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전쟁과사람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명예와 절제의 軍神에 영광 돌리며 전쟁 정당화

입력 2025. 08. 06   16:39
업데이트 2025. 08. 0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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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사람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판테온·마르스 신전 유적 - 전쟁의 신(神)에게 승전을 기원하다!

군사국가 로마 무력 통해 영토 확장…전쟁 영웅 필요
그리스 ‘전쟁의 신’ 아레스 벤치마킹한 ‘마르스’ 추앙
전장서 신들도 대결한다고 생각해 적군의 신상 ‘노획’
모든 신의 공간 판테온에 놓고 로마 신으로 동화시켜

 

로마에 있는 판테온 정면 모습. 사진=위키백과
로마에 있는 판테온 정면 모습. 사진=위키백과



로마제국은 군사 위주의 국가였다. 기본적으로 전쟁은 인간 집단끼리의 힘겨루기이지만 고대세계에서는 전장에서 오로지 인간들만 싸운다고 인식하지 않았다. 신들 간에도 대결이 벌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승전한 측에서는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이 상대방 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적군의 신상(神像)은 노획물의 대상이었다. 로마군은 전쟁터에서 가져온 적군의 신상을 다른 조각상과 함께 판테온(Pantheon)에 보관했다.

넓은 관점에서 볼 때 일종의 포로 신세가 된 피정복민의 수호신마저 포용해 점차 로마제국 신들 가운데 하나로 동화시킨 셈이었다. 일전에 소개한 로마의 개선문이 실존하는 승전 사령관이나 황제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판테온은 로마의 신들과 그 가호 아래 성취한 로마의 전승(戰勝)을 기리고 염원할 목적으로 건립됐다. 실용적인 문명을 꽃피우기는 했으나 본질상 로마제국도 신정체제에 어울리는 정복국가로서 신의 존재는 다양한 제국 신민 통치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전쟁의 신 마르스를 묘사한 조각상. 사진=위키커먼스
전쟁의 신 마르스를 묘사한 조각상. 사진=위키커먼스



오늘날 우리는 ‘군신(軍神)’이라고 말할 때 흔히 과거 로마제국의 마르스(Mars)를 연상한다. 유교 전통 속에서 전쟁을 ‘불가피한 악’으로 간주한 탓에 군신 전통이 약했던 동아시아에 비해 서양은 상무(尙武) 전통이 강했다. 특히 로마는 끊임없는 무력 충돌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 왔기에 이를 정당화하고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을 영웅화할 필요성이 절실했다. 한마디로 마르스 같은 명예로운 ‘전쟁의 신’을 선양할 필요성이 높았다. 

원래 마르스는 그리스 신화 속 전쟁의 신 아레스를 일종의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그리스인과 달리 마르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아레스는 난폭하고 충동적인 성격으로 전쟁의 파괴적이며 야만적인 측면을 표상했다. 통상 피와 고통을 즐기는 호전적인 전사로 묘사되며, 지혜의 여신이자 전쟁의 신인 아테나와 달리 다른 신들에게 흔히 경멸의 대상으로 여겨지곤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로마 사회에서 마르스는 명예롭고 절제된 군인으로 전쟁의 영광과 질서를 상징했다. 신화 속에서 로마시민과 국가의 수호자라는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심지어 마르스는 로마 건국 신화에서 로마의 시조인 로물루스의 부친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통상 로마에서는 군단 출정과 귀환 시 마르스에게 제사를 지냈다. 출정 시에는 전투에서의 승리를 염원하고, 귀환해서는 승전에 대한 감사와 영광을 올렸다. 로마 군단병은 자신의 방패와 갑옷에 마르스를 상징하는 늑대 문양을 새겨 넣기도 했다. 이러한 평소 활동을 통해 로마는 말 그대로 뼛속 깊이 군사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담금질해 왔던 것이다.

오늘날 로마 중심가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판테온은 고대 로마 시대의 가장 잘 보존된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원래 최초의 판테온은 기원전 27년경 로마 정치가 아그리파가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위해 지은 직사각형 모양의 고전 양식 건물이었다. 이것이 화재로 전소된 자리에 118~125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현재처럼 압도적인 모습과 구조로 재건축했다.

