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교수실에서

서로에게 베개가 된다는 것

입력 2025. 07. 28   14:40
업데이트 2025. 07. 2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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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곤 국립공주대학교 안보학 교수
김희곤 국립공주대학교 안보학 교수



우리는 가끔 누군가의 ‘베개’가 된다. 기대고 싶은 순간에 기대어 오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 존재. 그러나 그건 단지 위안의 상징만은 아니다. 관계란 그 사람의 자세와 기분, 습관과 선택에 따라 ‘눌리는 존재’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누군가의 ‘베개’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편안함을 주는 존재가 됐다는 뜻이 아니다. 그 사람의 기분, 상황, 선택에 따라 ‘베어지는 존재’가 됐다는 의미기도 하다. 

생각해 보자. 베개는 본래 사람의 머리를 받치는 물건이다. 하지만 누구의 머리를, 어떤 자세를, 어떤 시간에 받치느냐에 따라 베개 형태도, 압력도, 심지어 수명도 달라진다. 하루는 품에 안긴 채 애지중지 되다가도 다음 날엔 침대 밑으로 굴러 방치되기도 한다.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필요에 따라, 선택에 따라, 혹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그렇게 위치가 바뀌고, 무심히 버려지기도 한다.

역사는 인간관계의 이런 유동성과 책임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 조선의 정조는 신하 채제공을 가장 믿었지만 정치적 상황에 따라 멀리하기도 했다. 유럽 궁정의 결혼은 사랑이 아닌 권력과 외교의 선택이었고, 20세기 냉전 시기 국가 동맹도 철저히 ‘상대의 필요’에 따라 움직였다. 오늘날 기업과 직원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우린 한식구입니다”라며 자기 필요에 따라 웃고, 부추기다가도 그 필요가 다했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정리해고 대상이 되고 만다.

우리는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존재이며, 또 누군가를 선택하는 주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선택이 얼마나 서로의 관계에 인간적인 ‘배려’와 ‘책임’을 동반하느냐다. 배려와 책임이 없는 선택은 소모와 버림을 낳고, 결국 사람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베개도, 관계도 원래 정해진 모양이 없다. 누군가의 감정에 따라, 필요에 따라, 기분에 따라 위치가 달라진다. 언제는 필요한 존재였다가도, 어느새 낡았다고 버려지는 존재가 되고 만다. 문제는 그렇게 소모되고 버려지는 관계들이 반복되면 결국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필요에 따라 사람을 고르고, 나의 사소한 불편함에 상대를 탓하며, 진심을 조롱한다면 결국 관계는 일회용이 된다. 오래된 친구가, 깊은 연인이, 함께 버텨온 동료가 사라지는 것이다.

웃픈 이야기를 하나 해본다. 친구가 연애를 시작하자 그가 하소연했다. “걔는 왜 나한테 자꾸 베개 탓만 해? 자면서 뒤척이는 자기 버릇은 모르면서!” 그 말에 나는 말했다. “넌 여친의 베개가 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베개가 돼주는 척하면서 너도 편하게 눕고 싶은 거야?”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둘은 서로의 수면 자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관계는 그렇게 작은 배려와 책임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늘 선택하고, 선택받는다. 그 선택이 ‘지금의 나에게 편한가?’만을 기준으로 하면 결국 누군가를 자신이 눌러놓고도 그 눌림 상태만 탓하게 된다. 베개가 된다는 건 묵묵히 받쳐주는 일이다. 땀에 젖고, 구겨지고, 형태가 변하면서도 말없이 곁을 지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이 쌓이면 오래된 베개처럼 관계에도 흔적이 남는다. 관계는 상대를 깊고 넉넉하게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베개가 되기로 했을 때 ‘그 무게를 감당할 준비는 돼 있는지, 자신으로 말미암아 형태가 변한 베개 모양을 탓하지 않을 준비’가 먼저 돼야 한다. 베개와 나의 관계처럼 가까울수록 더 그렇다. 관계는 서로를 배려하고 책임지는 일이다. 오늘 밤은 꿀잠을 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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