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현대 군사명저를 찾아서

군사혁신, 개혁적 장교단 진급체계 구축될 때 가능

입력 2025. 08. 20   16:04
업데이트 2025. 08. 2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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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군사명저를 찾아서
스테판 로젠의 『다음 전쟁에서의 승리: 혁신과 현대 군대』(2019)
Stephen Peter Rosen, 2019, 『Winning the Next War: Innovation and the Modern Military』, Cornell University Press, pp. 288. 

군사조직을 ‘정치 공동체’로 규정
혁신은 새 이론 중심 이념적 투쟁
단순한 장비 교체 아닌 조직 재편
새 핵심 임무·진급 경로 창출하고
세대교체 함께 제도화될 때 가시화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군사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넘쳐난다. 정작 중요한 것은 군사혁신을 성공하기 위해 어떤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했느냐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군사전략 전문가인 하버드대 로젠 교수는 평시와 전시 군사혁신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다루면서 군사혁신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깨부수고 있다.

미 해군의 항공모함 발전은 단순히 기술 발전의 산물이 아니었다. 해군 내부에서 젊은 장교들이 주도한 항공모함 이론은 미래 해전을 ‘해상 항공력의 지배’로 재구성했다. 1942년 6월 4일 미 해군 항공모함 USS 엔터프라이즈(CV-6)함의 TBD-1 어뢰 비행대 (VT-6)가 발사 준비를 마친 모습. 필자 제공
미 해군의 항공모함 발전은 단순히 기술 발전의 산물이 아니었다. 해군 내부에서 젊은 장교들이 주도한 항공모함 이론은 미래 해전을 ‘해상 항공력의 지배’로 재구성했다. 1942년 6월 4일 미 해군 항공모함 USS 엔터프라이즈(CV-6)함의 TBD-1 어뢰 비행대 (VT-6)가 발사 준비를 마친 모습. 필자 제공

 


많은 전문가는 실패의 경험에서 나오는 절실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배하고도 혁신하지 못하는 군대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 육군이나 베트남전쟁 이후 미 육군의 사례다. 미 해군과 해병대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모함과 상륙작전 능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비전을 가진 민간 지도자나 이단적인 장교가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 사례로 미 공군 독립을 이끌었던 빌리 미첼이나 원자력 추진개발을 주도했던 릭오버를 든다. 그러나 로젠은 그들의 역할이 과장됐다고 비판한다. 이들의 역할은 보조적이었을 뿐 결정적이지는 않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로젠은 민간 개입론을 반박하기 위해 영국 공군(RAF)의 방공체계 발전과정을 분석한다. 1930년대 후반 영국은 민간의 압력으로 전투기 생산을 늘렸지만, 더 중요한 것은 RAF 내부가 이미 지휘·통제·정보체계(C3I)구축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다 기술이 등장했을 때 빠르게 통합될 수 있었다. 레이다는 ‘둥근 구멍에 둥근 말뚝’과 같았다고 평가된다. 즉, 군사혁신은 외부 충격보다는 군 내부의 조직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로젠은 군사 조직을 ‘정치 공동체’로 규정한다. 혁신은 단순히 자원 배분의 변화가 아니라, 전쟁에 승리할 새로운 이론을 중심으로 한 ‘이념적 투쟁’으로 본다. 이는 새로운 핵심 임무와 진급 경로를 창출하며, 세대 교체와 함께 제도화될 때 혁신은 가시화된다. 따라서 평시 성공적인 군사혁신은 외부 압력보다는 내부 지도자와 장교단의 세대적 교체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미래 전쟁의 불확실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정당화된다. 미래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군사 조직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무시할 수 없지만, ‘다음 전쟁’의 성격을 추론해야 한다. 이러한 추론 과정은 과학적 예측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이론적 구성물(theoretical construction)’에 가깝다. 견고한 근거를 가진 예측이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추론과 선호를 이론적으로 결합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미래 전쟁의 양상은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군이 어떤 ‘승리이론’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사혁신은 단순히 장비의 교체가 아니라, 어떤 전쟁 이론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 재편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예컨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군은 기동전을 미래 전쟁의 본질로 봤지만, 프랑스군은 여전히 이전과 같은 소모전이 지속될 것으로 전쟁이론을 수립했다. 이러한 선택은 단순한 기술적 판단이나 전략적 선택으로 끝나는 게 아니며, 군 내 세력의 이해관계와 진급 경로도 달라졌다.

미국 육군 항공대 장교들은 1920~30년대에 ‘전략폭격’을 미래 전쟁의 결정적 요소로 간주했다. 이들은 산업 중심지를 파괴하면 적의 전쟁 의지를 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론은 단순히 기술적 추정이 아니라, 항공대 장교들이 독자적 정체성과 진급 경로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영국 육군의 전차부대와 미 해군의 잠수함부대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무기체계가 도입될 때, 기존 병과 경로와 분리된 ‘새로운 장교 진급 라인’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젊은 장교들이 혁신적 아이디어에 매달릴 동기를 가질 수 있었다. 새로운 전쟁이론으로 무장한 젊은 장교들을 배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혁신은 가능했다.

미 해군의 항공모함 발전 역시 단순히 기술 발전의 산물이 아니었다. 해군 내부에서는 전함 중심 세력이 여전히 강했지만, 젊은 장교들이 주도한 항공모함 이론은 미래 해전을 ‘해상 항공력의 지배’로 재구성했다.

같은 맥락에서 미 해병대는 상륙전을 미래 전쟁의 핵심 과제로 상정하며, 해군이 육군을 상륙시켜 적을 제압한다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들 역시 조직적 생존과 진급 체계 확보를 위해 새로운 전쟁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사례를 통해 저자는 “전쟁의 형태는 기술이나 전략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군사조직 내부의 이론적·정치적 선택에 의해 형성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미래 전쟁에 대한 대비도 본질적으로 군이 예측하는 전쟁의 방식대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군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믿는 무기와 조직을 만들어내며, 이는 다시 실제 전쟁 수행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혁신의 성공 여부는 올바른 기술 채택이나 단순한 예측 능력이 아니라, 어떤 전쟁이론을 중심으로 군을 재편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가 군사혁신이 단순히 신무기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진급 체계와 같은 내부 권력 구조와 깊게 연결돼 있다고 설명하는 이유다.

결국 혁신의 승패는 장교들이 어떻게 진급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기존의 엘리트 장교들이 지배하는 진급 경로가 유지되면, 그들이 선호하지 않는 혁신은 좌절된다. 반면 새로운 전쟁 이론을 뒷받침하는 장교 집단이 독자적 진급 루트를 확보할 경우, 혁신은 제도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새로운 전쟁 이론이 제안되더라도, 해당 이론을 지지하는 장교들이 제도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혁신적 사고도 함께 소멸한다. 예컨대 영국 해군의 항공력 혁신은 독자적 진급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전함 중심의 엘리트가 항공 세력을 억압하면서 좌절됐다. 이는 ‘진급 체계를 장악하지 못한 혁신은 지속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군사혁신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람의 문제이며, 조직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군사혁신에 성공하려면 새로운 전쟁이론으로 무장한 젊은 장교단이 성장할 수 있는 진급체계와 학습조직의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우리 군의 혁신을 바라는 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필자 최영진은 국방전문가로 전쟁사, 전략론, 정신전력, 병력구조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필자 최영진은 국방전문가로 전쟁사, 전략론, 정신전력, 병력구조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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