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스타를 만나다
‘하이퍼팝의 여제’와 함께 돌아본 K팝·하이퍼팝의 만남
하이퍼팝, 대중문화 새 장르로 만든 ‘찰리 XCX’
8년 만의 내한, 국내 뮤직 페스티벌 무대 올라
韓 뮤지션 이브·에피, 하이퍼팝으로 앞 순서 장식
특정 프로듀서 스타일 단순 모방 넘어
지향점 유사한 K팝과 만남 더 잦아져
지난 15일 경기 과천시에서 열린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 2025’. 지난해 전 세계가 앞다퉈 올해의 앨범으로 손꼽은 ‘브랫(brat)’의 주인공이자 오늘날 대중문화의 아이콘 찰리 XCX가 2017년 이후 다시 한국을 찾았다. 재능 있는 신인 싱어송라이터로 대중음악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해 일찍이 빌보드에서 성공을 거둔 찰리 XCX는 경력 내내 언더그라운드에 두고 있는 창작의 뿌리와 마이너한 취향, 파티문화를 대중적 감각과 결합해 온 음악가다. ‘브랫’은 그 결실이다. 형광색 바탕에 무성의해 보이는 소문자 커버가 인상적인 앨범은 현재 거의 모든 대중음악가가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신선한 충격을 남겼다.
오늘날 찰리 XCX의 음악을 수식하기 위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하이퍼팝(Hyperpop)이다. 하이퍼팝은 어떤 음악일까. 직역하면 과도한, 과잉의, 최고의 팝이란 뜻이다. 의미 그대로 종잡을 수 없다. 록, 일렉트로닉, 댄스, 힙합, 메탈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트리는 전자음악은 어떤 단어로도 정의하기 어렵다. 극도로 과장돼 왜곡된 소리, 우리가 기대하는 가수의 가창력과는 꽤 머나먼 목소리. 그런데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 듯 선율은 익숙하고 구성은 친근하다. 인터넷 문화, 최신 유행 밈과 애니메이션 등 창작물의 팬을 자처하는 젊은 창작가들이 시시콜콜한 이야기 가운데 자신의 ‘최애’ 모먼트를 거리낌 없이 삽입한다. 다듬어진 부분을 거칠게 망가트리고, 어수선한 공백을 강력한 취향으로 메운다. 뒤죽박죽 마음껏 쏟아 부어 기성의 안전함을 탈피하고자 하는 일련의 활동이 어디에도 속할 수 없으나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음악으로 우후죽순 솟아난다. 그것이 하이퍼팝으로 불리는 음악계 움직임이다.
정작 찰리 XCX는 2020년경 그의 음악을 하이퍼팝이라고 소개하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의 플레이리스트 표지를 보고 나서야 자신을 수식하는 단어를 알았다. 그가 2010년대 중후반 A. G. 쿡, 대니 엘 할레, 소피 등의 음악 동료와 힘을 합쳐 레이블 PC 뮤직과 같이 내놨던 음악은 오늘날 하이퍼팝의 고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후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와 같은 짧은 영상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고, 팬데믹 시기 각자 거처에서 고립된 아이들이 소통하며 만들어 낸 독특한 문화가 새로운 흐름을 창조하면서 하이퍼팝은 음악기업의 마케팅 용어나 온라인을 넘어 대중음악의 새로운 장르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지난 10년간의 흥망성쇠가 있다. 이 역사를 총망라해 대중문화 한가운데 미학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인물이 바로 지난해의 찰리 XCX였다.
