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스타를 만나다 - 시카고에서 완성한 혼문 ‘트와이스’
데뷔 10주년 맞은 K팝 최고 인기 그룹
일본 진출 성공 이어 서구권 적극 개척
시카고 롤라팔루자 헤드라이너 ‘우뚝’
‘보는 재미’ 확실한 공연으로 입소문
최근 14개국 월드투어 150만 명 몰려
최다 관객 동원 걸그룹으로 자리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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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보면, 넌 우리를 미칠 듯 좋아하게 될걸?”
롤라팔루자의 미국 시카고 공연이 열린 지난 2일(현지시간) K팝 걸그룹 최초의 헤드라이너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연호가 메인 스테이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메인 스테이지를 가득 채운 수만 명의 팬이 합창으로 대답한다. “트와이스!”
5번의 월드투어, 그중 가장 최근의 ‘레디 투 비(READY TO BE)’ 월드투어만으로 27개 지역 14개국에서 51회 공연, 누적 관객 150만 명을 동원한 슈퍼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음악 페스티벌 브랜드의 헤드라이너 무대를 장식하는 최초의 K팝 걸그룹 기록을 쓸 준비를 마쳤다.
시카고의 명물 전철을 본떠 만들어진 세트의 문이 열리고, 트와이스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대 위로 나섰다. 그룹은 첫 미국 진출곡 ‘더 필스(The Feels)’를 시작으로 헤드라이너의 특권인 90분 공연시간 동안 21곡을 핸드 마이크로 소화하면서 시카고에 운집한 K팝 팬들에게 거대한 엔터테인먼트를 선사했다. 다년간의 무대 경험으로 다져진 실력,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걸그룹 중 한 팀으로 자리매김한 체급의 힘이다.
지난달 11일(한국시간) 4번째 정규앨범 ‘디스 이즈 포(THIS IS FOR)’를 발표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전 회차 360도 무대가 인상적인 6번째 월드투어 강행군을 하고 있는 그룹에는 까다로운 야외 페스티벌 무대도 가뿐하다. ‘모어 & 모어(MORE & MORE)’ ‘댄스 더 나이트 어웨이(Dance The Night Away)’ ‘왓 이즈 러브(What is Love)?’ 같은 히트곡의 행렬과 불꽃 튀는 투어 밴드의 즉흥연주 세션, 눈을 뗄 수 없는 멤버들의 춤과 무대를 주도하는 가창이 즐거운 엔터테인먼트를 보여 준다.
2025년 최고의 화제작이자 전 세계 아이들에게 K팝 아이돌의 꿈을 심어 주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삽입된 ‘스트래티지(Strategy)’와 지효, 채영, 정연이 가창한 ‘테이크다운(Takedown)’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진다. 압권은 드론쇼다. 영화의 주요 장면과 함께 밤하늘에 수놓아진 9명의 트와이스 멤버는 해로운 존재들로부터 이승세계를 지키는 K팝 전사로 선택받았다. 하이라이트는 문구다. ‘더 혼문 이즈 실드(The HONMOON IS SEALED)’. 악귀들이 접근할 수 없는 결계로 극 중 등장하는 장치, 혼문이 마침내 완성되는 순간이다.
어느덧 데뷔 10주년이다. 과거로 시간을 돌려 오디션 프로그램 ‘식스틴’과 데뷔곡 ‘우아하게’를 떠올려 보면 전 세계 가장 거대한 공연장의 객석을 매진시키며 K팝이란 산업을 대표하는 트와이스의 오늘이 새삼 놀랍다. 가요계 등장 이후 다인원 그룹의 매력과 개성 있는 노래, 각자의 선명한 매력을 갖춘 멤버들의 대활약으로 국내를 평정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치어 업(Cheer Up)’ ‘TT’ ‘낙 낙(KNOCK KNOCK)’ ‘예스 오어 예스(YES or YES)’ ‘팬시(FANCY)’ ‘필 스페셜(Feel Special)’…. 독자들의 머릿속에 금세 떠오를 히트곡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인상적인 지점은 세계 시장으로의 연착륙이다. 모모, 사나, 미나 3명의 일본인 멤버가 활약하는 만큼 일본에서의 인기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지점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을 필두로 한 서구권 시장 개척 속도는 생각 이상으로 신속하고 적극적이었다.
2021년 발표한 첫 영어곡 ‘더 필스’ 이후 트와이스의 음악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데뷔 초의 매력을 성숙하고 카리스마 있는 신스팝 기반의 거대 퍼포먼스로 전환하며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갔다. 이전에도 보는 재미가 확실했던 콘서트는 더욱 역동적인 노래, 열광적인 해외 팬들과의 투어 무대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입덕’ 번호표를 끊었다.
선택은 적중했다. 미니앨범 ‘테이스트 오브 러브(Taste of Love)’부터 ‘디스 이즈 포’까지 일곱 작품 연속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톱10에 진입하며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원 스파크(ONE SPARK)’가 수록된 지난해 미니앨범 ‘위드 유스(With YOU-th)’로는 최초로 정상 고지까지 밟았다.
오늘날 K팝 산업의 핵심 동력은 공연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속히 성장한 공연 시장과 함께 듣는 것과 더불어 보는 게 매우 중요한 K팝에 기회가 찾아왔다. 커다란 무대가 낯설지 않은 그룹들이 성공을 거머쥐었다. 2023년 4억 달러 수준으로 집계됐던 K팝 공연 수익은 지난해 최소 13억28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1조800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세븐틴 한 팀만 벌어들인 매출이 9840만 달러에 달하며, 엔하이픈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월드투어 그룹을 보유한 하이브는 2025년 1분기 콘서트 매출이 앨범 매출을 추월하는 진기록을 세우기까지 했다.
트와이스 이전 롤라팔루자 시카고의 헤드라이너 무대를 장식한 방탄소년단 제이홉,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스트레이키즈와 더불어 아이브, 에스파, NCT, 블랙핑크 등 수많은 그룹이 더 넓은 무대에서 자신을 증명하고자 미지의 관객이 기다리는 해외로 떠난다. 지난 수십 년간 확고한 마니아층을 확보할 정도로 성장한 글로벌 K팝 팬덤 규모가 나날이 줄어드는 앨범 판매량과 반비례해 더 넓고 더 상징적인 무대 위 K팝 그룹의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현장을 다녀온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충격을 증언한다. 처음 들르는 나라에 이렇게 많은 팬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열심히 응원봉을 흔들며 끝까지 그룹을 응원하는 열정에 또 한 번 놀란다. 국내 활동 감소로 인한 불만과 퍼포먼스 중심의 작곡이 주는 피로감을 감수하고라도 핵심 사업기획안으로 공연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는 K팝의 현주소다.
최근 트와이스 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와 ‘위 프레이(WE PRAY)’를 함께한 인연으로 만든 오프닝 무대였다. 객석에선 반쯤 농담 섞인 ‘트와이스의 내한 공연’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들렸다. 무대 위 여덟 멤버는 더 이상 애교로 가득한 구애의 노래를 부르던 K팝 아이돌이 아니었다. 힘 있는 표현과 적극적인 소통, 흐트러지지 않는 퍼포먼스로 K팝을 잘 모르는 밴드 팬의 호응을 끌어내는 베테랑 엔터테이너였다. 그때의 기억도 인상적이었는데, 하물며 월드투어와 페스티벌은 오죽 대단할까. 때때로 K팝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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