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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예루살렘' 황금빛 관에 잠든 유럽을 만든 남자

입력 2025. 09. 03   15:58
업데이트 2025. 09. 0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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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사람,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독일 아헨 대성당 - 서로마제국 계승, 샤를마뉴 대제의 위세를 엿보다 

4C 게르만족에 로마제국 멸망 이후
프랑크족이 아헨 지방으로 영토 넓혀
유럽 대부분 수복한 샤를마뉴 대제
교황에게 세례받고 서로마 황제로…
새 기틀로 유럽 정체성 원형 만들고
신성성 상징하는 ‘대성당’ 건설
사후 성당 안에 ‘성인’인양 잠들어

 

현재 아헨 대성당 모습. 대성당은 1978년 독일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될 정도로 높은 명성을 떨쳐왔다. 중앙에 팔라틴 채플이 있다.사진=위키백과
현재 아헨 대성당 모습. 대성당은 1978년 독일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될 정도로 높은 명성을 떨쳐왔다. 중앙에 팔라틴 채플이 있다.사진=위키백과


4세기 말 동서로 분열된 로마제국이 476년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되면서 서유럽 지역은 혼란 상태에 빠졌다. 과거 로마제국 영토 전체가 이민족의 말발굽에 짓밟히면서 장구한 세월 동안 누적돼온 서양의 고전 문명이 사라질 위기에 직면했다. 정치·사회적 질서는 물론 개인의 안위마저 위협받고 있던 위기의 시대에 고전 문명의 유산을 보존하고 무질서한 사회를 재안정시키는 데 공헌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교 교회였다.

원래 서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족은 제국의 경계선 너머 라인강 북쪽과 다뉴브강 동쪽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이들은 375년 동쪽에서 불어온 ‘저주의 폭풍’인 훈족의 침입으로 정주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중앙아시아의 스텝지역에 살고 있던 기마민족 훈족이 무서운 기세로 유럽 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민족이동의 연쇄 작용이 일어나 게르만의 여러 부족이 로마제국 안으로 몰려 들어와 저마다 위세를 떨치며 터를 잡았다. 하지만 로마제국 멸망 후 서유럽 세계를 재통합한 주인공은 프랑크족이었다.

오늘날 독일의 아헨(Aachen) 지방을 근거지로 해 축차적으로 영토를 넓힌 프랑크족은 샤를마뉴(742~814) 대제 때 과거 로마제국의 유럽 영토 대부분을 수복했다.

 

샤를마뉴는 왕국의 행정구역을 재편하고 800년에는 로마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를 통해 그는 서로마 황제라는 권위를 인정받고 교회와의 유대관계를 더욱 두텁게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권위를 외적으로 드러낼 요량으로 수도 아헨에 왕궁과 대성당을 건설했다.

 

 

샤를마뉴의 초상화. 사진=위키백과
샤를마뉴의 초상화. 사진=위키백과

 

교황으로부터 서로마제국 황제의 관을 받는 샤를마뉴를 묘사한 그림. 사진=위키백과
교황으로부터 서로마제국 황제의 관을 받는 샤를마뉴를 묘사한 그림. 사진=위키백과



어떻게 해서 프랑크 왕국은 서유럽을 재통일하는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을까?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게르만족의 제(諸) 부족들이 떼 지어 로마의 서유럽 영토 안으로 쇄도하는 상황에서 프랑크족은 갈리아 북부지역(현재 프랑스 북부와 독일 서부)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특히 메로빙거 왕조의 창건자인 클로비스 1세(466?~511)에 이르러 분열된 질서를 수습하고 국가 건설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의 후계자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 게르만족을 정복하거나 흡수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프랑크 왕국의 진정한 전성기는 8세기 들어 메로빙거 왕조를 계승한 카롤링거 왕조의 샤를마뉴 대제 때(재위 768~814)였다. 원래 라틴어로 카롤루스 마그누스인 그는 후대에 프랑스어로 샤를마뉴, 독일어로 카를 대제, 그리고 영어로 찰스 대제 등으로 불리며 ‘서유럽 문명의 수호자’로 인식됐다.

그는 단순한 정복 군주가 아니라 476년 서로마 멸망 후 도래한 혼돈 상황에서 로마제국, 그리스도교, 그리고 게르만의 유산을 모두 흡수해 새로운 유럽의 질서와 기틀을 확립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샤를마뉴는 비록 814년 그가 사망한 후 불과 한 세대 만에 아들 간 왕위 다툼 끝에 체결된 베르?조약(843년)으로 제국이 삼분할됐지만, 오늘날에도 유럽통합과 유럽 정체성의 원형으로 흔히 ‘유럽을 만든 남자’로 불린다.

