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스 언박싱
③ 조종사들의 또 다른 이름 ‘콜사인’
‘탑건’ 속 톰 크루즈 ‘매버릭’처럼…
파일럿 정체성 보여주는 ‘제2의 이름’
훈련 중 비행 스타일·습관 따라 작명
‘스승’ 교관 조종사로부터 부여받아
정예조종사 거듭나기까지 2년의 여정
야간·전술편대비행 등 기량 갈고닦아
창공 수호 주역 ‘빨간 마후라’ 거듭나
하늘을 나는 조종사는 많은 이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화려함 이면에는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이 숨어 있다. 풋내기 학생조종사에서 최첨단 전투기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하는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혹독한 담금질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종사로서의 ‘이름’도 갖게 된다. 바로 콜사인(Call Sign)이다. 조종사의 DNA에 새겨지는 첫 번째 각인, 콜사인을 통해 대한민국 최정예 조종사가 탄생하는 과정을 ‘언박싱’ 해 본다. 임채무 기자
지난달 19일 공군3훈련비행단 활주로. 스승 없이 홀로 조종간을 잡고 푸른 하늘을 가른 뒤 KT-1훈련기에서 내린 조종사의 얼굴에는 벅찬 감격과 자신감이 교차했다. 비행교육 기본과정 학생조종사가 바로 그 주인공. 이들은 첫 단독비행(First Solo Flight)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조종사로서 진정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이 과정을 마쳐야지만 조종사로서의 ‘새로운 이름’, 즉 콜사인을 부여받으며 조종사로서의 정체성을 얻기 때문이다.
조종사로서 정체성 ‘콜사인’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탑건’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한 주인공 이름은 몰라도 ‘매버릭(Maverick)’이라는 이름은 알 것이다. 이 역시 콜사인이다.
매버릭은 ‘독립적이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상관의 지시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판단을 믿고 돌발 행동을 일삼는 주인공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처럼 콜사인은 조종사의 개성, 비행 습관, 심지어 실수담 등을 바탕으로 지어주는 애칭이다.
우리 공군에도 이런 콜사인 전통이 있다. 학생 조종사들은 비행교육 기본과정 중 가장 떨리는 순간인 첫 단독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스승인 교관 조종사로부터 고유의 콜사인을 받는다.
하지만 영화처럼 멋진 이름만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콜사인은 때로 감추고 싶은 ‘흑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방향감각이 부족해 ‘노 자이로(No Gyro)’라는 콜사인이 붙기도 하고, 저돌적인 비행 스타일 탓에 ‘멧돼지’라는 이름이 붙기도 한다. 조종사로서의 닉네임이라고 할 수 있는 콜사인은 영광의 상징이자 동시에 동기들 사이에서 평생의 놀림감이 될 수도 있다. 애증의 표식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콜사인이 새겨진 패치를 조종복 좌측 어깨에 다는 순간, 이들은 비로소 조종사로서의 또 다른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빨간 마후라’를 향한 혹독한 여정
우스꽝스러울지언정 자랑스러운 이 이름을 얻기까지, 그리고 진정한 조종사로 거듭나기까지는 약 2년에 가까운 담금질의 시간이 필요하다. 공군 조종사 양성 과정은 크게 ‘입문-기본-고등’의 3단계로 나뉜다.
약 3개월 걸리는 비행교육 입문과정에서 학생 조종사들은 방대한 양의 이론 지식을 암기하고, 국산 훈련기 KT-100에 처음 오르게 된다. 교관과 함께 타며 이착륙, 기초적인 공중 조작 등 비행의 기본을 익힌다. 수료 후에는 ‘파란 마후라’를 목에 건다.
이어 기본과정(약 8개월)에서는 국산 기본훈련기 KT-1으로 본격적인 비행 훈련에 돌입한다. 계기비행, 야간비행 등 강도 높은 훈련을 거치며 전천후 비행 기량을 닦는다. 그리고 마침내 교관 없이 홀로 날아오르는, 조종사 인생의 ‘성인식’인 첫 단독비행을 치른다. 콜사인을 얻는 바로 그 순간이다.
마지막 관문인 고등과정은 약 9개월 정도 걸린다. 특히 이때부터는 각자 부여된 기종과 임무에 따라 전투임무기 고등과정은 1전투비행단에서, 공중기동기 고등과정은 3훈련비행단에서 나눠 훈련받는다. 전투임무기 과정은 T-50 초음속 훈련기를, 공중기동기 과정은 KT-1을 타고 비행훈련을 한다. 이 기간 학생조종사들은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하며 공중특수기동, 이·착륙훈련, 고등계기비행, 항법비행, 전술편대비행, 야간비행 등을 배운다. 이 과정을 무사히 수료하면 드디어 우리 공군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매게 된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정예조종사가 되는 것이다.
조종사 양성이 중요한 이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들 중 전투임무기 조종사들은 각자 부여받은 기종에 따라 전투기입문과정(LIFT) 또는 전환 및 작전가능훈련(CRT)을 거쳐야 한다. 전술입문과정(LIFT)은 24주 동안 이어지며, 지상학술교육과 TA-50 블록(BLOCK)Ⅱ 항공기로 공대공·공대지 사격 등 전투에 필요한 전투기술을 연마한다. 이후 F-15K, (K)F-16, FA-50 등 각자 부여받은 기종별로 전투비행대대에 배치돼 전환훈련을 마친 뒤 전투조종사로 활약하게 된다.
이처럼 길고 혹독한 훈련 과정은 조종사에게 요구되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다.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최첨단 전투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영공 방위의 임무를 책임져야 하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 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창공에서 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극한의 압박감을 이겨내고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은 오직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다. 공군이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 조종사를 양성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종사의 또 다른 이름인 콜사인은 창공을 수호할 주역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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