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스파이, 그들이 온다

숨기지 말고 널리 알려라?

입력 2025. 10. 10   15:13
업데이트 2025. 10. 1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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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그들이 온다 - “이런 사람이 스파이입니다”

방첩활동, 전 국민 협력 필요
보안유지보다 교육·홍보 중요

중, 자국민에 스파이 접근 방식 공유
구체적 사례 알려 현지인 포섭 방해
美 FBI도 방첩공작 상세내용 공개해
비밀주의 벗고 적극 제보·협조 유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중국의 스파이 색출 캠페인


중국의 국가기밀 관리와 보안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기밀보호국은 지난달 초 외국 정보기관에 포섭된 고학력 인텔리 간첩 사례 2건을 공개하며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외국의 스파이 활동에 경계심을 가져 줄 것을 촉구했다.

기밀보호국이 공식 위챗(중국 메신저 앱) 계정을 통해 소개한 간첩 사건의 첫 번째 주인공은 첨단 통신기술 분야의 ‘저우’ 박사다. 저우 박사는 2006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해외 대학에 박사 후 연구과정을 신청하면서 자신의 신상과 논문 내용 등을 기재했다. 이를 눈여겨본 외국 정보기관이 수차례 접근해 금품을 제공하면서 포섭됐다고 한다.

중국으로 귀국한 그는 대학 부교수로 재직하며 국방 관련 기밀에 해당하는 연구를 수행하던 중 중국의 무기체계 개발 현황과 성능 등 200건이 넘는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체포됐다. 또 다른 엘리트 간첩은 중국 군사연구소 선임 연구원인 ‘장’이다. 그는 2011년 해외 학술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군 장교로 위장한 외국 정보요원과 친분을 쌓았다. 이후 신분을 밝힌 외국 정보요원이 개인적인 지원과 자녀의 해외 유학을 도와주겠다며 포섭했다. 장은 중국의 첨단 무기체계 개발 방향과 연구내용 등 방위산업 분야의 민감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기밀보호국은 이들 사례를 바탕으로 외국 스파이의 전형적인 접근 방식을 소개하며, 간첩활동에 연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촉구했다. 소개된 주요 내용은 △학자나 연구 협력자로 위장해 학술 교류를 미끼로 접근 △친밀감을 조성하며 정서적 약점을 활용해 접근 △인터넷 포럼이나 SNS에서 친분관계 조성 후 접근 △사업 파트너 또는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프로젝트 참여나 정보검증을 구실로 접근 △기자, 비자 담당자, 비정부기구(NGO) 회원 등으로 위장해 인터뷰를 빙자한 대면접촉 시도 등이다.

또 직접적인 접촉이 없더라도 민감한 정보를 온라인에 공유하면 외국 정보기관의 공개정보 수집활동에 악용돼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경각심을 촉구했다. 이번에 소개된 스파이들의 접근 방식은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든 스파이를 포섭하기 위해 활용하는 기법이며 중국 정보기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만 중국 정부가 최근 들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방첩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특히 기밀보호국뿐만 아니라 비밀스러운 운영 방식을 강조하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가 전면에 나서고 있는 점은 특징적인 변화다.


방첩 교육 전면에 나선 중국 정보기관

중국 국가안전부는 지난 5월 공식 위챗 계정에 중국 내 잠입한 외국 스파이들의 위장신분과 행동 유형을 소개하는 ‘스파이의 N개 얼굴’이라는 홍보물을 올렸다. 외국 스파이들이 컨설턴트, 학자, 사업가, 관광객, 언론인 등으로 신분을 위장해 중국인에게 접근하고 있다며 경각심을 촉구한 것. 소개된 스파이 유형은 △컨설턴트로 위장해 자문·설문조사를 빙자, 군사정보와 첨단기술 수집 △학자로 위장해 대학 및 연구기관에 접근한 뒤 연구 성과 탈취 △사업가로 위장해 기업이나 정부기관에 접근해 투자·협력 등을 명분으로 중요 정보 수집 △관광객으로 위장해 주요시설 촬영 및 상세지도 작성 △기자나 NGO 회원으로 위장해 인터뷰를 빙자, 국가기밀 수집 △유학생이나 온라인상 친교를 통한 감정적 동질감을 스파이 활동에 활용하는 행위 등이다.

