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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알려준 삶의 허무와 지혜

입력 2025. 10. 21   15:24
업데이트 2025. 10. 2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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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관 소령 해군재경근무지원대대 목사
임명관 소령 해군재경근무지원대대 목사



여름은 언제나 더위와의 싸움이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공기마저 눅눅해져 버리는 계절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시원함을 찾아 헤맨다. 에어컨 아래에 서성이고, 얼음 가득한 아이스커피를 들이켜며, 눈처럼 부드러운 빙수 위에 얹힌 시럽을 보며 잠시 내면의 갈증을 달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반팔 옷 차림으로 더위를 피하려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서 더위를 이겨보려 했던 노력이 무색하리만치 계절은 그렇게 순식간에 바뀌었다. 바람은 서늘해졌고, 나는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긴팔 셔츠를 다시 꺼내 입었다. 그 순간, 묘한 허탈감이 찾아왔다. 이제 막 익숙해진 여름과의 싸움 방식이 무용지물이 돼버린 듯한 허무함이었다. 그 허무함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 노력과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을.

사람은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하려 애쓴다. 마치 더위를 견디기 위해 얼음을 찾고 선풍기를 돌리며, 시원한 장소를 찾아 머무는 것처럼. 하지만 결국 계절은 인간의 노력과 상관없이 흘러가고, 가을바람이 불면 더위는 사라진다. 단풍이 물들어가는 가을이란 계절은 성숙과 결실의 계절이다. 무더위에 지쳤던 마음이 서늘한 바람에 위로받고, 알록달록 물든 나뭇잎들이 우리에게 변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인생도 그러하다. 뜨거웠던 시련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마침내 결실과 성숙이라는 가을이 우리 앞에 찾아온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도서 3:1)란 성경 말씀처럼 인생의 문제도 때가 돼야 해결되는 일이 있다. 반면 아무리 서둘러도, 아무리 애를 써도 때가 아니면 이뤄지지 않는 일들도 있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은 내가 무언가를 해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때였다. 마치 거센 파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불안은 커져만 갔고, 더 필사적으로 몸부림칠수록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드는 듯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니, 그 거센 파도도 때가 되면 잔잔한 물결로 가득한 평화로운 바다로 바뀌었다. 인생은 어쩌면 계절의 변화와 파도의 리듬이 어우러진 긴 항해다. 뜨거움과 차가움, 두려움과 평온, 절망과 소망이 교차하는 물결 속에서 우리는 성숙해지고 단단해진다. 내가 애쓰지 않았더라면 깨닫지 못했을 감사가 있고, 내가 바꾸려 노력하지 않았더라도 ‘때가 되어 저절로 풀리는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인생은 이처럼 ‘하나님의 때’와 인간의 노력이 교차하며 흘러간다.

이제 다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손끝에 스치는 선선함이 새로운 계절의 문을 연다. 우리의 작은 노력과 조심스러운 기다림이 쌓여가자 어느새 계절은 바뀌어 있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인생의 어떤 문제는 억지로 붙잡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풀어진다는 것을.

더위가 지나고 가을이 오듯, 억눌린 마음도 때가 되면 풀리고, 애써 씨름했던 고난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서서히 드러낸다. 그래서 처음엔 허탈했던 ‘변화’도 지나고 보면 내게 깨달음을 안겨준 소중한 선물임을 알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기다림 속에서 참된 지혜를 배운다. 그렇게 우리는 더욱 성숙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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