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그들이 온다 - 전장의 저승사자 된 휴대전화
휴대전화 위치 파악으로 핀셋 암살
지난 6월 12일에 시작된 이스라엘과 이란의 12일 전쟁은 이란의 패배로 끝났다. 이스라엘의 정밀 폭격으로 우라늄 농축시설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최고위급 군 지휘관과 핵무기 과학자들이 이스라엘의 정밀 타격으로 표적 살해됐다. 향후 지속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과학자들을 잃은 것은 파괴된 핵 시설보다 더 큰 피해라고 할 수 있다.
군의 핵심 지휘관들을 잃은 것도 전쟁수행 기능과 체제 유지를 위태롭게 하는 심각한 피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전쟁 초기에 이란의 중요 인사들을 공중 폭격, 미사일, 드론 공격 등으로 단번에 제거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현지 스파이들을 통해 대상자의 사무실, 거소, 주요 동선을 알아낼 수는 있지만,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 지난 8월 30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 군과 정보기관 요원, 이란 고위 관료와 혁명수비대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취재를 통해 이스라엘의 정교한 휴대전화 위치추적이 그 해답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사례로 전쟁 발발 4일째인 6월 16일 테헤란 서쪽 산악지대의 지하 30미터 깊이 벙커에서 개최된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장소를 정확하게 폭격한 것을 꼽았다.
전쟁 첫날부터 다수의 군 최고 지휘관들과 핵심 과학자들이 암살된 상황이어서 철저한 비밀 유지를 위해 참석자인 10여 명의 이란 최고위급 관료와 군사령관들 이외에는 누구도 시간과 장소를 알지 못하도록 한 회의였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방·내무부 장관, 정보기관장, 군 지휘관들은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우려해 누구도 전화기를 휴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이스라엘 전폭기가 나타나 입구와 출구에 6발의 폭탄을 투하했다. 암흑으로 변한 회의장은 연기와 잔해들로 채워져 숨 쉴 틈조차 없었으며, 대통령조차 맨손으로 흙구덩이를 파헤치고 겨우 탈출했다고 한다. 믿어지지 않게도 참석자 중 부상자만 있을 뿐 사망자는 없었지만, 밖에서 대기하던 경호원들은 다수가 사망했다. 참가자 전원이 죽었다면 핵심 지도자들을 동시에 잃은 이란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사건 발생 후 이란 정보기관은 크게 당황했지만 곧 보안 실패의 원인을 파악했다. 중요 인물들을 수행했던 경호원들의 휴대전화 위치가 노출된 것이다.
약한 고리인 경호원 휴대전화 추적
이란 관리들은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이 중요한 군 지휘관과 핵과학자들의 움직임을 휴대전화로 추적한다고 의심해 왔다. 지난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장기간의 공작으로 레바논 헤즈볼라 요원들에게 투입해 둔 수천 개의 삐삐를 동시에 폭발시킨 뒤 이란은 주요 인사들의 휴대전화와 SNS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번 전쟁 개시 후에는 첫 공격으로 많은 인사가 암살되자 경호원들도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고, 이란에서 널리 사용되는 메신저 앱인 왓츠앱도 못 쓰게 했다. 휴대용 무전기 사용만 허용됐으며, 경호 대상을 직접 수행하지 않는 팀 리더만 휴대전화 이용이 가능했다. 최고국가안보회의를 이스라엘이 족집게처럼 공격할 수 있었던 것도 일부 경호원이 규정을 위반하고 휴대전화를 소지했기 때문이다.
이란과 이스라엘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이란 경호원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휴대전화를 써 왔다고 한다. 이들은 업무상 휴대전화 사용이 필수적이고, 대부분 젊은 세대로 SNS 활동도 활발할뿐더러 자신들을 중요한 인물로 생각지 않아 보안에도 덜 민감해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추적하기 쉬운 ‘이지 타깃(easy target)’이 된 것이다.
게다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고위 인사 암살을 우려해 더 많은 경호원을 동원한 게 오히려 문제가 됐다고 한다. 많은 경호원을 동원하다 보니 이스라엘 스파이들이 포섭할 기회가 늘어나는 등 취약점이 더 많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경호원 휴대전화 추적은 이스라엘이 활용한 다양한 기술적 정보 수집 수단 중 하나일 뿐이고, 더 중요한 점은 오랫동안 이란 내 곳곳에 심어 둔 스파이들을 활용한 것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위치추적 대상 경호원들을 선별하고 전화번호를 알아내기도 어려웠다. 이란이 전쟁 발발 직후부터 정부, 군, 학자, 언론인 등 다양한 곳에서 이스라엘에 협조한 스파이 색출에 집중하는 이유다.
실제로 전직 부통령 모스타파 하셰미 타바는 지난 6월 말 이란 언론과 인터뷰에서 스파이들이 정부 내 최고위층까지 침투해 있다고 언급했다. 올 8월에는 핵과학자 루즈베 바디가 이스라엘 모사드에 포섭돼 핵 관련 기밀과 주요 시설 위치 정보를 제공하고, 다른 과학자 암살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처형되기도 했다. 군, 정보기관, 정부 내 공무원 수십 명도 스파이 활동 혐의로 체포됐다. 이들 중에는 고위급 인사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전화 연계 정보전 전략 필요
이란과 이스라엘의 정보전은 수십 년간 이어지고 있는 그림자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2022년 말부터 이란 핵과학자들을 추적해 왔다. 지난해 말부터는 ‘나니아 작전(Operation Narnia)’에 따라 ‘참수팀’을 운영해 왔다고 한다. 동시에 ‘레드웨딩 작전(Operation Red Wedding)’을 전개해 이란 군 고위급 장성들을 제거하는 계획도 함께 추진했다. 2개의 작전계획에 따라 첫 번째 공습으로 일시에 이들을 제거했는데,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경계심이 높아져 암살이 힘들어질 것을 우려해서다. 이란군 총사령관, 혁명수비대장, 항공우주사령관 등 수십 명의 군 지휘관과 10여 명의 과학자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살해된 이유다.
혁명수비대 아흐마드 바히디 장군은 이란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스파이들이 곳곳에 암약하고 있더라도 주요 과학자와 장군들의 소재지, 회의 장소를 찾아내는 것은 첨단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휴대전화 위치, 목소리, 위성 영상 등을 통해 정확한 위치 정보를 입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군과의 협력 확대로 중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필리핀에선 지난 2월 대통령궁, 미국대사관, 경찰청, 군 기지 주변에서 차량에 설치된 장비로 휴대전화 정보를 수집하던 중국인 2명과 필리핀인 3명이 체포됐다. 이들의 차량에서 발견된 ‘국제모바일가입자식별정보(IMSI) 캐처’라는 장비는 반경 1~3㎞ 이내에서 가짜 기지국 역할을 하며 휴대전화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주요 기관 근무자들을 특정해 통신을 도청하거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한 것이다.
지난해 9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신호정보(SIGINT) 관련 콘퍼런스에선 ‘IMSI 캐처’에 대응한 방첩 수단으로 ‘캐처-캐처(Catcher-Catcher)’라는 장비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휴대전화를 활용한 정보전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장면이다.
휴대전화가 단순한 통신 감청 수준을 넘어 전쟁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전략적 무기로 활용될 수 있는 만큼 방첩 차원의 대비책과 전장 상황에서의 대응전략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취약한 고리에서 유출된 단순한 휴대전화 정보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전쟁 승패를 가르는 큰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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