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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장 보러 가세요? 우린 데이트 갈 건데…

입력 2025. 08. 21   16:53
업데이트 2025. 08. 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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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시장, 동양 최대 한약재 시장서 시간의 향기 품은 핫플레이스로…

약재·건어물 냄새 피해 청년몰·스타벅스로…최고의 라테 한 잔·‘극장식 스벅’ 감성 충전
족발·회 1만 원이면 해결되는 은혜로운 곳…박물관 입장료 1000원에 무료 한복 대여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자리한 경동시장은 동양 최대의 한약재 집산지다. 1960년대에 형성돼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곳은 다른 재래시장과 확연히 다른 향을 풍긴다. 인삼, 당귀, 감초, 천궁 등이 뒤섞여 숨만 들이쉬고 내뱉어도 몸살이 다 나을 것만 같다. 어머니가 꼭 챙겨 주시던 용한 한의원 보약 냄새와 계피가 섞인 진한 쌍화차 향이 향긋하게 시장을 감돈다. 경동시장은 한약재만 파는 곳이 아니다. 좁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곡물·건어물가게 등 노점이 이어지고 극장을 개조한 스타벅스, 가성비 맛집, 찻집 등이 여행자의 발길을 붙든다. 을지로 맥주골목을 연상시키는 핫한 루프탑도 있다. 복고 감성에 힙한 아이디어 한 스푼 더해진 경동시장은 서울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알찬 골목이 아닐까 싶다. 건강해지고 싶은 사람, 깨알 재미를 찾는 사람은 경동시장으로 가면 된다. 행복의 기운과 건강을 듬뿍 충전할 수 있는 곳이다.

동양 최대의 한약재 집산지로 유명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경동시장’ 모습.사진=필자 제공
동양 최대의 한약재 집산지로 유명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경동시장’ 모습.사진=필자 제공


모든 약재가 경동시장으로 모인 이유 

경동시장이 전국구 시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청량리역이 코앞이어서다. 6·25전쟁 이후 경기가 회복되면서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등지에서 농산물이 옛 성동역과 청량리역 부근으로 몰려들었다. 빈터에 노점을 벌이는 식이었는데, 가장 저렴한 농산물시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초기엔 농산물이 주였으나 한약재, 인삼 등을 팔기 시작했다. 서울 종로·을지로 일대의 약재 상인들이 높은 월세 등을 이유로 경동시장으로 이전하면서 최대 약재시장으로 부상했다. 지금은 전국 한약재의 무려 70%가 경동시장에서 거래된다. 자동이체나 신용카드가 없던 시절, 상인들은 큰 액수의 현금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일부 큰손은 지폐 다발을 보따리에 싸매거나 머리에 이고 다니며 한약재를 팔았다. 그만큼 큰돈이 오가는 시장이었다. 진짜 알부자, 현금 부자들이 부를 축적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1970~1980년대에는 약재를 고르는 ‘감별사’들이 따로 있어 감별사의 한마디가 거래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했다. 당시 경동시장은 단순한 장터가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든 상인과 손님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민간요법이나 약초 비방이 오가는 정보 교류의 장이었다.


경동시장 서울한방진흥센터. 센터 내 박물관 입장료 1000원만 내면 한복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 사진=필자 제공
경동시장 서울한방진흥센터. 센터 내 박물관 입장료 1000원만 내면 한복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 사진=필자 제공


쉼이 있는 데이트를 원한다면 한방진흥센터

날씨가 유난히 좋은 토요일 경동시장을 찾았다. 공영주차장을 검색했더니 서울한방진흥센터가 나왔다. 주차하고 1층으로 올라오니 외국인이 한복을 입고 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한방진흥센터 내 박물관 입장료 1000원만 내면 한복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고 한다. 세상에! 경복궁 근처에서 한복을 빌리려면 최소 1만 원에서 3만 원은 든다. 4만~5만 원 하는 곳도 있다. 다양한 한복이 아니고 조선시대 의복이라는 점, 시간은 20분으로 제한한다는 등의 조건이 있지만 인증사진만 찍으면 되는 실속파에겐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족욕, 기계 마사지 등도 5000~6000원이면 즐길 수 있다. 데이트하다 보면 피곤해질 때가 있는데, 이곳에선 마사지 베드에서 꿀잠도 잘 수 있다. 단순히 보는 여행이 아닌 체험형 여행지는 여행지 중에서도 최고로 친다. 주차공간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어서 더 신기하고 반가웠다. 뜰에 우뚝 선 약탕기 앞에서 셀카를 찍는 외국인 여행자는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맛집 천국, 가성비 천국 

어느 곳이든 맛집을 검색한 뒤 가 보는 편인데, 연탄불로 구워 주는 고깃집을 찾았다. 맛은 괜찮았지만, 분위기에 비해 조금은 비싼 느낌이다. 오래된 식당 특유의 허름하고 정감 가는 분위기는 좋았으나 둘이서 4만 원 정도 나오는 가격은 고개를 좀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요즘 물가에 4만 원이면 비싼 것도 아니지만, 감동적인 가격은 확실히 아니었다. 경동시장엔 전국구 맛집이 꽤 있다. ‘안동집’이야말로 경동시장을 대표하는 맛집이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해 유명해진 ‘이모카세 1호’가 주인이다. 칼국수계의 평양냉면이라고 자랑하는 슴슴한 국물 맛과 잡내 없는 야들야들한 수육이 대표 메뉴인데,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30개에 1만 원인 튀김만두 전문점 ‘짱구네 야끼만두’, 단돈 7000원에 모시는 ‘할머니냉면’ 등은 시장 안쪽에 있다.

