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치를 남들이 정하는 것, 그것은 의존일세. 반면 나의 가치를 내가 결정하는 것, 이것은 자립이지. 행복한 삶이 어디에 있는지 답은 명확하겠지? 자네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네.” -『미움받을 용기』에서
나의 가치를 내가 결정하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는 것이 사실 쉽지는 않다. 어릴 때부터 모난 행동을 하지 말고, 타인을 의식하도록 강제돼 온 사회 관습에 익숙한 이상 이런 독립적 자아 추구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은 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칭찬에 목말라한다.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갖는 본능적인 행동이지만 이런 칭찬만큼 나를 제약하고, 나의 행복을 침해하는 일도 없다. 보이기 위해 하는 일, 마지못해 하는 일, 남들이 잘한다고 하니 얼떨결에 하는 모든 일이 바로 칭찬을 갈구하면서 생긴 일이다. 그곳에서 자립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원시 공동체에서는 타인의 도움 없이 홀로 생존하기가 불가능했고, 이런 환경이 타인 의존적인 DNA를 만들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이 어디 남의 도움이 없다고 당장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원시사회인가?
칭찬을 바라지 않고 한 일이 칭찬을 불러온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집단에서 주어진 일을 잘해 칭찬받는다면 좋은 일이다. 집단에 속해 있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일을 열심히 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칭찬이라면 나의 생존성을 높이고, 일에 대한 애정도 높아진다. 신이 난다. 그러나 칭찬받기 위해 하는 일은 오래가지 못한다. 칭찬이 듣기 좋아 오버런(OVER RUN)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건 다시 종속을 부른다.
타인이 나를 칭찬하는 이유는 두 가지밖에 없다. 나에게 바라는 게 있든지, 부럽든지다.
부러움은 종종 시기와 질투로 연결되는 법이다. 진정으로 나의 성취 자체를 두고 칭찬할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칭찬받을 때 겸손한 사람은 잠재적 적을 만들 위험이 적어진다. 항상 겸손하라는 이유다.
칭찬의 실체를 알면 내가 칭찬을 바라는 그 목적도 자연히 알게 된다. 칭찬의 끝은 지배욕이다. 세상의 사람들이 나에 대한 칭찬에 침이 마를 때 내가 갖는 타인의 감정에 대한, 혹은 타인이 가진 물질에 대한 지배력이 커지는 것이 내가 그토록 바라는 칭찬의 결과물이다. 그런 욕망의 결과가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는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남의 칭찬을 바라는 삶은 곧 나의 삶이 끊임없이 타인의 삶에 좌우되도록 방치하는 삶이다.
남의 칭찬을 바라는 삶은 곧 나의 행복을 타인의 행복 기준에 맞추는 삶이다. 타인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는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규정하는 성숙한, 그리고 진정으로 독립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지성인의 모범적 삶이다.
바다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가져야 할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이 바닷물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 천지에서 목마름의 극한을 느껴야 하는 건 아이러니지만, 바닷물을 마시는 이는 삶을 포기한 사람이든지, 정신적 충격을 받아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마실수록 더 목마르기 때문이다. 칭찬이 그런 것이다. 바닷물처럼 마실수록 더욱 갈증을 일으키게 한다. 타인의 의사에 굴복하는 삶을 살게 한다.
칭찬이 나를 더 목마르게 할 때, 진정한 나의 자립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타인의 칭찬으로부터 독립, 그곳에서부터 나의 자존과 자립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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