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패션의 역사

바퀴 단 순간 짐에서 힘으로… 가방, 생존·노동·취향 모두 담았다

입력 2025. 11. 10   16:42
업데이트 2025. 11. 1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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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 - 가방의 역사 ㉻

1970년 美 발명가, ‘끌차’에 착안
개인 가방 바닥에 바퀴 달아
무거운 트렁크도 혼자 끌 수 있게 해
트렁크·캐리어·핸드백·백팩…
이동 도구로 태어나 산업 매개로
‘의미 담는 시대’ 들어서

1972년 제출된 버나드 섀도의 특허출원서와 그가 발명한 바퀴 달린 가방의 첫 광고. 필자 제공
1972년 제출된 버나드 섀도의 특허출원서와 그가 발명한 바퀴 달린 가방의 첫 광고. 필자 제공



19세기 초 사람들은 더 빠르게, 더 멀리 이동하게 됐다. 철도와 증기선이 도시를 잇고, 산업이 세계를 연결했다. 이동은 더 이상 모험이 아니라 친숙한 일상이 됐다. 가방은 이 변화의 한복판에 있었다.

1825년 9월 27일 영국에서 ‘스톡턴 앤드 달링턴 철도(S&DR)’가 개통되며 증기기관차가 공공철도에 본격 투입됐다. 19세기 중엽에 이르자 사람들은 기차로 출근하고, 배를 이용해 무역을 했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인간의 이동을 혁신적으로 넓혔다.

교통수단이 개선되고 여행이 늘자 튼튼한 가방이 필요해졌다. 기존 선박 화물 적재 등에 쓰이던 목재 틀에 가죽을 덧댄 대형 궤짝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이를 ‘트렁크(trunk)’라고 불렀다. 무겁고 단단한 트렁크는 철도와 항구를 따라 움직였다. 귀족은 금속장식이 달린 트렁크를, 상인은 캔버스 덮개를 씌운 실용성이 높은 트렁크를 사용했다. 트렁크가 근대적 형태로 발전하며 인류는 개인이 혼자 많은 짐을 갖고 세계를 이동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1858년 프랑스 파리, 마흔을 바라보던 상자 제작자 루이비통은 방수 캔버스로 만든 트렁크, 이른바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를 최초로 선보였다. 위로만 열리던 전통적인 형식과 달리 수평으로 여닫히는 이 가방은 운반을 더욱 편리하게 바꿨다. 이 디자인은 근대 이후 여행가방의 기준이 됐다.

19세기 후반 산업화는 일하는 공간을 크게 변화시켰다. 사무직이 보편화되고 서류와 계약서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가방은 더 작고 가벼워져야 했다. 이때 주로 서류를 넣는 납작한 가방 ‘브리프케이스’가 등장했다.

1880년대 영국 런던에서 일하던 변호사와 은행원들은 단단한 가죽 브리프케이스를 들고 다녔다. 서류와 문구류를 필요에 따라 정리하고 쉽게 꺼낼 수 있도록 내부를 여러 칸으로 나눴다. 이 시기 가방은 단순히 서류만을 담아 운반하는 그릇이 아니라 문서적인 사무 전반을 위한 도구로 진화했다.

19세기 말 여성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게 됐다. 사회활동이 많아지며 옷차림이 간소해졌다. 드레스의 크리놀린(Crinoline·치마 폭을 넓히기 위해 착용한 속치마 구조물)이 사라지고 코르셋이 느슨해지자 여성복은 가벼워졌다. 이에 따라 손에 들 수 있는 가방이 늘었다. 이 시기 여성용 가방은 모양이 작고 단단한 형태를 유지했다.

1900년대 런던·파리의 백화점에는 작은 손가방이 등장했다. 단추나 금속장식이 달린 작은 손가방은 외출복의 일부가 됐다. 1920년대 들어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손으로 드는 작은 외출용 가방이 유행했다. 대표적으로 파티·무도회·오페라 등 격식을 차린 자리에서 여성들이 들던 작고 장식적인 가방 ‘이브닝백’과 손으로 꽉 쥐는 형태인 ‘클러치백’ 등이 있다.

20세기 초에 벌어진 두 차례 세계대전은 가방 형태를 다시 한번 바꿨다. 군인들은 장거리 이동을 위해 견고한 배낭을 썼고, 탄띠와 탄약주머니에서 비롯된 파우치형 가방이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전쟁이 끝난 뒤 군용 캔버스와 금속 부속은 일상 가방 제작에 그대로 쓰였다.