요즘 경동시장을 광장시장과 비교하는 유튜브 영상이 많은데, 하나같이 광장시장은 비싸고 경동시장은 은혜로운 가성비 성지라며 추켜세운다. 족발이나 회도 1만 원 정도면 먹을 수 있으니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들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훨씬 많다는 것도 여행자들에겐 플러스 요소다.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진정한 맛집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통용되는 공식이다.


최고의 라테를 마시다 

‘청년몰’이라는 간판이 있어 들어가 봤다. 요즘은 재래시장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주는 곳이 적지 않다. 경동시장은 애석하게도 한여름 돌아다니기엔 상당히 더웠다. 약재 냄새는 그럭저럭 향긋했지만 건어물 쪽은 훅 들어오는 짠내에 코끝이 찡했다. 온갖 건어물이 뿜어내는 냄새가 합쳐지고, 달궈져 어쩔 수 없이 이마가 찡그려졌다. 청년몰은 에어컨 냉기가 빵빵한 일종의 푸드코트다. 신관 3층 ‘티우드다락방’이란 곳을 방문했다. 공간 자체가 4명이 앉으면 꽉 찬다. 차와 관련된 클래스 위주로 운영되는 곳이라고 한다. ‘말차라테’ ‘쌍화차라테’를 주문해 마셔 봤는데, 말차라테는 시럽이 아예 안 들어간 쌉쌀한 맛, 쌍화차라테는 달달하고 익숙한 맛이 났다. 차 맛도 일품이었지만, 플레이팅도 완벽했다. 한 잔 6500원에 큰 대접을 받았다. 사장님이 외부 강연이 많아 절반 정도는 문을 닫는다는데, 나는 운이 좋았다. 차가 맛이 없었다면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정말 괜찮았다.

 

경동시장 스타벅스. 옛 극장을 개조해 매장을 만들었다. 사진=필자 제공
경동시장 스타벅스. 옛 극장을 개조해 매장을 만들었다. 사진=필자 제공

 

경동시장 내 금성전파사 팝업스토어. 레트로 감성으로 LG전자 체험관을 정겹게 꾸며놨다.
경동시장 내 금성전파사 팝업스토어. 레트로 감성으로 LG전자 체험관을 정겹게 꾸며놨다.


독특하다, 아름답다…경동시장 스타벅스 

경동시장을 찾은 이유는 사실 스타벅스 때문이었다. 옛 극장을 개조해 매장을 만든 그 기발함에 언젠가 꼭 한 번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태국 방콕의 아이콘시암 7층 스타벅스와 과테말라 안티과 스타벅스를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선 더양평DT 스타벅스를 가장 선호한다.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스타벅스는 꼭 가 보는 편이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스타벅스라든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로 자주 언급되는 튀르키예 이스탄불 스타벅스도 가 봤다. 어디가 더 좋다, 더 아름답다는 주관의 영역이니 말을 아끼겠다.

경동시장 스타벅스는 어수선한 시장 내에 있어 위치 자체로도 상당히 이질적이다. 상가건물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면 금성전파사 팝업스토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금성전파사가 뭐지? 금성전자는 LG전자의 옛 이름이다. 레트로 감성으로 LG전자 체험관을 정겹게 꾸며 놓고 ‘금성’이란 옛 이름을 붙였다. 스타벅스와 협업 중인 듯했다. 스타벅스로 입장할 때 옛 극장의 아련함에 잠시 뭉클해졌다. 빨갛고 두꺼운 벨벳 커튼을 걷으며 들어가면 웅장한 스크린과 서늘하고 쿰쿰한 극장 냄새가 박민우란 아이를 압도했었다. 옛날엔 나무로 된 판을 어깨에 걸친 상인이 콜라, 오징어, 삶은 달걀을 영화 상영 중에도 돌아다니며 팔았다. 그때의 좌석은 이제 카페 테이블로 바뀌었고, 스크린이 있는 무대는 주문받고 커피를 내리는 곳이 됐다.

감동받고 놀라고 싶다. 그런 이유로 우린 여행이란 걸 한다. 경동시장은 예스러우면서 미래지향적이고, 맛있으면서 가격까지 착한 곳이다. 누구라도 품어 주는 따뜻함이 있다. 할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아 하루론 어림없다. 자주 와서 야금야금 즐겨야 마땅한 곳이다. 단골여행지로 찜해 두면 딱히 할 것도 없는 주말, 좋은 대안이 돼 줄 것이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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