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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들이켠 소주보다 쓴가, 그럼에도… 외친다, 인생이여 만세

입력 2025. 07. 22   15:33
업데이트 2025. 07. 2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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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스테이지 - 뮤지컬 ‘프리다’ 

유년기 질병과 사고

남편의 외도까지…
갈기갈기 찢겨진 삶
예술로 승화시킨 여인
세상과 이별하기 전날 
가상의 쇼 출연해
삶의 긴 여정 되짚어
고통과 환희 노래
김지우 농익은 연기 굿 
안무가 아이키 변신 눈길

뮤지컬 ‘프리다’ 공연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프리다’ 공연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작열하는 태양, 깃발처럼 펄럭이는 스카프, 검고 붉은 선율의 그림들. 눈을 감으면 프리다 칼로가 그려낸 삶의 풍경이 스크린처럼 펼쳐진다. 유년기의 질병, 교통사고, 반복된 유산, 남편의 외도까지. 어디 하나 부서지지 않은 곳 없는 삶이었지만 프리다는 끝내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를 외쳤다. 뮤지컬 ‘프리다’는 바로 그 불굴의 인생을 무대 위로 소환한다.

이 작품은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혁명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삶을 다룬 창작 뮤지컬이다. EMK뮤지컬컴퍼니가 2022년 초연, 2023년 재연을 거쳐 올해 삼연으로 다시 무대에 올렸다. 초연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재연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 이번 삼연은 대학로 NOL 유니플렉스에서 공연 중이다. 대학로 첫 입성으로, 무대는 작아졌지만 에너지는 더 응축됐다. 작품이 차돌처럼 단단해졌다.

뮤지컬 ‘프리다’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 가상의 토크쇼 ‘더 라스트 나이트쇼’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액자극 형식의 뮤지컬이다. 주인공 프리다는 쇼의 진행자 ‘레플레하’, 죽음을 의인화한 ‘데스티노’, 이상적 자아 ‘메모리아’와 함께 유년기의 육체적 고통, 죽음의 턱밑까지 경험한 교통사고, 예술, 사랑, 상실과 죽음을 관통하며 긴 여정을 되짚는다.

이번 삼연에는 김소향·김지우·김히어라·정유지가 ‘프리다’, 전수미·장은아·아이키가 ‘레플레하’로 나섰다. ‘데스티노’는 이아름솔·이지연·박선영, ‘메모리아’는 박시인·허윤슬·유연정이다. 이 중 김지우, 아이키, 이아름솔, 허윤슬 캐스트로 관람했다.

김지우와 아이키는 모두 이번 시즌에 처음으로 합류했다. 김지우는 데뷔 때부터 지켜봐 온 배우다. 매체 배우 출신이지만 초기부터 놀라울 정도로 무대에 빠르게 적응했다. 10대 시절 첼로를 전공했다는 그는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개성적인 음색과 정확한 음정, 무시할 수 없는 성량을 지녔다. 게다가 코믹 연기도 일품이다.

요즘 뮤지컬 배우들의 전성기는 40대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슬슬 40대에 접어든 김지우도 연기가 깊어져 간다. 무대뿐만 아니라 무대 밖 삶의 경험도 배우에게는 텍스트가 된다. 김지우는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관객을 설득하는 배우가 된 것 같다.

 

뮤지컬 ‘프리다’ 공연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프리다’ 공연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프리다가 아이를 유산하고 오열하는 장면을 객석에서 보다가 ‘왁!’ 하고 터질 뻔한 걸 간신히 눌러 삼켜야 했다. 천장에서 무수한 꽃잎이 떨어지는 가운데 추는 프리다의 독무는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저세상 모드의 김소향 ‘프리다’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김지우는 좀 더 가까이 있는 프리다다. 손을 뻗으면 그 슬픔이 물컹하고 잡힐 것 같다.

아이키는 솔직히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대중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스우파’ 출신 안무가의 뮤지컬이라니. 춤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노래와 연기는 어떻게? 그런데 솔직히 많이 놀랐다. 기대 이상의 연기와 노래다. 음정은 정확했고, 연기도 나쁘지 않다.

레플레하는 배우들마다 자신의 특기를 선보이는 근사한 장면이 있다. 재즈의 즉흥연주, 클래식의 카덴차 같은 구간이다. 프리다를 유혹하는 꽤 긴 장면인데, 예를 들어 전수미는 이 장면에서 탭댄스가 유명하다. 아이키는 당연히 댄스타임으로, 뮤지컬 배우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그루브와 필을 보여 줬다. 이 근사한 안무는 아마도 직접 짰을 것이다. 아이키가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찾아 앞으로도 뮤지컬 무대에 자주 서 줬으면 좋겠다.

이 작품의 명넘버로는 ‘코르셋(Corset)’과 마지막의 ‘라비다(La Vida)’를 꼽고 싶다.

‘코르셋’은 교통사고 후 척추 보조기를 착용한 프리다가 절망을 뚫고 다시 일어서려는 장면에서 부른다. “멋진 인생 따윈 없어도 돼. 화려한 조명도 필요없어. 아직 사랑할 힘이 남아 있다면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어. 포기하지 마. 나 프리다 칼로”라는 가사는 고통을 견디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프리다의 자기 선언처럼 들린다.

‘라비다(La Vida)’는 극의 클로징 넘버로 프리다가 자신의 유작 앞에서 관객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장면을 타고 흐른다. 핏빛 수박 그림을 배경으로 프리다는 조용히 웃으며 샴페인 잔을 든다.

“고통이 스토킹해도, 기쁨의 눈물 가득 차. 라비다”라는 가사처럼 이 곡은 고통과 환희,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삶 전체를 축배처럼 들어 올린다. ‘라비다’는 죽음을 앞둔 이가 삶을 기꺼이 예찬하는 반어적 송가이며, 동시에 이 작품이 품은 메시지를 정점에서 터뜨리는 선언문이다. 드디어 프리다가 저 유명한 최후의 대사를 들려줄 시간이다.

“저는 이제 외출할 거예요.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괴로워서가 아니라 그만큼 충분했으니까요.”

이 작품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자, 삶에 관한 이야기다. 고통 속에서 피어난 예술, 절망을 부둥켜안은 웃음. 프리다 칼로가 캔버스에 그린 것은 인생의 상처와 환희,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넘어선 존재 자체였다. 뮤지컬 ‘프리다’는 그가 사는 동안 불길한 사이렌 소리가 울릴 때마다 외쳤던 단 하나의 문장을 무대 위에서 꿰어 붙인다. 이제 묻고 싶다. 당신의 인생은 어떠한가. 그 인생은 어젯밤 들이켠 소주보다 쓴가. 그럼에도, 비바 라 비다. 인생이여 만세. 사진=EMK뮤지컬컴퍼니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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