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정덕현의 페르소나

독자의 길은 없었다...독자의 길을 걸었다

입력 2025. 07. 30   16:17
업데이트 2025. 07. 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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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페르소나
‘전지적 독자 시점’의 안효섭, 독자에서 주인공으로

동료와 함께 스스로의 성장 서사 써나가고
동료와 함께 결말 새로 쓰는 주인공이 되다
드라마·영화 보는 것이 낙이던 평범한 소년
JYP 연습생 거쳐 연기자의 길로
‘홍천기·사내맞선·낭만닥터 김사부2’서 동료와의 합 빛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진우 역할 글로벌 행보 기대도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출연 모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출연 모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내가 좋아했던, 나의 전부였던 이야기가 현실이 됐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김독자’(안효섭 분)의 내레이션처럼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 현실은 종말을 앞두고 펼쳐지는 게임 같은 세상이다. 도깨비로 불리는 이상한 형체가 등장해 제시하는 미션을 클리어해야 살아남고, 살아남은 자들은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 또 다른 미션 앞에 놓이게 된다. 이미 이 소설을 읽은 김독자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그 결말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만이 소설의 끝까지 읽은 유일한 독자였기 때문이다. 그 결말은 종말이다. 모두가 죽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유중혁’(이민호 분)만이 살아남는다. 그는 그 결말을 최악이라고 여겨 결말을 바꾸고 싶어 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주인공 이름이 독자인 것처럼 서사에도 중의적 의미가 들어 있다. 즉 작가가 쓴 소설(현실이 된)을 독자가 바꾸는 이야기로, 이것이 의미하는 건 최근 작가만큼 중요해진 독자의 위치다. 이제 독자들은 수동적 위치에 머물지 않고, 보다 능동적으로 원하는 스토리를 주장한다. 원하면 결말도 바꾸고 싶어 하고, 그런 독자 하나하나의 주장이 모여 하나의 여론이 만들어질 때 작가도 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정해진 결말을 바꾸는 데는 하나의 전제조건이 있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것. 여러 독자가 모여 목소리를 내야 변화가 생긴다.

그래서 김독자는 미션을 클리어하며 살아남게 된 동료들과 함께 이렇게 선언한다. “내 동료들과 이 이야기의 결말을 새로 쓰겠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독자를 중심으로 여러 동료가 같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란 점에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공동작업의 예술 이야기로도 읽힌다. 실제로 이 작품은 싱숑의 웹소설이 원작이고, 그 작품은 웹툰으로도 리메이크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번엔 영화로 제작되면서 김병우 감독은 물론 안효섭, 이민호, 채수빈, 신승호, 나나 등 무수한 배우와 판타지 세계를 구현해 내기 위해 시각효과(VFX)팀부터 무술, 미술 등의 팀들까지 협력했다. 그들 모두가 힘을 합쳤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이 판타지(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는)가 실감 나는 장면들로 채워질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역시 이 작품의 주인공 김독자 역할을 연기한 안효섭이 있다. 그는 어려서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그곳에서 드라마·영화를 보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스크린 속 주인공이 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상상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JYP엔터테인먼트의 제안을 받고 3년 정도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회사를 나왔고, 다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 대부분 연예인의 삶이 그렇겠지만, 그의 삶 역시 독자의 위치에 있다가 실제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겪었다. 그저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자신이 스크린 속 주인공이 된다는 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세계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면서 그 불가능이 현실로 바뀌었다. 그건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었고, 그의 주변 많은 이의 도움과 협력이 있어 가능했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출연 모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출연 모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드라마 '사내맞선' 출연 모습. 화면 캡처
드라마 '사내맞선' 출연 모습. 화면 캡처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출연 모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출연 모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2015년 MBC 단막극 ‘퐁당퐁당 LOVE’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그는 ‘한번 더 해피엔딩’ ‘딴따라’ ‘세 가지색 판타지-반지의 여왕’ 등의 단막극 주·조연을 거쳐 2018년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라는 작품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20년 ‘낭만닥터 김사부2’에서 서우진이라는 인물을 만나 급부상했다.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받은 그는 수상소감에서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많은 스태프와 감독·작가·선배님·동료분들이 믿고 이끌어 주셨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일이 혼자 하는 게 아닌 여러 동료가 함께했기에 이뤄 낼 수 있었다는 걸 분명히 한 것이다.

이후에도 판타지 사극 ‘홍천기’의 복합적인 캐릭터 연기로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로맨틱 코미디 ‘사내맞선’으로 글로벌 인기를 얻은 그는 대만 드라마 ‘상견니’ 리메이크작인 ‘너의 시간 속으로’로 글로벌 스타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게 된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킨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진우 역할로 목소리 연기에 도전했다. 어려서 캐나다에서 지내며 쌓은 영어 실력이 힘을 발휘했는데, 앞으로 글로벌시대에 어울리는 이 배우의 행보에 기대감을 갖게 되는 대목이다.

안효섭은 대중의 찬사에도 늘 “부족함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연기 발성을 위해 성우학원을 다니고, 자세 교정을 위해 필라테스를 배우는 등 연기에 최적화된 몸을 유지하고자 노력해 왔다고 한다. 이런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건 작품 속에서 동료들과 함께 합을 맞춰 나가는 과정에서다. SBS 연기대상에서 ‘홍천기’로 김유정과, 이듬해 ‘사내맞선’으로 김세정과 연이어 베스트 커플상을 받고 ‘낭만닥터 김사부3’로는 남자 최우수연기상과 더불어 올해의 팀상을 받은 사실이 도드라져 보이는 건 그래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김독자는 안효섭이란 배우의 성장 과정을 온전히 담아내는 인물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한때 독자 입장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세계에 뛰어들어 주변 동료들과 함께 스스로의 서사를 써 나가고 있는 안효섭의 모습이 겹쳐져서다.

세상의 이름 모를 장삼이사로 살아가는 독자들이라면 그 독자 위치에서 나아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세우는 새로운 선택을 해 보면 어떨까.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의 결말을 새로 써 나가고 있는 안효섭처럼.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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