재위 동안 로마제국의 국경 안정화 및 방어력 강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하드리아누스는 로마제국의 통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과거 아그리파의 판테온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신전을 세우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과거의 전통과 권위를 계승한다는 상징적 의미로 아그리파가 설치한 원래 명판(名板)을 그대로 뒀다.

 

로마에 있는 현재 판테온의 내부 모습.사진=위키백과
로마에 있는 현재 판테온의 내부 모습.사진=위키백과



새로 세워진 판테온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거대한 반구형 돔(직경·높이 약 43.3m)이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비 보강 콘크리트 돔으로 꼽히고 있다. 돔의 내부 중앙 천장에는 직경 약 9m에 달하는 원형 천창 개구부 공간이 있다. 그곳으로 햇빛과 공기가 쏟아져 들어와 돔의 내부에 채광과 환기를 제공한다. 원형 내벽은 7개의 깊은 벽감과 출입문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벽감은 원래 로마 신들의 동상을 안치할 목적으로 설치한 공간으로 추정된다. 주목할 또 다른 부분은 약 12m 높이의 총 16개 그리스 코린트식 기둥을 세워 웅장한 모습을 자아내는 신전 정면이다.

판테온은 단어 뜻 그대로 ‘모든 신을 위한 공간(Pan+theos)’으로, 고대 로마의 다양한 신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일종의 ‘종합판’ 신전이었다. 그렇다면 로마의 전쟁신 마르스도 이곳에 안치돼 있었을까? 전용 신전은 아니었지만, 다른 신상과 함께 판테온 내부 벽감 중 하나에 마르스의 조각상이나 제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르스가 로마의 최고신은 아니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전쟁의 신이자 로마 건국자의 부친으로서 나름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마제국 곳곳에 마르스를 위한 신전들이 상당수 있었다. 판테온이 터를 잡은 곳도 원래는 ‘마르스의 들판’이라고 불린 땅으로, 당시 군사훈련 및 체육활동 등이 실시되던 장소였다.

이외에 로마 시내나 제국 곳곳에 마르스에게 헌정된 신전도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곳으로 로마 중심가 포로 로마노에 있던 마르스 울토르 즉, ‘복수자 마르스의 신전’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암살로 생을 마감한 양부 카이사르의 복수 완수를 기념할 의도로 마르스에게 헌정한 신전이었다. 정확하게는 기원전 2년경 포로 로마노 북쪽에 새로 조성한 아우구스투스 포럼 공간의 정중앙에 건립했다. 물론 직접적으로는 카이사르의 암살자에 대한 복수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지만, 넓게는 로마군의 군사적 승리와 제국의 질서 유지를 염원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로마 중심가 아우구스투스 포럼에 있는 마르스 울토르 신전의 기둥과 터 모습. 사진=위키백과
현재 로마 중심가 아우구스투스 포럼에 있는 마르스 울토르 신전의 기둥과 터 모습. 사진=위키백과



마르스 신전은 로마 내 다른 신전들처럼 고전 양식에 충실한 대리석 건물이었다. 신전 본체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내실이 있고, 정면에는 넓은 코린트식 주랑(柱廊)이 있는 구조였다. 전체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으리라 여겨진다. 내실 안에는 거대한 마르스의 조각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한 로마 주요 군사 영웅들의 대리석상이 배치됐다. 아우구스투스 포럼 전체가 제국 초반 로마의 정치권력과 군사력에 종교성을 더한 통합의 상징 공간이었다. 바로 여기에서 정중앙의 마르스 신전이 중심 역할을 했던 것이다.

건물 전체가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돼 일찍이 1980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판테온과 달리 오늘날 아우구스투스 포럼에 있는 마르스 신전은 그간 고고학 발굴을 통해 확인된 신전 터와 기둥 일부분만 잔존한다. 비록 아직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현재 남아 있는 신전 바닥 터 기초 석(石)을 통해 로마 시대 마르스 신전의 규모와 더불어 여기에 투영된 로마인들의 승전에 대한 열망을 엿볼 수 있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로,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로,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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