1945년 이후 산업 생산이 회복되자 여행이 다시 증가했다. 1950년대 항공산업이 성장하면서 수화물용 가방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가 등장했다. 1970년 미국 발명가 버나드 섀도는 가족과 휴가여행을 다녀오면서 공항에서 짐꾼들이 대형 끌차를 끄는 모습을 보고 개인 가방 바닥에 바퀴를 달아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가 내놓은 바퀴 달린 케이스는 1972년 특허를 받았다. 1987년 델타항공 조종사 로버트 플라스는 세로형 두 바퀴와 신축성 있는 손잡이 구조를 도입해 ‘롤러보드’를 고안해 냈다. 오늘날 캐리어의 원형이다. 이제 무거운 트렁크도 한 사람이 혼자 끌고 다닐 수 있게 됐다.

1955년 2월 샤넬은 체인 스트랩을 단 가방 ‘2.55’를 출시했다. 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어깨에 멜 수 있도록 한 이 디자인은 여성복의 조합을 더욱 다채롭게 했다. 1956년 에르메스에선 ‘삭 아 데페슈’라는 남성용 가방 제품군을 출시했다. 배우이자 모나코 레니에 3세의 공비였던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이 가방을 들고 찍힌 사진이 유명해지자 본래 남성용이던 가방이 그 순간 여성들의 아이콘으로 바뀌었다. 이 가방은 1977년 ‘켈리백’이라는 정식 제품군명을 받으며 여성용 손가방의 상징이 됐다.

1994년 디올에서 제작한 ‘슈슈’는 1995년 베르나데트 시라크가 다이애나 비에게 선물한 가방으로 유명해졌다. 1996년 이 가방은 ‘레이디 디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가방은 이제 실용품을 넘어 사회적 기호가 됐다. 20세기 후반 브랜드 로고는 신분을 대신했다.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구찌의 GG 패턴, 프라다의 나일론백은 ‘명품’ 시대를 열었다.

1960년대 이후 섬유산업의 발전으로 나일론, PVC, 폴리에스터 같은 합성섬유가 가방 소재로 대거 사용됐다. 이 소재는 가볍고 튼튼해 여행가방과 학생용 가방에 적합했다. 1980년대 일본과 한국 학생들은 나일론 백팩을 메고 등교했다. 가방은 더 이상 귀족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누구나 하나쯤 가진 생활필수품이 됐다.

1990년대 이후 노트북과 휴대전화가 늘며 가방 구조가 세분화됐다. 안쪽에는 완충재와 포켓이 생겼고, 충전선이나 케이블을 수납할 공간이 따로 마련됐다. 업무와 이동이 결합된 사회에서 가방은 개인의 이동식 사무실이 됐다.

동시에 패션시장은 세분화됐다. 토트백, 크로스백, 미니백, 에코백이 등장했고 성별 구분이 흐려졌다. 2000년대 이후 남성용 클러치와 여성용 백팩이 함께 유행했으며 형태보다 기능이 앞섰다.

21세기 들어 패션산업은 새로운 질문을 받는다.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가, 어떻게 재활용할 것인가. 나일론 대신 재생섬유, 천연가죽 대신 식물성 소재가 주목받았다. 루이비통과 프라다는 친환경을 고려한 여러 형태의 리사이클 컬렉션을 발표했고, 다양한 브랜드에서 환경을 고려한 천막천이나 폐플라스틱을 재가공한 가방을 내놨다.

유행은 돌고 돈다. 미관을 주로 좇던 가방은 다시 기능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로고보다 내구성을, 가격보다 환경을 따지기도 한다. 동시에 일상의 이동 범위가 넓어지며 작은 백팩이나 크로스백이 기본이 됐다.

가방은 ‘이동’을 위한 도구로 태어나 산업의 매개로 자리 잡았다. 사람은 그 안에 생존, 노동, 취향을 담았다. 산업혁명기 트렁크, 전후의 캐리어, 디자이너의 핸드백, 학생의 백팩은 모두 시대의 이동방식을 보여 준다.

가방의 역사는 사람의 이동방식과 같다. 한 시대의 가방을 보면 그 사회가 무엇을 옮겼는지,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가 보인다. 이제 가방은 물건보다 의미를 담는 시대에 들어섰다. 인류는 여전히 가방을 들고 이동한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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