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10년, 두 곳의 일반전초(GOP) 사단에서 정훈장교로 근무했다. 임관 후 첫 자대로 강원 철원군에 갔을 때는 모든 게 낯설었다. 산과 언덕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부터 외따로운 병영식당의 튀김 냄새, 조립식 컨테이너에서 쏟아져 나오는 발걸음 소리까지. 2016년 그곳에서 신임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첫 임무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가는 포탄의 탄두를 촬영하는 것이었다. 포병사격을 처음 본 나로선 쉽지 않은 임무였다. 그로부터 몇 달간은 대대 정훈장교가 어떤 직책인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다 알지도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 내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다른 이들이 “고생한다, 조금만 버텨라”라고 말하는 그곳의 생활이 일상이 됐다. 그 속에서 업무를 배우고 사람을 이해해 나갔다. 하루하루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반복되는 생활에서 ‘버틴다’는 말의 진짜 의미가 ‘배움’임을 알게 됐다.
철원에서 보낸 5년은 배움의 시작이었다. 연대급 공연 하나를 준비하려면 며칠씩 현장을 뛰어다녀야 했고, 한 시간의 교육을 준비하려면 먼저 사람부터 알아야 했다. 장병들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스스로 부대 임무를 이해하는 데 매진하고 부대사를 연구하며 용사들이 하나 된 애대심과 자긍심을 기르는 데 노력했다.
대위로 진급한 뒤 고성에서의 배움은 조금 달라졌다. 공보장교로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의 정확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게 됐고 민·관·군의 유기적 협력이 대군 신뢰의 밑바탕이 된다는 것도 생생히 느꼈다. 또한 정신전력교육장교로서 장병들이 전장으로 나갔을 때 두려움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신전력 배양을 위해 노력하면서 지휘관의 의도가 말단부대까지 닿도록 하는 일, 그 간격을 줄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체감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 모든 시간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10년은 긴 시간이었지만, 비슷한 하루하루에도 매일 다른 표정과 이야기가 있었다. 교육장에서 진지하게 눈을 맞춰 주던 용사들의 모습과 교육 뒤 “잘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음료수를 건네며 인사하던 간부들의 한마디는 큰 위로가 됐다. 이렇다 할 일이 없는 평범한 하루 역시 감사한 시간이었다. 화려한 모습은 없었지만 그 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군의 첫걸음을 내딛는 청년들을 맞이하는 육군훈련소로 보직을 옮긴다. 낯선 환경 속에서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할 신병들의 눈빛을 상상하며 그동안 걸어온 시간을 떠올린다. 그 마음에 용기와 자부심의 씨앗을 심어 주고 싶다. 그들의 배움과 성장에 힘이 돼 주고 싶다. 눈 덮인 철원과 바람 센 고성에서 배운 그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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