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현장보다 치열한 일상
승리보다 신뢰 확보하려면
40여 년 군·연구현장서 심리전 기획·분석…학문적 이론·실제 경험·노하우 녹여내
국가 차원 전략 커뮤니케이션 준비 제안…“삶의 지혜가 되는 실전 지침서 되길”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심리의 전장을 살아간다. 말 한마디에 감정이 흔들리고 작은 오해에 신뢰가 무너진다. 스쳐 지나가는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요동친다. 사랑받기 위해 설득하고, 인정받기 위해 거짓을 감춘다. 때로는 침묵으로 흔든다. 인간관계가 이뤄지는 모든 순간이 심리전의 영역인 셈이다.
이윤규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이를 ‘관계의 심리전’이라고 명명했다. 누군가의 말투, 표정, 침묵 속 의도를 읽고 자신의 감정을 설계해 관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기술이란 의미에서다.
“군 생활을 포함해 지금까지 40여 년간 심리작전을 수행하고, 작전을 기획하고 분석해 왔는데 군사현장보다 더 치열한 전장은 일상이었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속고, 해킹을 당하고, 가까운 사람의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심리전은 적군이나 군사적 상대만이 아니라 매일 부딪히는 인간의 감정 틈에서 시작된다는 걸 말입니다.”
최근 발간된 『관계의 심리전』은 이 같은 그의 깨달음을 1년여에 걸쳐 정리한 결과물이다. 1부 인간 본성과 심리전의 작동 원리, 2부 자기 심리전-내면 통제와 변화의 심리전략 등 총 8부로 구성된 책은 군사심리전의 원리와 경험을 인간관계, 조직생활, 디지털 위협, 국가전략으로까지 확장했다. 우리의 가정 식탁, 회사 회의실, SNS 댓글 창, 군 상하관계의 지휘 통솔까지. 이 모두가 심리전의 장(場)이라는 게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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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보자. 한 프리랜서 작가는 수백 명의 친구와 소통하며 하루 종일 알람을 확인했지만, 실제로 깊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단 2~3명뿐이었다. 그는 수많은 연결이 오히려 자기 시간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필요한 계정을 제외하곤 다 정리하고 알림도 껐다. 이후 집중력과 정서 안정을 되찾았고, 소수와의 관계는 더 깊어졌다. 이처럼 관계는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다. 정보 과잉, 감정 분산은 정서적 고갈을 초래한다. 심리전의 승리자는 많은 이와 얽힌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의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이 본부장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심리전을 단순한 군사전략·작전을 초월해 국가 차원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K콘텐츠는 이미 세계인의 감정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를 단순한 문화산업이 아니라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전략자산으로 기획해야 합니다. 목표·대상·메시지·채널·타이밍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심리전은 군사외교는 물론 기업과 사회 전반에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심리전은 곧 국가 신뢰와 이미지, 국민 통합을 지켜 내는 핵심 수단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군대에서 다듬어진 심리전 기법을 생활 속 심리전으로 전환하고, 구조를 단순화해 누구나 바로 적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또한 보이스피싱과 딥페이크, 해킹 등 최신 수법의 디지털 위협을 ‘감정 트리거(감정 반응이나 행동을 촉발하는 특정 자극)’ 관점에서 분석하고 군·공공조직·가정·SNS 등 현실 사례를 풍부하게 담아 독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곧바로 대입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심리전을 소개한 다른 책들과의 차별점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승리만을 추구하자는 게 책의 본질은 아니다.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관계의 손실을 줄이고 신뢰와 공존을 늘리는 실전 지침서가 되길 바라는 게 이 본부장의 집필 의도다.
“관계의 심리전은 결국 상대의 감정을 읽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생존전략이자 삶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여러분의 삶에서 감정의 나침반, 관계의 회복력이 되길 바랍니다. 관계 속에서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주도권을 지키고, 누군가의 감정 뒤에 숨은 진심을 읽어 내며 자기 감정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게 가능해질 때 더 이상 관계의 심리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책을 펼쳐 보자. 바로 그 순간부터 또 하나의 심리전은 시작된다.
글=이주형/사진=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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