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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손끝, 세상을 짓다… 예술의 숨결, 청주에 닿다

입력 2025. 09. 18   16:00
업데이트 2025. 09. 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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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전시공간 & 전시 충북 청주 문화제조창과 청주공예비엔날레

일제시대 청주연초장 탈바꿈 
담배 냄새 대신 예술 향기로…
본전시 16개국 148명 작가 참여
‘세상 짓기’ 주제로 공예 재정의
지역 특성화 문화로 발전 결실

 

‘202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 전경. 필자 제공
‘202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 전경. 필자 제공

 


‘비엔날레(biennale)’는 이탈리아어로 ‘2년에 한 번’이라는 뜻이다. 즉 2년마다 한 번씩 하는 미술행사를 비엔날레라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비엔날레를 개최해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방향성을 공유하며 문화적으로 교류한다. 국내에도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 등 지역 기반의 비엔날레가 활발히 열리고 있다.

비엔날레가 주로 특정 도시의 이름을 내거는 것은 189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영어명 베니스)에서 시작한 ‘베니스 비엔날레’의 영향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행사로 도시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하며 도시와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긴 역사를 만들어 왔다. 특히 도시 곳곳에 국가관을 둬 참여국에서 자국 예술가를 선정해 독립적으로 전시를 기획할 수 있도록 했다. 마치 미술 분야의 올림픽처럼 각 국가관이 자국의 대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며 예술로 교류하는 것이다.

또한 비엔날레는 개최 도시의 역사, 문화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 도시의 장소성을 강조하고, 지역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마케팅과 관광 활성화를 통한 도시재생 전략이 함께 이뤄진다. 비엔날레는 지역의 정체성을 예술로 풀어내 세계적인 도시로서 직접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모델이자 플랫폼으로, 지역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미술행사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많은 도시가 국제적인 도시로 도약하고자 다양한 비엔날레를 조직했다. 이에 따라 매년 다른 형태의 비엔날레를 볼 수 있게 됐다. 올가을에는 충북 청주에서 ‘공예’라는 특정 매체를 중심으로 한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진행 중이다.

청주는 공예를 지역 특성으로 삼아 비엔날레를 조직하고 오래된 건축물을 전시공간으로 바꿔 활용하는 등 도시재생 사업과 연결하고 있다. 특히 청주 구도심에 있는 문화제조창을 비엔날레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문화제조창은 2011년 청주공예비엔날레 개최 장소로 처음 사용된 이후 현재까지 비엔날레가 열리는 중심공간이다. 문화제조창은 원래 담배를 생산하던 연초제조창이었다.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 전경. 윗 핌칸차나퐁의 ‘미로’(2025). 필자 제공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 전경. 윗 핌칸차나퐁의 ‘미로’(2025). 필자 제공



1946년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담배·소금·인삼 등 특정 품목의 생산과 유통을 독점 관리하던 경성전매국의 청주연초공장으로 설립됐고, 광복 이후 국산 담배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담배 생산공장으로, 9만9100㎡(약 3만 평)의 부지에 3000명이 넘는 근로자가 일할 만큼 엄청난 규모였던 이 공간은 청주 경제성장에 핵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1999년 담배 소비 감소와 제조공정의 기계화로 원료공장이 폐쇄되고, 2004년 공장 전체가 문을 닫으며 가동이 중단됐다. 생산공장과 원료공장, 창고 등 3개의 공간으로 운영되던 연초제조창은 현재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생산공장은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로 개관했고, 원료공장은 2021년 지금의 문화제조창으로 개관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로 14회를 맞이한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세상 짓기 Re-Crafting Tomorrow’(9월 4일~11월 2일)라는 제목으로 진행 중이다. 주최 측은 제목에 사용한 ‘짓기’라는 단어가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짓는 등 의식주와 관련된 창작행위를 담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공예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삶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매체다. 도자기, 직물, 목공, 금속, 유리 등 다양한 재료와 기술을 활용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제작하면서도 장식성과 예술성을 담고 있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매체가 공예인 것이다. 공예가 가진 실용성과 기능성은 때로 순수예술과 구분돼 예술적 위상을 약화하기도 했지만, 차별성이 오히려 현대공예를 더욱 매력적인 매체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짓다’라는 표현처럼 손으로 만드는 것과 관련이 가장 깊은 게 공예로, 공예의 수공적 가치는 속도 중심의 획일화된 현대사회에서 더욱 필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본전시, 국제공예공모전, 초대국가전, 특별전이 하나로 합쳐진 큰 행사로 문화제조창 건물과 뒤편의 첨단문화산업단지, 동부창고 등 여러 건물을 사용 중이다. 문화제조창 3층에서 하는 본전시는 ‘보편문화로서의 공예’ ‘탐미주의자를 위한 공예’ ‘모든 존재자를 위한 공예’ ‘공동체와 함께하는 공예’ 4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16개국에서 55팀, 148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본전시 한편에는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동문으로 이뤄진 홍림회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지향하는 비영리 환경단체 평화의숲이 참여한 ‘검은 산-재에서 태어난 130개의 지팡이’가 전시되고 있다. 올해 초 경북 의성에서 일어난 산불로 피해를 본 나무들을 활용해 지팡이로 만들어 낸 프로젝트로 치유와 회복, 재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매회 초대국가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그 나라의 공예를 소개하는 초대국가전을 비엔날레 기간 함께 열어 왔다. 그간 프랑스, 핀란드, 멕시코, 체코, 헝가리, 이란, 인도 등의 국가가 초대국가로서 각국의 공예를 선보였다. 올해는 첫 단독 아시아 초청국인 태국의 공예가 전시되고 있다. 초대국가전 입구에는 태국의 건축가이자 미디어아티스트 윗 핌칸차나퐁 작가의 ‘미로’(2025)라는 작품이 제목처럼 공간을 미로로 만들며 설치돼 있다. 불교의식에 쓰이는 천을 재활용해 길을 만들고 공간을 조성한 이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작품 사이를 거닐며 태국의 불교문화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이번 비엔날레는 공예라는 매체로 사회문제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공예를 넘어 설치미술, 디자인, 건축, 회화까지 범위를 확장하며 공예의 의미를 다시 정의한다. 또한 인간만을 위한 공예가 아닌 인간과 비인간, 반려동물과 반려기물, 자연과 문명 사이에서 공예의 의미를 탐구한다.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갖는 매체가 공예라는 점에서 일상에 스며 있는 공예의 특별함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해 6월 청주시는 세계공예협회(WCC)가 인증한 공예 도시가 됐다. 세계 최초로 공예비엔날레의 막을 올리며 ‘공예’라는 매체를 지역의 특성화된 문화로 발전시켜 온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 과정에는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올가을 공예 도시 청주에 방문해 일상 가까이에 놓인 공예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해 보면 어떨까. 손의 온기와 시간의 결이 깃든 작품들을 보며 일상에 새로운 감각과 영감을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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