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 연화도
통영에서 배로 한 시간
스님이 돌아가시자
바다에 피어오른 연꽃
풍경과 함께 전설 완성돼
인구 200명 작은 섬
단돈 1000원 콜버스
음식·인심…여행의 완성
더 작은 섬 우도 잇는
아름다운 다리 건너자
세상에…원시림이 눈앞에
경남 통영의 남쪽에 위치한 연화도는 불교 전설이 깃든 섬이다. 통영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바람을 가르며 들어가야 닿을 수 있다. ‘연화(蓮花)’는 섬 능선이 연꽃 봉오리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연화도는 예부터 기도와 수련장소로 알려졌다. 섬 주민은 200여 명, 참돔과 감성돔이 유명한 바다낚시의 성지이기도 하다. 해안을 따라 기암절벽과 아담한 몽돌해변이 번갈아 눈에 들어온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연화사(蓮花寺)는 천년 고찰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어 여행자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섬은 우도와 다리로 이어져 있어 배를 갈아타지 않고도 섬에서 섬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덕분에 연화도는 독립된 섬이면서도, 또 다른 섬을 여행할 수 있는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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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서호시장 ‘시락국’
통영 근처 고성에서 강연이 있었다. 통영에서 1박을 했다. 통영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다. 통영 주변엔 예쁜 섬이 많다. 소매물도만 가 봤다. 다른 섬도 가 봐야지, 생각만 하며 미루기만 했다. 마침 숙소 건너편이 여객선터미널이어서 경비 어르신에게 어느 섬이 가장 예쁘냐고 물었다. 어르신은 욕지도, 사량도, 연화도를 꼽으셨다. 욕지도는 꽤 커 하루에 둘러보기에 빡빡하다는 말씀에 사량도와 연화도로 좁혀졌다. 사량도는 배를 갈아타야 한다기에 결국 연화도가 최종 목적지가 됐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았나? 아침 댓바람부터 통영 서호시장으로 향했다. 서호시장에는 ‘시락국집’이 여럿 있는데, 장어로 육수를 낸 뽀얀 국물이 일품이다. 경남에서는 시래깃국을 ‘시락국’이라고 부른다. 단돈 7000원에 육수는 조선시대 임금의 동공도 흔들리게 할 만큼 깊고, 우아했다. 걱정과 달리 날씨는 청량하게 맑았다. 여행에서 날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80%는 족히 된다. 100점 만점에 80점을 기본으로 깔고 시작하는 여행이다. 연화도는 그러니까 20점만 채워 주면 된다. 한 시간 남짓한 항해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맑은 바다와 시원한 바람, 독특한 바위섬들이 모든 시름을 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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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명 사는 섬에 버스가 있다고?
섬에 도착해 가장 놀랐던 건 버스였다. 심지어 교통카드도 된다. 차비는 단돈 1000원. 연화도의 총 둘레는 12㎞,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4시간이 걸린다. 200명이 사는 작은 섬에 버스가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연세 지긋한 여성 기사님이었다. 손주가 계실 법한 나이로 보였는데, 운전 솜씨가 능숙했다. 버스가 보여 얼떨결에 타긴 했지만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랐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지 기사님은 걱정하지 말라며 출렁다리 앞에서 내려 주셨다. 날씨는 맑다 못해 30도를 훌쩍 넘는 땡볕. 선선한 가을이면 몰라도 한여름 섬 트레킹은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지옥불이다. 버스 덕에 살았다. 기사님이 명함을 주시며 버스가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 달라는 말씀은 충격적이었다. 콜택시도 아니고 콜버스라니? 1000원 차비만 내면 어디든 와 주신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기사님은 수국이 만개하는 6월 하순부터 7월 초는 인파가 어마어마하나 꼭 봐야 할 절경이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흔히 우리는 한 번 가 본 장소는 다시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풍경은 달라진다. 출렁다리에서 전망대까지 30분을 걸었다. 동행한 친구는 25년간 유럽을 중심으로 여행가이드를 했는데, 지중해보다 연화도 전망이 더 멋지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 역시 여행하며 글 쓰는 일을 20년 넘게 해 왔다. 여전히 잘 모르는, 아름다운 곳이 많다는 사실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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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의 그림, 풍경 속의 풍경 ‘보덕암’
전망대 정상에서 멀리 보덕암이 눈에 들어왔다. 언뜻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듯한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이었다. 더위와 산행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풍경은 자석처럼 우리를 이끌었다. 보덕암은 연화사 부속 암자로, 관음보살의 자취가 서린 수행공간이다.
