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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낯선 거리 이방인이 되어 거닐다

입력 2025. 07. 24   17:07
업데이트 2025. 07. 2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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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넘어, 세계적 번화가 명동

흥겨운 K팝·다양한 언어 함께 흐르고
화려한 네온사인·고딕양식 건물 공존
가장 서울답고 동시에 이국적인 동네
골목 거닐며 역사와 현재를 느껴보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 상권은 누가 뭐래도 명동이다. 서울의 다른 번화가는 부침이 있었으나 명동만큼은 내내 흥했고, 사랑받았다. 점포 임대료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비싼 곳이기도 하다. 줄곧 1위였으나 최근 북창동에 1위 자리를 넘겨줬다. 이유는 코로나19가 창궐할 당시 공실률이 높아져서다. 관광객보다 직장인이 많아 상대적으로 타격이 작았던 북창동에 1위를 내줬다고는 해도 대한민국 최고 번화가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삼국시대 백제의 중요 교통·군사 요충지였고, 조선시대엔 ‘명례방’으로 불리며 사대부 저택들이 즐비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부촌이었던 셈. 지금은 의류와 화장품, 먹거리로 꽉 채워진 세계적인 쇼핑명소다. 명동을 걷는다는 건 대단한 특권이다. K컬처의 영향으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거리이자 골목이 됐다. 수많은 외국인의 설렘과 웃음소리에 섞여 명동을 걷다 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어진다. 대한민국의 자산이고 보물이니 국군 장병 여러분은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 귀한 휴가를 받았다면 더욱더 화려해진 명동을 거닐어 보자.

명동거리에선 외국인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필자 제공
명동거리에선 외국인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필자 제공



이토록 국제적인 명소

낮 기온이 34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였다. 낯선 외국인들과 섞여 걷는다는 것이 이젠 어색하지 않다. 명동이라는 공간은 국적이 지워지고, 목적조차 깜빡 잊게 만든다. 어떤 이에게는 쇼핑이 목적일 테고, 또 누군가에겐 단순한 산책일 수도 있다. 그날따라 별다른 생각 없이 걷기만 했다.

인파 속에서도 이상하게 고요했다. 붕어빵 굽는 냄새가 골목을 메우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울리는 거리에서 처음으로 ‘서울이 낯설게 아름다웠다’. 어디선가 K팝이 흐르고, 다국어가 섞인 대화로 시끌벅적하며, 화려한 네온사인과 100년 넘은 성당의 고딕 아치가 공존한다. 이질감과 익숙함이 교차하며 풍요로운 산책이 된다. 이 비현실적 감각에 휘청휘청 걷다 보면 자신이 한국인인지, 처음 방문한 외국인인지 도통 헷갈린다. 명동은 그런 곳이다. 서울의 가장 서울다운 얼굴이면서 동시에 가장 이국적인 풍경을 가진 곳. 명동을 걷는다는 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수많은 ‘현재’가 교차하는 다중우주를 체험하는 일이다.

 

 

명동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노상 점포에서 만드는 튀김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명동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노상 점포에서 만드는 튀김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예부터 사람을 끌어모았던 치명적인 매력 

명동은 어머니·아버지 세대부터 지금의 20대까지 추억 한둘쯤은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쇼핑·관광명소다. 어릴 때 명동에 미도파백화점이 있었다. 지금은 롯데백화점에 흡수됐지만,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 최고의 백화점이었다. 서울 변두리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당시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미도파백화점을 어린이날만 되면 찾곤 했다. 움직이는 계단, 에스컬레이터는 무척이나 신기한 시설이었다. 백화점에서 뭘 살 가정 형편은 아니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고, 내리는 재미에 만족해야 했다. 1980년대 명동은 패션과 예술의 심장부였다. 세련된 젊은이들이 거리를 누볐고, 진열된 옷들은 대한민국 유행을 이끌었다. 명동예술극장, 충무로 인근 영화관을 중심으로 연극·영화·음악이 가장 먼저 꽃피웠으며, 소극장운동이 명동 골목골목에서 펼쳐졌다. 글 좀 쓴다는 사람, 배우, 음악인들 역시 명동의 카페와 다방에 모여 가난과 예술의 애환을 나눴다.


조선시대 최고의 부촌 

명동은 조선시대 한양도성 내 중심부였던 명례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선시대엔 고관대작의 저택이 늘어선 대표적인 부촌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근대적 도시계획에 따라 상업지로 재편되며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서울역·시청·을지로·충무로 등과 인접해 유동인구가 집중되는 교통 요충지였으니 당시 표현으론 인산인해, 즉 사람이 산과 바다를 이루는 거리였다. 유행을 알고 싶다면 무조건 명동으로 와야 했다.

