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인간의 본능이 표출됐다. 


빈 체제의 가동과 ‘벨 에포크’

1814년부터 1815년까지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유럽 정상들이 모여 전후 체제를 논의했다. 이를 흔히 ‘빈 체제’라고 하는데, 프랑스혁명이나 나폴레옹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는 반동체제를 결정했다. 어쨌든 ‘빈 체제’ 가동은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5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약 100년간 평화가 지속됐다. 유럽사에서는 이를 ‘벨 에포크(Belle Epoque·아름다운 시절)’라고도 한다.

물론 이 기간에도 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853년 발생한 러시아와 오스만제국·프랑스·영국 등이 참전한 크림전쟁(1853~1856),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 보오전쟁(1866),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벌인 보불전쟁(1870~1871) 등이 있었다. 이들 전쟁은 산업화를 통해 프로이센과 러시아 같은 신흥 강국이 등장함에 따라 세력 균형의 축이 흔들리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시기에는 경제, 문화, 산업 등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혁신적인 기술로 과학이 크게 발전해 전화, 무선통신, 철도, 엘리베이터, 여객선, 비행기 등이 등장했다. 또한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은 시민혁명이 발생해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돼 1830년 그리스가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했고, 1867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탄생했으며, 1870년 이탈리아 통일에 이어 1871년에는 독일이 보불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통일을 달성했다. 아울러 사회주의 사상이 노골화되면서 공산당선언이 이뤄졌고, 후에 러시아혁명으로 이어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프랑스혁명의 여진, 민족주의와 함께 낭만주의 음악사조 등장

바로크 음악과 고전주의 음악 시기에는 대체로 정형화된 악곡 형식을 토대로 궁중에서의 연회나 의식, 행사용 음악, 교회의 성가나 미사 등 교회음악, 그리고 귀족들의 연회나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기존 질서가 깨지기 시작했다. 특히 평민 즉, 일반 민중의 삶과 예술적 욕구가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부터 1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흔히 낭만주의 시기라고 부른다. 이전까지 사회 통념은 ‘만물은 신의 산물’이라는 이유로 신은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었으나, 이 시기에 인간은 신의 산물이 아니라 자연에서 태어난 개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영향으로 개인의 사상과 개성, 시적이고 자유로운 감정을 추구하는 문화, 예술 전반의 변화가 일어났다.

음악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에게도 친숙하게 잘 알려진 슈베르트, 베버, 로시니, 멘델스존, 리스트, 슈만, 베를리오즈,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바그너, 베르디, 비제, 브루크너, 브람스 등이 바로 이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다. 물론 여기에 베토벤의 후기 음악을 포함할 필요는 있다. 베토벤의 이 시기 음악은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그의 전기 음악과 달리 인간 내면과 감성, 자유로운 사상이 흠뻑 묻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가 낭만주의 음악사조를 선도했다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슈베르트의 초상
슈베르트의 초상



슈베르트, 평화로운 일상의 염원을 선율에 담아

혁명과 전쟁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갈망했다. 그러한 욕구는 이 시기 음악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는데, 대표적으로 슈베르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슈베르트는 당시만 해도 그다지 관심이 없던 가곡을 많이 작곡했다. 그의 친구이자 시인인 프란스 폰 쇼버와 호퍼는 물론 괴테, 하이네, 뮐러, 릴케, 무라우 등 당대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토대로 수많은 곡을 썼다. 그가 가곡의 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슈베르트(1797~1828)는 특히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곡 ‘봄의 찬가(Fruhlingsglaube), D. 686’을 작곡했다. 1820년 작곡된 이 곡은 추운 겨울을 보내고 빨리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소망을 표현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오랜 기간 지속한 전쟁의 불안과 공포로 피폐해진 현실로부터 평화로운 일상을 바라는 염원을 담은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슈베르트의 친구이자 시인인 루트비히 울란트의 시를 소재로 작곡했다. 가사의 일부를 보면 그러한 소망이 여실히 잘 나타나 있다. 남풍이 불어 잠을 깨네 /밤이나 낮이나 속삭이며 /온 세상에 안 가는 곳 안 닿는 곳 없네 /오 달콤한 그 향기여 오 새소리 /모든 걱정은 가거라 /모든 세상은 새로워라 /온 세상 만물 새로워라.


고독했던 슈베르트의 삶, 사후에 비로소 빛 발휘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빈 교외 리히텐탈의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다른 작곡가에 비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많이 주목받지 못했다. 가난·고독·질병 등으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다가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다. 특히 청년 시절 자신의 곡을 부른 테레제 그로브와의 사랑에 실패하면서 그의 외로움과 고독은 더했다. 궁정악단이나 귀족을 위한 음악을 만들 기회도 없었다. 그저 친구와 어울리며 연주 여행을 했던 것과 그나마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음악 가정교사를 했던 것이 전부다. 그래서 그를 비운의 작곡가라고도 한다.

슈베르트는 당시 기존 형식을 강조하던 고전파의 틀에서 벗어나 작곡가의 자유로운 주관과 내면의 감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낭만파 음악의 새 장을 여는 첨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연가곡집 ‘겨울 여행(겨울 나그네)’을 포함해 ‘마왕’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백조의 노래’ 등 600여 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했다.

또한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 등 모두 1000여 곡을 남겼다는 것은 마치 펄 속의 진주 같은 천재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슈베르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함께 ‘겨울 여행’을 들으면서 눈가가 촉촉해졌던 순간이 기억난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열정이 오로지 한 줄기 빛이자 희망이었을 텐데, 그마저 좌절되고 혼자가 돼 차디찬 현실과 마주했을 슈베르트를 생각하면서 그의 고독이 느껴졌다. 그는 베토벤이 죽은 그다음 해에 병세가 악화돼 숨을 거뒀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유언대로 오스트리아 국립중앙묘원 베토벤의 무덤 바로 옆에 묻혔다.


필자 서천규(군사학 박사) 전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2작전사령부 작전처장, 육군대학장,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필자 서천규(군사학 박사) 전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2작전사령부 작전처장, 육군대학장,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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