샤를마뉴는 재위 기간 서고트 왕국, 롬바르드 왕국, 바이에른, 그리고 작센족 등을 정복하며 서유럽 대부분을 통일했다. 그는 군사적으로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마친 후에야 원정길에 올랐기에 거의 매번 승리했다. 점령한 다음에는 백작령 및 변경백령을 설치하고 순회 관리제를 신설해 중앙정부 통제를 강화했다. 교육과 문예를 장려해 일명 카롤링거 르네상스로 불리는 학문과 고전 문화의 부흥을 이끌기도 했다. 드디어 800년에는 로마를 방문해 당시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서로마제국 황제로 인침(湮沈)을 받았다. 이로써 프랑크 왕국의 통치가 단순한 정복이 아니라 정통성과 보편적 지배권을 지닌 신성한 행위라는 교회의 보증을 얻었다. 말 그대로 이후 962년 유럽에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초석을 놓은 것이었다. 


아헨 대성당 내부, 팔라틴 채플의 하늘을 연상시키는 8각형 천장. 사진=위키백과
아헨 대성당 내부, 팔라틴 채플의 하늘을 연상시키는 8각형 천장. 사진=위키백과

 

아헨 대성당 안에 놓여 있는 샤를마뉴 대제의 황금빛 관. 사진=위키백과
아헨 대성당 안에 놓여 있는 샤를마뉴 대제의 황금빛 관. 사진=위키백과



이처럼 샤를마뉴가 수립한 거대 제국의 중심지가 바로 아헨이었다. 이곳은 오늘날 독일 서부의 벨기에 및 네덜란드 국경과 인접한 도시로 전통적으로 온천으로 유명했다. 샤를마뉴 당대에 프랑크 왕국의 수도 역할을 했던 아헨은 단순한 정치 및 행정 중심지에 머물지 않았다. 이곳은 그의 통치 이념과 비전을 구현한 도시였다. 그는 아헨에 궁정을 세우고 그곳에서 회의를 개최해 제국의 귀족 및 성직자들과 국가적 중대사를 논의했다. 당연히 아헨은 주요 왕령 문서와 칙령이 제국 각지로 전파되는 ‘제국 법령의 발신지’로서 기능했다. 특히 궁정 안에 궁정 학교를 설립해 학예 및 고전교육 부흥의 중심지로 삼았다.

무엇보다 압권은 아헨 대성당의 건설이었다. 796년 착공해 805년 완공한 대성당은 단순한 교회 건물이 아니라 종교 중심지이자 샤를마뉴 제국의 신성성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라벤나에 있는 산 비탈레 성당에서 영감을 받아 로마네스크와 비잔티움 양식을 혼합해 세운 팔라틴 예배당과 팔각형 모양의 내부 돔 구조가 대성당의 중심축을 이뤘다. 정교한 수학적 비례 원리가 적용된 돔 중앙의 둥근 천장에는 예루살렘의 하늘 궁전을 연상시키듯 천사와 24명의 장로를 묘사한 황금색 모자이크화가 한껏 빛을 발하며 성당의 위용을 드높였다. 완공 이후 아헨 대성당은 바로 이 예배당을 중심으로 여러 시대에 걸쳐 첨탑, 회랑, 제단 등이 추가됐다.

오늘날 대성당을 방문하면 2층의 중앙 갤러리에서 돌로 만든 샤를마뉴의 옥좌를 대면할 수 있다. 재질은 단순한 돌이지만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고 있기에 936~1531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은 바로 이 왕좌에서 황제의 대관을 받았다. 게다가 814년 사망한 샤를마뉴는 평소 자신이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여긴 바로 이 성당에 매장돼 호사스러운 황금색 관에 마치 성인(聖人)인양 잠들어 있다.

이처럼 아헨 대성당은 샤를마뉴의 종교정책과 로마제국 전통 계승의 대표적 표상처럼 여겨졌다. 아헨은 이후 ‘샤를마뉴의 도시’로 불리며 유럽 역사에서 중세 그리스도교 제국의 시초를 알리는 상징적 공간으로 군림했다.

샤를마뉴의 아헨 대성당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오늘날 유럽통합의 정신적 원조로 불리는 샤를마뉴 대제의 통치 철학과 정치적 비전, 그리고 중세 그리스도교 제국의 이상이 집약된 결정체였다. 이러한 명성과 역사성 덕분에 일찍이 1978년 독일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당연히 오늘날에도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 및 순례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로,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로,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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