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포르투갈에서 열린 국제형태학심포지엄을 마친 뒤 리스본 해사박물관(Museu de Marinha)을 찾았다. 대항해시대를 이끌었던 포르투갈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녹아든 이곳은 해양국가로서 정체성과 정신을 전시물 하나하나에 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실물 크기의 선수상(船首像·figurehead)이었다. 선수상이란 고대부터 항해용 선박의 뱃머리에 설치되던 인물상이나 상징 조형물로, 항해의 수호자이자 배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얼굴이었다.
리스본 해사박물관에 전시된 선수상 가운데 두 점은 각별했다. 하나는 항해왕자 엔히크, 다른 하나는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가마였다. 정면을 바라보는 그들의 목조 조각상은 단순한 미술품이 아니었다. 바다 위에서 나라를 이끈 지도자의 정신, 민족의 자긍심을 담은 얼굴이었다.
그 순간 자연스레 바다를 누비는 우리 해군의 장보고함, 문무대왕함, 충무공이순신함 등의 함정을 떠올렸다. 그 뱃머리에 비록 조각상은 없지만, 어떤 나무보다 단단한 얼굴을 가진 장병들이 서 있다.
포르투갈은 유럽 대륙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국가로, 자연스럽게 바다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민족적 본능을 발전시켜 왔다. 항해는 생존이었고 확장이었으며 신념이었다. 그 신념은 선수상이라는 형태로 선박의 앞머리에 새겨져 함께 항해했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전략적 해양국가로서 해군의 역할은 단순한 작전을 넘어선다. 해양주권 수호, 해상 교통로 보호, 연합훈련과 국제 구호작전 참가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우리 해군은 대한민국의 얼굴로 활동 중이다. 청해부대, 강감찬함, 서애류성룡함 등 이름만으로도 역사와 사명이 느껴지는 함정에서 우리 장병들은 대항해시대의 선수상처럼 대한민국의 방향을 선도하고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박물관을 나서며 다시금 생각했다. 왜 포르투갈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영웅을 조각상으로 배에 달아 뒀는가? 그것은 아마도 과거의 자부심이 현재의 정체성을 만든다는 믿음, 앞으로도 그 유산이 새로운 세대를 이끌 것이라는 신념 때문일 터. 우리 해군도 마찬가지다. 비록 조각된 선수상은 없지만, 장병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 있는 국가의 상징이다. 함정의 뱃머리에서, 조타실에서, 기관실에서 묵묵히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 자체가 ‘대한민국 해군’이라는 얼굴을 구성하는 살아 있는 조각상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 미래를 지배한다. 이 시대의 선수상은 바로 우리 해군 장병들이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