광복 이후 명동은 미군정의 영향 아래 외국 문물이 유입되던 창구 역할을 했으며, 1950~1970년대에는 문인·예술인들이 활동하던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다방에서는 시와 음악이 흐르고, 거리에선 통기타 가수와 연극인이 버스킹을 했다. 명동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청춘들은 자부심을 느꼈다. 외국인에게는 한국 문화를 접하는 첫 관문이며 유일무이한 명소였다. 번화가가 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으로 완벽한 위치였고, 모든 문화를 흡수하는 독점적인 위치에서 사람들을 홀리는 신세계였다.


명동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노상 점포에서 만드는 튀김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성지

1980년대 명동은 단순히 상업지구를 넘어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은 시위대의 피난처이자 농성 장소로서 큰 역할을 했다. 경찰이 성당 진입을 시도했지만, 종교계의 반발과 시민들의 저지로 무산되면서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했다. 명동성당은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고딕 리바이벌 양식 건축물로, 수직성을 강조한 뾰족한 종탑과 첨두아치가 인상적이다. 46.7m에 달하는 웅장한 종탑과 날카롭게 치솟은 아치형 구조는 고딕 건축 특유의 장엄함과 경건함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외형 덕분에 ‘뾰족집’이란 애칭으로도 불리며, 한국 근대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명동성당 건너편 YMCA 건물 3층의 ‘카페 파인즈’에 가면 명당성당의 전경 덕에 완벽한 유럽이 된다. 날씨 좋은 날 테라스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음미하면 ‘여기가 프랑스 파리인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인가’, 유럽의 어디쯤이 돼 여행자를 몽롱하게 만든다. 같은 건물에 ‘뷰티 플레이(Beauty Play)’라는 화장품 체험장이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원하고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이 운영하는 국내 중소 화장품 기업 전시장이다. 선크림이나 비비크림 등으로 데이트 전 간단히 얼굴을 정리하거나 머리 손질을 공짜로 할 수 있는, 참으로 유용한 곳이다.


또 하나의 자랑은 국수?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국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론 ‘명동교자’의 칼국수다. 진한 닭육수에 톡 쏘는 마늘김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꿀 조합이다. 김치라는 흔한 음식을, 이렇게 독특하게 만드는 대담함이 놀랍다. 설탕이 들어갔겠지만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이 마법의 김치는, 마늘을 아낌없이 넣어 쓴맛에 가깝다. 진하디진한 닭육수는 처음엔 눈이 번쩍 떠질 정도로 맛있지만, 먹다 보면 진함이 무거움으로 변하면서 지치게 된다. 그때 큼직한 마늘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어 주면 느끼함을 말끔하게 제거해 준다. 깨끗하게 정화된 혀는 새롭게 국수를 흡입할 힘이 생긴다.


‘남산타워’ 전망대 근처 데크와 계단 주변에 관광객들이 걸어 놓은 수많은 자물쇠들.
‘남산타워’ 전망대 근처 데크와 계단 주변에 관광객들이 걸어 놓은 수많은 자물쇠들.



이것이 K경치, 남산타워

한국인이라면 아무래도 외국인보다 좀 대충 보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명동에 왔다면 남산타워를 꼭 가 보도록 한다. 안 가 본 곳도 아니고, 굳이?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인해 남산타워가 엄청난 인기란 말을 듣고 호기심에 올라가 봤다.

마침 장마가 끝나고 모처럼 맑은 날이었는데,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훨씬 많았다. 날씨 덕인지, 오랜만의 방문이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치가 충격적으로 아름다웠다. 대도시 중 산으로 둘러싸인 곳은 거의 없다. 외국인들은 안다. 서울의 풍경이 얼마나 특별하고 아름다운지. 얼마 전 다녀온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야경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못지않은 풍경이 반짝반짝 여행자들을 반기고 있었다. 예전엔 홍콩이나 일본 도쿄, 미국 뉴욕과 비교해 서울은 뭔가 좀 아쉬웠다.

지금은 자랑스럽기만 하다. 걸어서 올라간다면 빽빽한 숲의 정기를 충전할 수 있다. 외국인들의 감격하는 표정을 보니 덩달아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언제라도 올 수 있는 건 맞지만, 그런 마음으론 평생 못 와 볼 수도 있다. 그러니 날씨가 맑은 주말, 명동을 거쳐 남산타워 아래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코스를 강력히 추천한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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