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과 AI, 전장의 공식이 바뀐다
해양을 정복하는 지능형 수상·수중 드론
우크라 ‘마구라 V7’ 해양전투 새 역사
올해 5월 러 Su-30 2대 미사일 쏴 격추
미 해군 오르카, 잠수함처럼 작전 수행
일·중, 6~7㎞ 심해용 개발 또는 운영 중
기술 발맞춰 지휘·감시 체계 등도 발전
해양 작전의 무인 통합 시스템화 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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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을 당시, 미 해군의 전함들이 항공기의 폭탄과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
1989년에는 소련 해군의 핵잠수함 ‘코믈소몰레츠(Komsomolets)’가 노르웨이 해역에서 침몰해 42명의 승조원이 목숨을 잃었다. 2021년에는 인도네시아의 잠수함 ‘낭갈라(Nanggala)’가 훈련 중 실종되어 5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처럼 인류는 수십 년간 심해의 위험 속에서 귀중한 생명을 잃어왔다.
그런데 2025년 5월, 전혀 새로운 해양전투 역사가 쓰였다. 우크라이나의 해상 드론 ‘마구라 V7’이 미사일을 발사해 러시아의 700억 원짜리 Su-30 전투기 2대를 격추했다는 것이다. 단 3억 원짜리 무인정이 200배 더 비싼 유인 전투기를 바다에서 하늘로 미사일을 쏘아 떨어뜨린 이 사건은 해양 전장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줬다.
수면 위아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장이 펼쳐지고 있다. 현대 해군력의 핵심은 더는 수상함이나 항공모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제는 적의 눈을 피해 해상과 심해로 침투해 정찰하고, 탐색하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지능형 해상·수중 드론(USV/AUV)’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과 자율 항법, 해상·해저 통신 기술의 결합은 해양 작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제는 과거의 바다 참사가 반복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과 자율기술이 결합한 ‘지능형 해상·수중 드론’이 해양 전장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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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드론의 혁명적 등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해상 드론의 가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해군력이 거의 전멸한 우크라이나가 해상 드론만으로 러시아 흑해함대 전력의 30%를 무력화시켰다는 평가가 있다. 우크라이나는 길이 5.5m의 소형 무인 수상정 ‘마구라 V5’가 러시아의 세르게이 코토프함, 체사르 쿠니코프 상륙함 등 12척 이상의 러시아 함정을 격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는 전략 요충지인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잠수함 기지를 포기하고 노보로시스크로 후퇴해야 했다는 분석도 있다.
더 놀라운 것은 해상 드론의 진화 속도다. 초기에는 단순히 폭발물을 싣고 함정에 돌진하는 자폭 드론이었지만, 이제는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해 헬리콥터와 전투기까지 격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우크라이나는 2024년 12월 러시아 Mi-8 헬리콥터를, 2025년 5월에는 Su-30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내용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해상에서 하늘의 적기를 요격하는 것은 해전사상 전례 없는 일이다.
수중 드론의 은밀한 진화
한편, 수면 아래에서는 또 다른 혁명이 진행 중이다. 과거의 수중 드론은 주로 해양 지질 탐사나 해저 지형 맵핑 등에 사용되는 민간용 장비에 가까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군사적 임무 수행 능력을 갖춘 고성능 모델들이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해군의 ‘오르카(Orca)’다. 보잉이 개발한 이 대형 무인 잠수정은 길이 26m, 무게 50톤 이상이며, 1만2000km 이상을 자율적으로 항해할 수 있다. 전통적인 잠수함처럼 사람 없이도 장기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이런 수중 드론의 작동 핵심은 ‘자율성’이다. 수중에서는 GPS 신호가 닿지 않기 때문에, 관성 항법장치와 수중 음파 통신, 자기장 기반 항법 기술이 결합한 독립적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필수다. 특히 해양은 염도, 수온, 해류 등이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AI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항로를 스스로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초심해 탐사를 위한 기술도 빠르게 발전 중이다. 일본은 ‘딥스타(DEEPSTAR)’ 프로젝트를 통해 6000m 심해에서 작동 가능한 수중 드론을 개발 중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자체 개발한 ‘하이옌(Yanlong)’ 드론을 배치하고 있으며, 7000m 수심까지 자율 운용이 가능하다. 이는 해저 광물 자원 확보는 물론 전략 요충지 감시에도 활용된다.
우리나라도 해양 드론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기술 진전을 이루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수중 다기능 무인체계’ 개발 사업을 통해 수중 통신, 자동 복귀, 자율 충전 기능이 포함된 고성능 수중 드론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특히 국내 조선·해양 기업들과 협력하여 수상·수중 드론의 기동성과 내구성을 강화하고 있으며, 차기 사업으로는 다중 드론 간 협업 운용 기술도 추진되고 있다.
통합 작전환경 구축과 미래 해양 전장의 모습
이런 기술 발전은 단지 장비의 성능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드론 운용을 위한 해상·수중 지휘통제 체계, 해저 센서 네트워크, 위성 기반 데이터 통합 시스템 등 전반적인 작전환경이 함께 발전하고 있다. 미국은 ‘해양 전장 상황 인식(Maritime Domain Awareness)’ 전략하에 수상·수중 드론, 해상 레이다, 통신 위성을 통합한 해양 감시 체계를 구축 중이다.
해상·수중 드론의 가장 큰 강점은 비대칭 전력으로서 효과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례에서 보듯이, 해군력이 열세인 국가도 소수의 드론으로 강대국 해군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또한 유인 장비가 접근하기 어려운 위험 해역이나 심해 지역에서도 장시간 작전이 가능하며, 적 탐지망에 걸릴 확률도 현저히 낮다.
미래의 해양 작전은 단순한 정찰을 넘어, 공격과 방어를 모두 수행하는 무인 통합 시스템으로 진화할 것이다. 해상에서는 대공 미사일을 탑재한 방공 드론이, 수중에서는 기뢰 탐지·제거와 함께 적 잠수함을 추적하는 헌터-킬러 드론이 등장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해상과 수중을 오가며 다차원 작전을 수행하는 ‘완전 자율 해양 전장 플랫폼’이 현실화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기술들이 단지 미래 지향적 상상이 아니라, 실제 전장에서 검증받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의 마구라, 미국의 오르카, 중국의 하이옌까지, 현실 해양에서 작전을 수행하며 그 위력을 입증하고 있다. 해상 드론이 전투기를 격추하고, 수중 드론이 적 함정을 추적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미래 해양 전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해상·수중 드론의 균형 있는 개발이 필요하다. 단순한 장비 도입을 넘어서, 실제 작전환경에 맞는 시험 운용과 전술 적용이 병행되어야 하며, 관련 인력 양성과 법·제도 정비도 시급하다. 해양 작전의 중심축이 되는 해상·수중 드론 기술은 미래 안보환경에서 전략적 자산으로서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드론이 단순한 무인 장비가 아닌,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전장의 두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다음 회에서는 센서 융합 기술이 만든 완벽한 상황 인식 시스템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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