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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 다시 빛날 기억들] 國家 뿌리를 되새겨 보다 國軍 존재의 이유를 보다

입력 2025. 08. 19   16:51
업데이트 2025. 08. 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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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 다시 빛날 기억들
전국 독립운동기념관 탐방 -
⑦ 천안 독립기념관

간도참변 등 일제 만행
훙커우공원 의거 등
디오라마·영상기록물
의열투쟁 진화과정 생생

해마다 10만 장병 방문
독립운동 선조의 헌신 
광복군의 정신 돌아보며
조국수호 사명감 드높여

 충남 천안시 목천읍 독립기념관 안. 한여름 불볕더위에도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채를 든 가족 단위 방문객, 여름방학을 이용해 찾은 학생들 사이로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단정한 군복에 모자까지 착용한 군 장병들이었다. ‘휴가 나온 병장’이라며 어색하게 웃던 한 병사는 가족과 함께 현장 해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달콤한 휴식을 즐기기에도 빠듯한 짧은 휴가 때 왜 독립기념관을 찾은 걸까. 그 이유는 이어지는 해설을 듣고 관람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글=임채무/사진=조용학 기자


독립기념관 겨레의집 전경.
독립기념관 겨레의집 전경.

 


견학 보상제도 시행

2016년 ‘휴가 장병 현충시설 견학 보상제도’ 시행 이후 독립기념관은 무려 72만여 명의 군 장병이 거쳐 간 특별한 공간이 됐다. 황민용 고객소통부 차장은 “지난해까지 72만여 명, 올해 연말이면 누적 80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2016년 제도 시행 당시 2만 명 남짓하던 방문자 수는 이듬해 10만 명대로 급증했다. 코로나19 시기 평균 5만 명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지난해와 재작년 다시 연간 9만9000명의 장병이 찾으며 회복세를 보였다.

이런 성과는 단순히 ‘휴가’라는 보상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기념관은 장병들을 위해 겨레의집 카페 20% 할인, 관내 주차장에 택시 승강장 설치 외 스탬프 견학 인증을 휴대전화 앱으로 가능토록 개선했다. 월요일이 정기 휴관이나 공휴일과 겹치면 독립기념관은 문을 여는 것으로 운영방침을 바꿨다. 귀한 휴가 중 애써 찾아온 장병들이 헛걸음하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였다. 또한 6월 호국보훈의 달과 광복절이 있는 8월 등 집중정신전력교육의 하나로 기념관을 찾는 장병이 많아질 때는 별도의 해설 프로그램까지 맞춤형으로 운영 중이다.

황 차장은 “나라를 지키는 군인은 과거 독립운동을 펼쳤던 선조와 비교하면 모습만 다를 뿐 같은 정신을 품고 있다”며 “장병들이 기념관을 찾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기념관은 언제나 장병들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5전시관 입구 앞에 설치된 독립영웅 동상. 왼쪽부터 윤봉길·안중근 의사, 김좌진 장군.
5전시관 입구 앞에 설치된 독립영웅 동상. 왼쪽부터 윤봉길·안중근 의사, 김좌진 장군.



무명의 독립군상 앞에 멈춰선 장병들

군 장병들에게 기념관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선열들의 발자취를 눈과 귀로 느낄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5전시관 ‘나라 되찾기’에서는 국군의 뿌리인 독립군과 광복군의 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5전시관에 들어서자 정면에 자리한 ‘무명독립군상’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총칼을 든 채 굳건히 서 있는 조각상들은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산화한 독립군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김미란 해설사는 “젊은 청년들이 독립을 위해 전선에 섰고,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며 “이곳은 그분들의 자취를 따라가며 애국과 독립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무명독립군상을 지나자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디오라마로 재현한 공간이 나왔다. 군복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독립군들이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모습은 처절함과 함께 조국을 찾고자 했던 열망을 보여 준다.

전시관은 1920년 첫 승리의 쾌거를 알린 봉오동전투와 독립전쟁 사상 최대 승리로 기록된 청산리전투를 자세히 소개한다. 이러한 승리가 있기까지 전 재산을 처분해 만주로 떠나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상용·이회영 선생, 천안 출신으로 무장투쟁의 기틀을 닦은 이동녕 선생과 같은 선각자들의 헌신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머니와 독립기념관을 찾은 장병.
어머니와 독립기념관을 찾은 장병.

 

5전시관 내 ‘무명독립군상’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5전시관 내 ‘무명독립군상’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간도지역 독립운동사에 관해 설명하는 김미란 해설사.
간도지역 독립운동사에 관해 설명하는 김미란 해설사.



간도참변 이후 의열투쟁 진화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승리의 역사 뒤에 똬리를 튼 일제의 잔혹한 만행도 기록됐다. 일본은 연이은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독립군을 도왔던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했다. 이른바 ‘간도참변’이다. 전시관의 기록들은 당시 참상을 덤덤히 증언하고 있다.

김 해설사는 “간도참변 비극 이후 독립투쟁의 양상은 대규모 전투에서 개인 또는 소규모 조직의 의열투쟁으로 진화했다”고 부연했다.

의열투쟁을 대표하는 단체는 한인애국단과 의열단이 있다. 전시관을 둘러보던 중 의열단원들이 품고 다녔다는 ‘조선혁명선언’이 새겨진 수첩이 눈에 띄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에는 “강도 일본을 몰아내기 위함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다”고 쓰여 있었다.

전시관에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를 재현한 디오라마와 함께 당시 외국인 기자가 촬영한 영상도 있다. 특히 흑백 영상에는 폭탄이 터지는 순간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윤봉길 의사 의거는 중국을 뒤흔들었다. 당시 중국 국민당 장제스 총통은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극찬했다.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정규군, 즉 한국광복군을 창설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윤봉길 의사 관련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는 장병.
윤봉길 의사 관련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는 장병.

 

광복군의 군인정신 훈련교재 『정훈대강』.
광복군의 군인정신 훈련교재 『정훈대강』.



장병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

전시관에서 꼭 봐야 하는 전시물은 바로 ‘한국광복군 설립기념 사진’이다. 김 해설사는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총사령관에 지청천, 참모장에 이범석을 임명하고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광복군을 창설했다”며 “사진을 보면 당시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사진을 보면 가운데 김구 선생과 지청천 총사령관, 이범석 참모장 등의 얼굴에서 기쁨보다 비장함과 엄숙함을 느낄 수 있다.

광복군의 활동을 살펴보던 중 익숙한 용어가 눈에 들어왔다. ‘정훈’이라는 단어였다. 광복군은 군인정신을 다잡기 위해 훈련교재 『정훈대강』을 만들어 이를 신념화했다. 오늘날 장병 정신전력교육의 뿌리라는 생각에 국방일보 기자로서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모든 해설을 마친 뒤 김 해설사는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당부의 말을 전했다.

“기자님이 나라를 지키는 것처럼 앞서 이 길을 걸었던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자유롭게 서 있습니다. 지금의 군 복무도 숭고한 희생이지만 정말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분들처럼 기꺼이 나설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한 번쯤 질문을 던져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장병들이 달콤한 휴식과 맞바꾼 시간은 어쩌면 군인으로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기념관은 조국의 이름 아래 기꺼이 청춘을 바쳤던 선열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그 답을 찾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조용한 성찰이야말로 기념관이 수많은 장병의 발길을 이끄는 진짜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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