K팝 팬에게 하이퍼팝은 친숙하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어렴풋이 느껴지는 특유의 감각을 재빠르게 습득, 극단적으로 가공하고 마음대로 해체 분석해 새로운 프랑켄슈타인 팝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두 음악의 지향은 같다. 하이퍼팝이 K팝에 영향을 받은 만큼 K팝도 하이퍼팝의 요소를 적극 활용했다. 이 장르가 한국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부터 ‘있지’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유명 K팝 그룹은 앨범 수록곡을 통해 접점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에스파다. 복잡다단한 다중우주 세계관을 설명하던 시절에도 공격적인 ‘새비지(Savage)’로 하이퍼팝의 짜릿한 새로운 맛과 익숙한 SMP 향을 배합했던 그들은 지난해 더욱 불온하고 과감한 ‘슈퍼노바(Supernova)’와 ‘위플래시(Whiplash)’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K하이퍼팝을 선보였다.
최근엔 하이퍼팝과 K팝의 만남이 더 잦다.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에 찰리 XCX의 앞 순서를 장식한 음악가는 현재 한국 대중음악 신에서 하이퍼팝의 전면에 서 있는 이들이다. 먼저 이브가 있다. 걸그룹 ‘이달의 소녀’로 활동하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그는 프로듀서 밀릭의 지휘 아래 전위적인 하이퍼팝을 전면에 채택했다. 지난 7일 발표한 EP ‘소프트 에러(Soft Error)’에 수록한 ‘화이트 캣(White cat)’ ‘소프(Soap)’ 등 곡에서 지난해 ‘비올라(Viola)’보다 훨씬 과감한 시도를 마주할 수 있다. 힙합 팬이라면 에피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2025년 EP ‘E’ 한 장으로 힙합과 하이퍼팝 양측의 마니아를 만족시키더니 대중적으로도 주목받는 음악가가 됐다. 현재 세계에서 하이퍼팝과 더불어 가장 위세를 떨치는 음악가 투홀리스와 함께해 화제를 모은 실력파 프로듀서 킴제이의 지휘 아래 에피는 쉴 새 없이 음원을 발표하면서 올해를 자신의 것으로 거머쥐고자 땀 흘리고 있다.
킴제이는 6인조 보이그룹 저스트비의 ‘체스트(Chest)’에 참여해 K팝 보이그룹 최초의 하이퍼팝 장르라는 수식을 선사했다. 일본의 5인조 K팝 걸그룹 파이브의 첫 정규작 ‘시퀀스(SEQUENCE) 01’에는 찰리 XCX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A. G. 쿡이 다수 이름을 올렸다. 지난 13일 ‘플롯 트위스트(Plot Twist)’와 함께 데뷔한 걸그룹 앳하트의 선공개 싱글 ‘굿 걸(Good Girl)’ 역시 버블검 베이스 계열의 하이퍼팝이다. 히트곡이라면 ‘날리(Gnarly)’도 빼놓을 수 없다. 하이브의 글로벌 걸그룹 캣츠아이가 하이퍼팝 아티스트 앨리스 롱위 가오의 아이디어로부터 뽑아 낸 곡은 신경질적이고 난잡하다. 그 매력이 제대로 먹혀 그룹에 최초의 빌보드 핫 100 차트 진입 성과를 안겼다. 특정 프로듀서의 스타일을 모방하거나 독보적인 미감을 고민 없이 가져오는 단계를 넘어 하이퍼팝이란 장르 자체에 관심과 이해가 늘어가는 오늘날 K팝 흐름이 보인다.
이날 찰리 XCX의 공연은 ‘브랫 투어’의 마지막 무대였다. 주위를 둘러볼 때마다 수많은 음악가와 인플루언서, K팝을 만드는 관계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이 즐겨 들었던 음악과 현재 하고자 하는 음악, 유행의 최첨단에 올라서기 위해 선택한 음악의 꼭대기에 찰리 XCX가 있다. 그는 무대 위에서 그 이상의 감각을 전달했다. 어두컴컴한 무대에서 끝없이 점멸하는 불빛 아래 온몸을 던져 가며 그가 걸어온 길과 마주친 사람들, 당당하게 쌓아 올린 역사를 기념했다. 인공적인 음악이라고 할지라도 그 아래의 뜨거운 진심이 모두를 웃기고 울렸다. ‘하이퍼’한 요즘 K팝에는 그런 감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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