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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아마추어

입력 2025. 10. 21   15:25
업데이트 2025. 10. 2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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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봉 예비역 육군원사
신희봉 예비역 육군원사

 


1986년, 스물한 살에 육군 하사로 임관해 처음 입대한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군복의 무게는 계급장이 늘어날수록 더해졌고,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짐은 어깨에 깊이 새겨졌다. 그렇게 37년을 군이라는 조직 안에서 보냈다. 훈련, 경계, 작전, 반복되는 일상에서 맡은 임무는 언제나 무거웠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 첩첩산중을 헤매던 기억, 생사의 경계에서 새우던 밤은 지금도 선명하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직후 민·관·군 합동조사단에 투입돼 파편 하나, 기름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으려 밤낮없이 임무를 수행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현장 안전관리 임무 역시 긴장과 압박 속에서 질서를 지켜야 했다.

그렇게 장기복무를 이어가며 원사로 전역했다. 하지만 전역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복잡했다. 후련함과 막막함이 교차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전역은 또 다른 시작이다”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더 크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군 복무 동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 부족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지 못한 날이 많았고, 출장이나 훈련으로 집을 비우는 동안 아내 혼자 육아를 감당해야 했다. 그 미안함이 전역 후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됐다.

전역 후 나는 제대군인지원센터를 통해 다양한 지원을 받았다. 직업상담으로 현실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자격증 취득과 취업 알선까지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도록 이끌어준 상담사 선생님들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 나는 신촌의 한 대형 백화점에서 시설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냉난방 설비부터 전기, 소방, 고객 안전까지 꼼꼼히 살피는 하루하루가 군에서 쌓은 경험을 그대로 활용하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다. 군에서는 ‘명령’이 곧 ‘행동’이었지만 사회에서는 ‘소통’과 ‘배려’가 중요했다. 말과 행동 하나가 동료에게 다르게 전달될 수 있음을 알았고, 시행착오도 겪었다. 하지만 이 또한 배움이었다.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투성이지만, 이제는 그 모든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직 모르는 게 많아 내세울 것 없는 실수투성이,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그냥 즐기는 거야.”

이승철의 노래 ‘아마추어’ 가사처럼, 나는 이제 ‘부대 밖의 또 다른 임무’를 수행 중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배우며 나아가고, 선택과 책임 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전역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오늘도 나는 내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를 채워가며, 새로운 ‘아마추어’ 인생을 단단히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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