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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대와 함께하는 ‘국방안보 진단’] ‘국방기술혁신원’ 설립, 민간기술 군사 영역 신속 적용

입력 2025. 07. 29   16:08
업데이트 2025. 07. 2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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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대와 함께하는 ‘국방안보진단’  
32. 정부의 기술개발 시대에서 민간기술 적용의 시대로: 새 정부 국방전략 기획을 위한 다섯 가지 제언

국방획득 민간기술 중개 플랫폼 구축 
규제 완화 군·산·학 공동 기술실험 확대
AI 등 정책결정자의 기술문해력 강화
실용 중심 기술협력 연합체계 필요

 

정부 주도의 기술개발 시대는 지나고, 민간이 선도하는 기술을 정부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인가가 안보정책의 핵심이 됐다. ‘한·미·일 기술 리더 연수(TTLT)’ 프로그램은 이러한 전환을 상징한다. 이에 따라 한국은 ‘국방기술혁신원(K-DIU)’ 설립, 민간기술 중개 플랫폼 구축, 실험공간 확대, 정책결정자의 기술 문해력 강화, 실용 중심의 기술협력 체계 구축 등 다섯 가지 정책적 전환이 요구된다. 정리=윤병노 기자

 

민간이 선도하는 기술을 정부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안보정책의 핵심이 됐다. 우리나라도 기존 방위산업 진흥책을 넘어 기술 적용 중심의 전략구조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9일 열린 ‘2025 방위산업 부품·소재 장비 대전’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다양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조종원 기자
민간이 선도하는 기술을 정부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안보정책의 핵심이 됐다. 우리나라도 기존 방위산업 진흥책을 넘어 기술 적용 중심의 전략구조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9일 열린 ‘2025 방위산업 부품·소재 장비 대전’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다양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조종원 기자

 


국가 중심 기술개발서 민간 혁신기술 적용으로

1960년대 시작한 영화 ‘007시리즈’에서는 국가연구소가 혁신적인 기술로 최첨단 무기를 만들어 제임스 본드에게 제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정부가 주도하는 첨단 혁신기술 개발의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도 항공우주국(NASA)과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군사용 기술을 발전시켜 민간에 적용하며(Spin-off) 사회 발전을 이루는 것이 대표적 모델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2025년의 풍경은 다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국가 전체 연구개발(R&D)은 공공이 25%, 민간이 75%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때 엔비디아(NVIDIA)의 고성능 인공지능(AI) 칩 공급을 외교적 카드로 활용했다. 민간 기술이 공공 외교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국은 또 전략적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해 화웨이 제재와 함께 고사양 반도체 칩의 중국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이처럼 반세기 만에 민간이 혁신적 기술개발의 주체가 됐고, 정부는 이를 정책수행(외교·안보·군사 등)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국가 간 협력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존스홉킨스대학교 주관으로 한·미·일 TTLT가 개최됐다. 이 프로그램은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합의 후속 조치로, 한·미·일 중견 정책결정자 약 30명이 미국에 모여 민간의 첨단기술을 정책으로 녹여내는 문제를 토의했다. 기술 및 정책·전략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으며, 실리콘밸리 혁신의 현장에서 민간기술 생태계를 직접 체험했다.

TTLT에서의 치열한 토의를 바탕으로 새 정부의 국방전략을 구상하는 지금, 국가 중심의 기술개발에서 민간기술 기반의 혁신 적용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다섯 가지 정책적 제안을 하고자 한다.


