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역사 - 재난과 패션
자연재해로 탄생한 방재복·아웃도어 의류 ‘도시 패션’ 선도
팬데믹 겪으며 마스크, 사회 예의이자 패션 아이템으로 변신
군복은 코트, 군화 등의 진화로 일상복 기본 디자인 되기도
옷, 시대 위기의 기록이자 인류 기억 품은 또 하나의 언어
인류의 역사는 찬란한 문명의 기록이자 끝없는 재난의 연속이었다. 자연재해와 전염병, 전쟁과 산업사고는 한 세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며 인간의 생활 방식을 바꿔놨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의복이 있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신체를 보호하고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옷을 입었지만 평화와 안락의 시기와 달리 재난의 순간에는 옷의 기능성이 절실히 요구됐다. 옷은 단순히 추위와 더위를 막는 천을 넘어 생명을 지키는 방패이자 불안을 달래는 상징이 됐다. 나아가 집단적 기억을 담는 장치가 됐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마스크, 군복, 방재복, 방호복은 모두 그러한 재난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재난은 옷을 바꿨고, 옷은 그 시대의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기록했다. 이번에는 그 기록을 되짚어 재난 속에서 변화한 옷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재난 중에서도 전염병은 의복에 가장 직접적인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단순한 병리학적 사건을 넘어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당시 의사들이 착용했던 부리 달린 가면은 지금까지도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가면 속에는 허브와 향신료를 넣어 악취와 병균을 막으려 했는데, 이 복장은 의학적 효과보다는 불안을 잠재우는 상징적 장치였다. 옷은 병균의 실질적 방패라기보다 공포를 견디게 해주는 심리적 의복이었다.
동아시아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났다. 조선 후기 천연두가 퍼질 때 사람들은 솜 수건이나 두건으로 입과 코를 가렸고, 일본 역시 콜레라 유행기에 면포로 얼굴을 감쌌다. 이처럼 전염병은 옷의 본질적인 목적, 즉 ‘신체 보호’라는 기능을 가장 극명하게 환기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의복의 변화는 더욱 가시화됐다. 1918년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은 마스크를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으로 만들었다. 거리에 나선 이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고, 신문에는 ‘마스크 의무화’라는 새로운 규범이 등장했다. 그 후 인플루엔자, 사스, 신종플루를 거치면서 마스크는 점차 생활 속으로 스며들었다.
2020년의 코로나19 팬데믹은 마스크 문화를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한국 사회는 ‘약국 앞 긴 줄’ ‘5부제 판매’ ‘KF94, KF80’이라는 새로운 용어, 품귀 현상과 온라인 예약 대란을 동시에 경험했다. 초창기에는 흰색 일색이던 마스크가 점차 검정·파스텔 톤으로 다양해졌고, 패션 아이템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어린이용 마스크, 스포츠용 기능성 제품, 장식용 마스크 액세서리까지 등장하면서 마스크는 더 이상 단순한 위생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의복 문화가 됐다. 오늘날 감기에 걸려도 마스크를 착용하는 습관은 전염병이 얼마나 강력하게 의복 문화를 바꿨는지를 보여준다. 마스크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적 예의, 더 나아가 타인 배려의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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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집단적 공포와 위생의 문제라면 전쟁은 생존과 권력의 문제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거리를 메운 것은 총성이 아니라 군복이었다. 전장은 인간에게 긴 코트와 튼튼한 군화, 다수의 포켓이 달린 야전복을 요구했다. 의복은 단순히 신체를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생존 장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CC41’이라는 표식을 붙여 의복의 규격과 배급을 통제했다. 미국, 독일, 일본, 소련 역시 마찬가지로 군복을 제도화하고, 이를 민간 사회까지 확산시켰다. 전쟁은 옷을 제도화했고, 의복은 국가 권력의 관리 대상이 됐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도 군복은 사라지지 않았다. 잉여 군수품이 시장에 풀리면서 학생복, 작업복, 심지어 잠옷으로까지 활용됐다. 6·25전쟁 이후에도 군복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의 패션에도 남아 있다. 야상, 카고 팬츠, 피코트와 같은 아이템은 이제 일상복과 패션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군복은 권위와 질서의 상징이었으나 때로는 저항의 표식으로도 쓰였다. 1980년대 한국에서 학생들이 군복과 닮은 야상 점퍼를 입고 시위에 나선 모습은 군복의 상징성을 전복적(顚覆的)으로 활용한 사례였다. 즉, 군복은 단순히 전쟁터의 옷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목소리를 드러내는 패션의 언어가 됐다. 전쟁은 전장의 옷을 낳았고, 그 옷은 시간이 지나 사회적 상징이자 패션의 일부로 흡수됐다.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몰아치면 인간은 옷부터 바꿨다. 고대에는 나무껍질과 짐승 가죽, 질긴 섬유를 엮어 추위와 습기를 막았고, 근대에 들어서는 ‘방재복’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19세기 영국에서 개발된 ‘매킨토시 코트’는 비와 강풍을 막기 위해 고안된 대표적인 방수 의복이다. 미국은 토네이도가 잦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두꺼운 캔버스 소재 점퍼를 보급했고, 일본은 지진과 화재 재해를 겪으며 방재 키트에 헬멧, 방수포, 비옷을 기본으로 넣었다.
오늘날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반사띠가 달린 안전조끼, 아웃도어 의류, 고어텍스 재킷은 단순한 레저복이 아니다. 그것들은 재난에 대비한 생활복으로 기능한다. 등산복과 윈드브레이커가 도시인의 일상복이 된 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 위기와 재해가 만든 새로운 생활 방식이다. 손전등과 응급키트가 가방 속에 들어 있듯, 의복 역시 생존의 첫 번째 장비로 자리 잡았다.
근대 산업의 발달은 새로운 유형의 재난을 불러왔다. 화학사고, 원전 사고, 전염병 현장 등에서 사람들의 눈앞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흰색 가운과 화학 방호복, 밀폐 마스크였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의료진이 입었던 파란색 방호복은 생사의 경계에서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떠올리게 했다.
재난이 인간에게 남긴 것은 고통과 상실이지만 동시에 옷을 변화시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전염병은 마스크를 규범으로 만들었고, 전쟁은 군복을 일상으로 끌어들였다. 자연재해는 방재복과 아웃도어 의류를 도시 패션으로 전환했으며, 산업재해는 방호복을 신뢰와 공포의 상징으로 남겼다.
나아가 추모 리본, 특정한 색상의 유니폼, 집단적 드레스 코드는 재난의 기억을 이어가는 사회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의복이 단순히 몸을 가리는 천을 넘어 시대의 위기를 증언하는 기록이자 인류가 서로를 지켜낸 방식임을 보여준다. 결국 재난의 역사는 곧 의복의 역사이며, 옷은 재난을 통과한 인류의 기억을 품은 또 하나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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