이는 기밀보호국의 홍보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국가안전부는 더 구체적인 내용을 자주 게시하며 방첩 경각심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8월에도 외국 세력이 자국 시스템에 침투하기 위해 얼굴, 지문, 홍채 등 생체 데이터를 도용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하면서 관련 사례를 소개했다. 외국 정보기관이 표적 대상의 얼굴 데이터를 탈취해 정부기관 등 민감 시설 침투를 기도했으며, 한 외국기업은 암호화폐 토큰 발행을 구실로 사용자들의 홍채 스캔을 요구, 수집한 정보를 해외 서버로 무단 전송했다는 내용이다. 또 지역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고 기동성도 우수한 음식 배달원을 이용한 외국 스파이의 정보수집 가능성을 경고하며 특정 건물, 시설을 촬영해 달라는 비정상적 요청을 하거나, USB 등 간단한 물품 배송에 고가를 지불하며 민감 시설의 근무시간 및 순찰 패턴 등을 문의할 경우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가안전부는 자신들의 방첩 능력을 과시하며 국민들에게 간첩 행위에 나서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항공기술 전문 국방연구소에 근무하던 ‘리우’라는 연구원이 퇴직 시 기밀자료를 유출, 외국 정보기관에 판매한 사실을 적발해 사형이 선고됐다며 경각심을 일깨웠다.

국내외 정보수집과 방첩업무를 담당하는 국가안전부는 오랫동안 은밀성을 유지해 왔으나 강력한 개정 반간첩법이 발효된 직후인 2023년 8월 1일 공식 홈페이지와 위챗 계정을 개설하고 방첩홍보와 교육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미 2006년 유튜브, 2014년 트위터 계정을 개설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최근 SNS 동영상을 통해 공개적으로 중국 공직자를 상대로 스파이를 모집하는 상황에 대응해 주민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크겠지만, 중국 내 외국의 스파이 활동을 부각시켜 각국에서 논란이 되는 중국의 공세적 스파이 활동에 관한 비난을 희석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방첩기관의 교육, 홍보, 정보공유 필요

국가정보기관 업무는 △자국의 생존(안보)이나 이익(국익)을 위해 공개적 방법으로는 얻기 어려운 첩보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 정책결정에 도움이 되는 중요 정보를 생산하며 △적대 세력을 와해시키기 위한 비밀공작을 수행하고 △다른 나라의 자국에 대한 정보활동을 무력화하려는 방첩활동 등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도 방첩은 다른 업무와 달리 정보기관 자체의 노력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국 스파이들이 타국에서 정보활동을 하려면 현지인을 포섭·활용해야 하므로 국민들이 경각심을 갖게 된다면 예방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제보, 협조를 통한 효과적인 방첩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방첩기관들은 스파이를 적발하더라도 방첩활동 기법 노출 등을 우려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중 패권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지역 분쟁 등으로 각국 스파이 활동이 대폭 늘어나자 과감하게 자신들의 방첩활동을 공개하며 국민들의 관심과 협조를 촉구하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2022년 미국 항공기 엔지니어를 포섭해 기술정보를 수집하던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을 이중스파이 공작을 통해 해외로 유인 및 체포해 미국 법정에 세웠다. 이때 관련된 방첩공작의 상세한 내용까지 공개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중국 국가안전부도 비밀주의에서 벗어나 방첩 정보를 공유하며 교육과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처럼 방첩활동을 홍보하는 것은 상대 정보기관 경고를 통한 정보활동 위축, 자국민 경각심 제고를 통한 스파이 활동 예방, 방첩기관의 신뢰도 제고를 통한 제보 및 협력 유도 등을 위한 것이다. 교육과 홍보가 방첩업무의 보안유지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이유다. 전 국민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방첩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리 방첩기관도 국민들과 정보공유·교육·홍보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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