다섯 가지 정책적 제언 

첫째, 민간기술 적용을 위한 제도적 프레임워크 정비 및 K-DIU 구축이다. 미국 국방혁신단(DIU·Defense Innovation Unit)은 2015년 실리콘밸리에 설립돼 60~90일 내 시제품 계약, 12~24개월 이내 대규모 전력화를 목표로 민간의 첨단기술을 신속하게 군사 영역에 적용해 왔다. DIU는 실리콘밸리, 오스틴, 보스턴, 시카고, 워싱턴DC 등에 분산 거점을 두고 민간과 군의 기술 생태계를 빠르게 연결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국방혁신 4.0 기본계획’에서 ‘K-DIU’ 설립을 추진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거점 구축, 전담 예산 및 독립적 조직 체계는 확립되지 않고 있다. 국방부 직속으로 K-DIU를 독자 조직화하고, 민간기술을 신속히 전력화할 수 있는 전담 예산과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DIU처럼 판교 등 첨단기지에 K-DIU 실무지휘소 설립을 검토하고, 정기적으로 민간기술 로드쇼 및 시연회를 개최함으로써 기술 소통을 활성화해야 한다. 기존 방위사업청 중심의 획득 프레임워크를 개편해 모듈형·오픈아키텍처 기반 민간기술 수용 체계와 민간 주도 조기 적용 메커니즘(AI·양자·위성통신 등)을 별도 규정으로 제정해야 한다.

둘째, 국방획득 시스템 내 ‘민간기술 중개 플랫폼’ 구축이다. 실리콘밸리 등 민간 혁신 생태계에는 정부가 알지 못하는 기술적 해법이 존재한다. 미 국방부가 DIU를 통해 민간기술을 선제적으로 발굴하듯, 한국도 ‘기술·전력 중개 조직’을 설치해 민간 스타트업 및 글로벌 기업의 기술을 선별하고, 국방 운영 요소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조정·중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플랫폼은 단순 구매가 아니라 공공·민간 공동개발을 유도하는 창구로 작동해야 한다.

셋째, 군·산·학 공동 기술실험 확대다. 기술의 가능성을 제도화하기 위해선 규제 완화와 함께 현실적 실험장이 필요하다. 현재 일부 AI 기반 작전지원체계나 드론 감시 시스템은 기술적으로 성숙했지만, 군사적 환경에서의 검증 기회 부족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2027년 완공될 국방과학연구소 삼척 해양연구센터 육상체계통합시험장(LBTS)이 대표적인 정부 주도 국방실험공간으로, 이러한 공간의 확대가 필요하다.

넷째, 정책결정자의 기술문해력 강화다. AI, 자율무기체계, 우주전장 등 신기술 기반의 전략 환경에서는 정책결정자가 기술적 기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이에 TTLT처럼 과학기술과 전략·외교를 연결하는 복합형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을 국내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국방대·KAIST·과학기술정통부·국방과학연구소 등과 연계해 기술과 정책·전략의 교차점을 이해하는 테크·정책 하이브리드형 고위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기술 전문가의 정책직 진출을 제도적으로 열어야 한다. 그동안 미국의 ‘AAAS 펠로십(AAAS Science & Technology Policy Fellowships)’처럼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의 수용도 필요하다.

다섯째, 실용 중심 기술협력 연합체계 구축이다. 미국이 TTLT를 한·미·일 간 기술동맹 거버넌스 훈련의 장으로 활용하듯, 한국도 기술안보를 외교의 핵심축으로 삼아야 한다. 이에 실제적 이익을 위해 한·미·일을 넘어 오커스(AUKUS)·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쿼드(QUAD) 등의 기술협력 네트워크에 준회원 형식으로 연계하면서 공동 연구개발(R&D), 공급망 보호, AI 윤리 규범 수립 등 기술적 이익이 있는 누구와도 표준화 협약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단순한 방위협력이 아니라 ‘기술안보연합’으로 확장해야 한다.

과거 정부는 기술을 생산하고 민간은 수용했다면, 이제는 민간이 기술을 선도하고 정부는 그 기술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적용할 것인가를 설계해야 하는 시대다. TTLT 프로그램은 이 패러다임 전환의 가교 구실을 하고 있다. 한국 역시 기존 방위산업 진흥책을 넘어 기술 적용 중심의 전략구조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이제 과제는 ‘어떤 기술을 정부가 개발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민간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국방에 녹여낼 것인가’이다.

 

배학영 국방대학교 국방안보대학원 교수
배학영 국방대학교 국방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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