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72주년 기획 영웅을 찾는 영웅들
74년간 6·25 전사자 유해 지킨 이강옥 옹 이야기
1951년 6·25전쟁 격전지로 논밭 주변 도랑에 시체들 쌓여
마을 주민들 농사 준비하며 인근 야산에 전사자 시신 매장
이옹, 유해 안장 위치 기억하기 위해 밭 사들이고 나무 심어 표시
육군1사단 74년 만에 유해발굴 착수, 시신 5구·유품 40여 점 수습 성과
올해 88세인 이강옥 옹은 경기 파주시 법원읍 동문1리 토박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 겪은 6·25전쟁이 아직도 생생하다. 특히 이옹 머릿속엔 1951년 겨울,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마을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동네 주민들이 시신 수습에 나섰다. 14살 꼬마였던 이옹도 군인들이 가지고 있던 총기를 옮겨 날랐다. 마을 뒷산 한쪽에만 수십 명이 안장됐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땅속에 잠들어 있던 무명(無名)용사는 올해 6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74년간 이들을 기억하며 곁을 지킨 이옹 덕분이었다. 글=이원준/사진=조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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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
지난 16일 동문1리 마을회관에선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에 큰 도움을 준 이강옥 옹에게 감사장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행사에는 주인공 이옹을 비롯해 유해발굴작전에 참여한 육군1보병사단 방미대대 장병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마을회관 인근에 있는 이옹 소유 밭에서는 지난 6월 9일부터 2주간 유해발굴작전이 전개됐다. 74년 전 이곳에 6·25전쟁 전사자 수십 명을 매장했다는 이옹의 증언에 따라서다. 작전에는 굴착기를 비롯한 중장비까지 투입됐다. 매장 추정 지역을 샅샅이 발굴한 결과 이옹 말대로 6·25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 5구와 총탄·수류탄 등 유품 40여 점이 나왔다.
이번 작전은 이옹의 증언과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신이 직접 유해를 수습했다는 증언은 다른 어떠한 말보다 신빙성이 높았다. 게다가 이옹은 74년간 마을에 거주하며 매장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날 이옹에게 감사장을 전달한 양진혁(소장) 1보병사단장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라며 그의 헌신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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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간 유해 지킨 할아버지
74년 전에도 이옹은 동문1리 마을에 살고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동네 사람들은 가까운 문산으로 피란 갔지만, 이옹의 가족은 마을을 지켰다고 한다. 할아버지에게 6·25전쟁은 ‘굉음’으로 기억된다. 폭격기들이 푸른 하늘을 날아다녔고, 낙하산을 멘 군인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탱크와 야포가 마을 주변 도로를 분주히 오갔다.
1951년 초 추운 겨울날, 마을 주변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시체들이 논밭 주변 도랑에 즐비하게 쌓였다. 마을 사람들은 봄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시체들을 안장하기로 했다. 이옹은 정확히 뭘 하는 줄도 모른 채, 어른들 손에 이끌러 일손을 도왔다고 회상했다.
“삼촌들, 마을 아저씨들과 함께 논을 정리하러 나왔어. 나를 포함해 10여 명이었던 것 같아. 어른들은 시신을 실어 날랐고, 나는 그 옆에 있던 총·실탄 등을 옮겼어. 시신 틈에서 수류탄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학교에 가서 ‘수류탄 만져봤다’고 자랑했던 기억이 나. 그때는 사람 죽은 줄도 몰랐고, 무서운 것이 없었지.”
이옹과 마을 주민들은 전사자 시신을 인근 야산 등에 매장했다. 이 중 40~50구는 마을과 가까운 야산 입구 쪽에 수습했다. 이곳은 이후 74년간 이옹이 돌보는 자리가 됐다.
“이번에 유해를 발굴한 지점은 원래 야산과 밭의 경계 지점이었어. 당시에는 밭이 당숙 소유였는데, 한 50년 전에 내가 그 땅을 사서 지금까지 가꿔왔지.”
할아버지는 유해를 안장한 정확한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20여 년 전 소나무 묘목을 가져와 밭에 심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가족들이 안장 장소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자식들에겐 옛날 소나무 밑에 죽은 사람들을 묻었노라 이야기했다.
왜송은 무럭무럭 자랐다. 이옹은 트랙터가 밭을 갈러 오갈 때도 소나무 주변은 피해달라고 말했다. 이름 모를 전사자를 위하는 마음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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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문 활동으로 할아버지 증언 확보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지난해 여름 육군1군단 유해발굴팀의 탐문 활동을 통해 알려지게 됐다. 유해발굴팀은 탐문 활동 중 유해를 수습해 돌봐왔다는 할아버지의 증언을 확인했고, 1년 뒤 이곳에서 본격적인 발굴작업에 착수했다. 들깨·옥수수·고사리 농사로 바쁜 시기였지만, 할아버지도 흔쾌히 승낙했다.
이옹은 매일같이 현장에 나와 발굴작업을 지켜봤다고 했다. 한여름 고생하는 장병들을 위해 수박과 음료수도 자주 챙겨왔다.
“장병들이 땀 뻘뻘 흘리며 정말 고생했지. 무더위에 삽질하고 흙을 실어 나르고…. 나도 1사단에서 복무해서 더 마음이 갔던 것 같아. 아쉬운 점은 74년 전엔 수십 명을 매장했는데,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유해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야.”
할아버지 밭에서 발굴된 유품은 아군과 적군의 것이 혼재돼 있었다. 수습된 유해 5구는 약식제례를 거친 뒤 현재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서 정밀 감식 절차를 밟고 있다.
유해발굴은 이옹의 밭 이외에도 주변 야산 등지에서 펼쳐졌다. 다른 곳에도 시신을 수습했다는 이옹의 증언에 따라서다. 다만, 다른 장소에서는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과 군단 유해발굴팀은 농번기가 끝난 뒤 올해 가을 동문1리 일대에서 유해발굴작전을 재개할 방침이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확인하는 것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김대혁(소령) 1군단 유해발굴장교는 “이곳 마을은 문산·광탄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6·25전쟁 당시 부대 이동이 잦았던 지역”이라며 “할아버지의 증언도 있고 유해 매장 가능성이 커서 추가 발굴작전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기쁘지만 시원섭섭
“언젠가는 꼭 가족 품으로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나무를 심고 평생을 돌봐왔어. 전사자들께서 내가 살아있는 동안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어 기쁘지. 그런데 한편으론 섭섭하기도 해”
이옹은 이날 받은 사단장 감사장을 지그시 바라보며 소감을 전했다. 이름 모를 유해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 시원섭섭한 표정이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고령에도 매일 하우스를 찾아 작물을 돌보고, 유해발굴이 마무리된 밭을 찾는 것이 그의 일과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옹은 유해발굴에 힘쓴 장병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유해발굴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우리 장병들이 애를 많이 쓴다는 걸 이번에 알았어. 정말 고생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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