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한밤의 총성이 산을 가르고 거센 빗줄기가 철모를 두드렸다. 40년 전 강원도 동부전선에서 한 청년이 그렇게 세상과 작별했다. 군은 그 죽음을 ‘개인적 사유’로 기록했고, 사건은 오랜 세월 서류 속에 봉인됐다. 현재 그 봉인을 해제하는 사람으로 근무 중이다.
처음 마주한 민원은 1985년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발생한 한 병사의 총기 사망사건이었다. 민원인은 90세를 훌쩍 넘긴 어머니와 60대 중반의 누나였다.
민원서에는 단 한 줄의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기린아(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재능이 남다른 사람)였던 제 아들의 명예를 찾아 주십시오.” 그 글을 읽는 순간 20년 넘는 군 생활 동안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묵직한 감정이 밀려왔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부대가 임관 후 첫 근무를 했던 곳이고, 고인은 내가 태어난 해 입대한 병사였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우연이 겹치며, 이 사건은 ‘운명적인 사명’처럼 다가왔다.
오래된 기록 대신 ‘사람’을 찾기로 했다. 당시 같이 복무했던 전우들을 일일이 수소문하며 전국으로 출장을 다녔다. 전문가 자문과 심리부검, 총기 자문 등 다각적인 조사도 진행했다. 그 결과 사망자는 낯선 환경과 열악한 근무여건 속에서 장시간 근무를 이어 가며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피로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죽음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닌 당시 군의 구조적 한계와 제도 미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조사 결과를 유족에게 설명해 드리던 날, 어머니는 병환으로 참석하지 못했고 누나만 함께했다.
“이제야 동생을 떠나보낼 수 있겠어요. 어머니도 이 소식을 들으시면 한이 풀리실 거예요.”
이후 절차는 우리 기관 소관이 아니었지만, 마지막까지 민원인을 돕고 싶은 마음에 순직 심사 절차 등을 확인·안내해 드렸다. 고령의 민원인에게는 하루하루가 소중했기에 관계자에게 신속한 심의를 요청했다. 얼마 뒤 관계자에게 연락이 왔다. “2025년 7월부터 개정된 군인사법에 따라 재심사는 접수 후 120일 이내에 완료할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유족에게 재심 신청을 안내했고, 지난 10월 17일 군은 해당 장병을 순직으로 결정했다. 40년의 기다림 끝에 진실의 문이 열렸다. 고인은 ‘군인’으로서 명예를 되찾았다.
이번 조사를 하면서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기록을 정리하거나 과거를 되짚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전우의 이름을 되찾고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며 국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사망민원조사단은 ‘진실로 명예를’이라는 신념 아래 모든 장병이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로부터 정당한 명예와 예우를 받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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