연화사라는 이름 자체가 불교 전설에서 비롯됐다. 조선시대 연산군의 억불정책을 피해 이곳에 온 한 스님이 돌아가신 뒤 바다에서 연꽃이 피어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연화도’가 됐다. 연화도는 연꽃 섬이란 뜻이다. 전망대에서 보덕암까지 정확히 1시간20분을 더 걸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그늘진 숲길을 걸을 땐 콧노래가 나왔다. 멀리서 볼 땐 그렇게 비현실적이더니 막상 도착한 보덕암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멀리서 보면 환상이지만 가까이에선 현실일 뿐. 되레 출발했던 전망대를 보덕암에서 보니 용머리해안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용의 자태를 닮은 바위섬이 꿀렁꿀렁 승천을 준비한다. 용의 퍼즐들이 제대로 열을 이루며 용이 됐다. 연화도의 전설과 풍경이 하나로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연화도보다 더 아름다운 섬이야 지구에 많고 많을 테지만, 그 섬들을 다 돌아본다고 연화도가 묻히진 않을 것이다.
최고의 해물순두부를 맛보다
여행에서 날씨가 80%라고 했지만, 40%로 정정하겠다. 나머지 40%는 먹는 재미에 배분하겠다. 여행 중 음식과 풍경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도저히 고를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공평하게 40%씩 주기로 한다.
연화도에 오기 전까지 변변한 밥집은 아예 없을 줄 알았다. 먹을 곳이 있기만 해도 감지덕지할 참이었다. 웬걸? 예닐곱 개의 식당이 성업 중이었다. ‘문어와 친구들’이라는 식당에서 해물순두부와 콩국수를 먹었다. 시원한 얼음냉수를 한 사발 서비스로 주셨는데, 더위에 지친 우리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육지에서 흔한 것도 섬에선 결코 당연하지 않다. 그래서 더 감사했다. 사장님은 낚시와 바다를 너무나 사랑해 대구에서 건너온 ‘외지인’이었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섬살이의 애환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여행이 이렇게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사장님이 우도를 꼭 가 보라신다. 우도는 연화도와 다리로 연결된 더 작은 섬이다. 밥까지 먹고 나니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사장님의 표정에서 우도가 예사 섬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우도라는 이름의 섬은 제주에도, 통영에도, 진해에도 있다. 그중 제주와 통영의 우도는 소의 형상을 닮았다고 ‘소 우(牛)’ 자를 쓴다. 돌아가는 배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 사장님이 여객선 선장에게 전화를 걸어 “두 손님이 우도에서 탈 테니 그리 알라”고 당부한다. 원래는 연화도에서 타야 하는 티켓이었지만, 섬 인심으로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어졌다. 우도 갈 때 먹으라며 아이스크림까지 챙겨 주신다. 좋은 식당 후기로 보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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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로 멋진 다리와 동굴길
식당을 나와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른다. 바로 우도와 연결된 웅장한 다리가 나타난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다리 앞에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카페가 있다. 진즉 알았다면 수박주스나 한 잔 마시면서 바다멍을 했을 텐데. 다리 자체가 볼수록 참 잘생겼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도 부럽지 않다. 금문교가 훨씬 크지만, 우도 다리가 더 아름답다. 다리 위에서 한참 셀카를 찍은 뒤 우도로 넘어간다. 우도에는 100여 명이 산다고 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걸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우거진 숲길이 ‘짜잔’ 지친 나그네를 맞는다.
세상에! 이런 원시림은 육지에선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태고의 자연이 친절하게 길을 터 준다. 정체 모를 벌레들도 징그럽기보다 신비로웠다. 단순히 섬 하나 구경하자는 호기심이 나를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데려다 놨다. 나만 몰랐지, 우도는 캠핑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성지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한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며칠 더 머물고 싶지만, 할 일이 있어 서울로 가야 한다. 드디어 배가 온다.
커다란 여객선에서 여러 대의 차가 내린다. 세상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고, 또 영리하다. 나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이 섬에서 이들은 캠핑을 하고, 차박을 하려나 보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해초비빔밥을 먹어 보리라.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해초비빔밥은 육지 어디에도 먹을 수 없는 별미라고 했다. 수국도 보고, 해초비빔밥도 먹고. 벌써 그리워진다. 연화도의 화사한 연꽃이 마음속에서 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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