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돋보기
트럼프 2.0 시대 미국·중남미 관계 동향 ②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미국의 대중국 견제 행보
1997년 홍콩 기업에 2개 항구 운영권
트럼프, 中 위협 증대 이유 파나마 압박
美에 지분 매각 추진…中 개입에 무산
‘美 2개 운영·中 41개 지분’ 대안 떠올라
파나마, 협상 참여 중국 회사 감사 착수
지난 7월엔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 진행
중국의 해외 투자는 광업·에너지·통신 등 전 분야에서 걸쳐 있다. 최근에는 항구를 포함한 해상 인프라 분야에서 적극적 행보를 보였다. 그 결과 중국 민간·국유 기업은 소유권 지분, 장기 임대 계약, 건설 프로젝트 등을 통해 세계 100개 이상의 항구 운영에 관여해 왔다. 특히 중국의 영향력이 중남미 지역까지 확장되면서 미국의 안보·이익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한 전략경쟁에서 정부의 재정 지원, 고품질의 저렴한 기술, 정치적 후원을 갖춘 해외 기업들을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 지원을 받는 중국의 해외 기업들은 자본 조달과 인프라 구축을 갈망하는 지역 경제에 투자하면서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시키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 과정에서 지부티나 캄보디아처럼 중국 인민해방군이 실질적인 군사적 거점을 마련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상업적·기술적 파트너십 구축에 중점을 두는 모습이다.
중국 중앙당국과 긴밀한 관계인 국유기업은 베이징의 핵심 정책 수단이다. 이들은 막강한 재정 능력을 통해 투자 수용국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러한 영향력은 부패가 만연하고 제도적 취약성이 큰 국가들에서 더 명백히 확인됐다. 나아가 중국당국은 국가 이익과 관련됐다고 판단하는 사안에서는 연관된 민간 기업에 대해서도 직접 압박하면서 투자 수용국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 결과 투자 수용국은 중국 기업이 제공하는 저비용의 효율적 기술에 장기적으로 의존하게 됐으며, 중국의 투자로 구축된 인프라에 사이버 취약성의 문제도 부상했다.
파나마 운하는 중남미 지역 해운 인프라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가장 큰 우려가 제기된 곳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지름길인 파나마 운하는 1903년 당시 신생 독립국이던 파나마로부터 운하의 지역 운영·통제권을 영구 임대한 미국이 공병대를 동원해 완공했다. 1914년 8월 정식 개통됐고, 1977년 체결된 토리호스·카터 조약에 따라 1999년 12월 31일부로 파나마 정부가 운하를 전면 통제하게 됐다. 현재 운하를 통한 매출은 파나마 국내총생산(GDP)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파나마 운하에는 총 5개의 주요 항구가 있다. 이 가운데 태평양 쪽 발보아 항구와 대서양 쪽 크리스토발 항구는 1997년의 운하 운영권 입찰을 통해 홍콩 기반 기업인 CK 허치슨 지주회사가 운영을 맡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이 회사의 활동으로 파나마 운하가 사실상 중국 영향력에 놓였다고 주장하면서 1999년 파나마 정부에 이양한 운하 통제권을 환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미국의 압박에 따라 지난 3월 CK 허치슨 지주회사는 파나마 운하를 포함한 중국·홍콩 지역 이외의 43개 항구 지분 중 80%를 미국 투자회사 블랙록이 이끄는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트럼프의 공세적 행보에 따른 미국의 외교적 승리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 합의는 철회됐다. 중국 당국이 ‘국가 주권, 안보 및 발전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반독점 조사를 개시하면서 CK 허치슨 지주회사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는 경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합병인수를 거부하는 권한을 정부에 부여한 독점 금지법에 따른 조치였다. 동시에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 민간 기업에 대한 중국 당국의 통제력이 강화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았다.
지분 매각 합의가 철회된 가운데 중국은 운영권 매각 협상에 자국 국유회사인 중국해운그룹(COSCO)이 참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COSCO에 20~30%의 지분과 실질적 거부권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거래를 승인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요구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든 가운데 파나마 운하의 2개 항구는 블랙록이 이끄는 컨소시엄에서 운영하되 COSCO는 나머지 41개 항구에서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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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안은 미국이 정치적 승리를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왔다. 중국 정부의 직접적 통제를 받는 COSCO의 역내 항구 운영권 확보로 인해 미국의 안보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이와 관련, 지난 6월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메이카의 킹스턴과 멕시코의 만자니요·베라크루스 항만 등이 미국과의 근접성과 중국의 영향력 측면에서 파나마 운하의 항만들보다 더 큰 위험을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 중국 군사 기업으로 분류된 COSCO가 이들 항구에서 새로운 입지를 확보할 경우 미국의 경제·안보 이익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장기적·전략적 고려에 따라 미국이 단기적인 정치적 승리를 위해 중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절충적 대안에 합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파마나 운하 내 항구 운영과 관련한 미국과 중국의 경쟁적 행보가 본격화한 가운데 파나마 정부도 CK 허치슨 지주회사를 상대로 압박을 가하는 형국이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지난 8월 정례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CK 허치슨 지주회사의 자회사가 2021년 체결한 항구 운영권 양허 연장 계약의 효력에 대해 감사원이 법원에 무효화를 청구했다면서 법원의 무효 결정이 나오면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통해 운영권을 인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파나마 정부의 방침은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 구도에서 미국에 우호적인 행보를 견지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파나마 정부는 운하 일대에서 미군과의 합동 군사훈련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친미 성향의 정책 기조를 보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에는 CK 허치슨 지주회사의 자회사를 상대로 감사에 착수했다. 이는 1997년 운하 운영권 입찰 계약 이후 최초의 감사로 중국 견제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국 역시 친미 성향의 파나마 정부와 공조 행보를 보여주면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모습이다. 지난 4월 파나마를 방문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파나마 운하의 영향력 확대를 매개로 한 중국의 안보위협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중국으로부터 운하는 안전하게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지난 7월에는 미국과 파나마 군경의 합동 군사훈련이 진행됐다. 여기에 베네수엘라의 마약 카르텔 위협에 대응하려는 미국의 해군력 전개에서도 파나마 운하의 중요성이 커졌다.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미·중 경쟁 행보의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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