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하면 떠오르는 것. 엄정한 군기, 절도 있는 모습, 강한 훈련과 그에 걸맞은 강한 전투력이다. 해병대에 지원한 계기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훈련단에서 병과가 정해진 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급양관리병’과 ‘해병대사령부’라는 생소한 실무지. 생각했던 해병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마음고생이 심했고 몸 또한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일병 2개월 차, 막 실무지에 적응하던 중 폐렴이란 시련이 찾아왔다. 평상시와 같이 과업을 하다가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고 당장이라도 기절할 듯한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병원에 가게 된다면 내 빈자리는 고스란히 남은 이들의 몫이었기에 최대한 통증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응급실로 실려 갔다.
쉬는 동안 침상에 누워 생각에 잠긴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뭐 하러 해병대라는 곳에 지원했지?” 그러자 훈련병 시절 기대했던 포부와 심정이 떠올랐다. 경북 포항시에서 나고 자라 어릴 때부터 봐 왔던 멋진 해병대원의 모습. 그들처럼 되기 위해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오른쪽 가슴에 ‘빨간명찰’을 단 순간부터 핑계는 없다.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고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는 게 진정으로 명예로운 해병이 되는 길이다.
이후 부대에 복귀한 뒤 새로운 기회에 도전했다. 조리병으로서 과업에 최선을 다하고, 과업이 끝난 후에는 심신을 연마하기 위해 체력단련과 영어공부를 하는 등 최대한의 노력을 쏟았다. 대대에서 주관하는 체력왕 선발대회에 4번 지원해 우승과 준우승을 했고, 자기계발 시간을 틈틈이 활용해 영어회화 실력을 월등히 상승시켰다.
미래도전휴가 예정일이었던 8월 18일, 2사단에서 주관하는 상륙기습특공 특성화 훈련에 참가할 인원을 모집했다. 행정관님께 미래도전휴가 도중에라도 함께 훈련받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부모님을 비롯한 지인들이 “집에 가기까지 15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왜 그런 선택을 하느냐?”고 했지만, 내 선택은 확고했다.
훈련에 참가했던 인원 중 나보다 선임은 없었다. 해병대 생활 중 가장 고단했지만, 한편으론 행복한 순간이었다. 뒤꿈치 물집, 허벅지 사이 쓸림, 크고 작은 상처가 열정을 더욱 자극했다. 지금도 우측 가슴의 ‘빨간명찰’과 좌측 가슴의 상륙기습기초휘장은 나의 영원한 자부심이다.
훈련단에서 6주, 후반기 교육 2주, 실무에서 1년 3개월. 남들과 비슷해 보이는 군 생활이었지만, 내게 1년 5개월은 하나의 인생과도 같았다. 원치 않았던 보직과 실무에서 결국 뿌듯함을 느끼며 자랑스럽게 전역했다. 이 자랑스러움은 사회에 나가서도 기억될 것이다. 총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닌 인생이란 전투에서 마음속에 박힌 ‘상승불패의 정신’은 언젠가 빛을 발하리라고 믿는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