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스타를 만나다 - 엑스러브
보이그룹 혹은 걸그룹
이분법 벗어난 퍼포먼스
색다른 '젠더리스' 그룹
남성 멤버들 단체 트월킹
화려한 헤어피스와 네일
일회성 마케팅·콘셉트 아닌
모든 존재 아름다움 말하는
명확한 정체성에 입덕 속출
“이 팀, 혼성그룹 아니에요?”
함께 방송을 진행하는 후배 음악평론가에게 이 그룹을 추천하자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페이머스(FAMOUS)’와 ‘위키드(WICKED)’로 순항 중인 올데이 프로젝트 이야기가 아니다. K팝 최초의 젠더리스 그룹을 표방하며 가요계에 등장한 4인조 보이그룹 엑스러브(XLOV)다.
젠더리스, 어떤 성별로도 인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엑스러브에게 보이그룹과 걸그룹이란 이분법적 분류는 불필요하다. 장점만을 가져온 노래와 안무,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다 보면 이들이 내세우는 젠더리스의 개념이 일회성 기획을 넘어 굉장한 노력과 연구로 달성한 K팝의 새로운 성과임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엑스러브는 현재 K팝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이다. 순수한 음악과 무대 위 퍼포먼스의 힘만으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K팝 시장에서 눈도장을 찍는 데 성공했다. 올 1월 발표한 첫 싱글 ‘암마비(I’mma Be)’와 비교했을 때 지난달 13일 발표한 두 번째 싱글 ‘아이 원(I ONE)’은 확실한 반전을 만들어 가고 있다. 타이틀곡 ‘원앤온리(1&Only)’의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450만 회를 넘었다. 그룹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무대를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 팬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SNS에서 ‘원앤온리’ 무대에 부정적 반응이 나온 것도 사실이나 오히려 그 게시물로 인해 그룹의 존재를 몰랐던 팬들이 대거 유입되며 ‘입덕’ 인증이 늘고 있다.
철저히 준비된 그룹이다.
2015년 한·중 합작 K팝 서바이벌 프로젝트 ‘슈퍼 아이돌’을 시작으로 ‘언더나인틴’ ‘보이즈플래닛’ ‘빌드업’ 등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경력을 쌓아 온 우무티가 팀의 리더이자 주 프로듀서다. 중국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의 예술가문 혈통을 이어받은 우무티는 수년간의 노력 끝에 젠더리스 그룹을 함께할 동료를 모아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준비를 마쳤다.
“예술을 통해 많은 사람이 진정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원하는 모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고 싶다”는 당찬 포부 아래 대만 출신의 루이, 한국인 멤버 현과 일본인 하루로 구성된 다국적 그룹이 만들어졌다. 최근 거대 기획사에서 독립해 레이블을 설립하는 K팝 음악가가 많아지고 있다지만, 회사 유무와 상관없이 개인이 그룹의 청사진을 그리고 직접 멤버를 모아 음악과 안무를 선택하는 엑스러브 같은 경우는 확실히 독특한 사례다.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엑스러브의 K팝은 보이그룹과 걸그룹이라는 성별의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헤어피스와 네일, 컬러렌즈까지 총망라한 스타일링부터가 인상적이다. 대상화의 시선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존재만으로도 대체불가, 유일무이한 존재’ ‘각각의 아름다움은 항상 불타오르고 있다’는 앨범의 핵심 주제에 맞춰 과감하고 정확하게 자신을 표현한다.
트랙리스트는 더 재미있다. ‘유일무이’를 강조하기 위해 노래 제목에 모두 ‘1(일)’을 넣었다. ‘원앤온리(1&Only)’ ‘원오브러브(1 of Lov)’, 그리고 한국어로 ‘일’을 뜻하는 ‘비즈니스(BIZNESS)’다. 싱글 제목 ‘아이 원’은 ‘나는 원한다(I Want)’의 뜻과 동시에 ‘러브(I ONE)’로도 읽힌다.
불문율로부터 자유로운 그룹은 표현에서도 더 넓은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명확한 서사와 구조, 언어 유희가 치밀하게 엮여 있다.
엑스러브가 열망을 표현하고자 ‘원앤온리’와 ‘원오브러브’에서 선택한 핵심 장르는 아프로비츠와 아마피아노다. 2010년대 영국의 아프리카 이민자들로부터 발전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넓혀 나가는 음악이다. 나이지리아의 템스와 레마,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타일라의 활약으로 한국에서도 인지도를 쌓은 아프로팝은 르세라핌의 ‘스마트(Smart)’, 키스 오브 라이프의 ‘스티키(Sticky)’ 등 K팝 신에서도 히트곡을 낳으며 더는 낯설지 않은 장르로 자리 잡았다.
엑스러브가 탁월한 이유는 아프로팝을 도입하면서 장르 특징을 고유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앤온리’의 핵심 안무는 아크로바틱한 동작과 함께하는 트월킹이다. 아프로팝의 약진을 이끈 여성 아티스트들과 해외 여성 힙합 음악가들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춤이다.
여성 음악가의 트월킹은 대중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K팝에서, 특히 보이그룹과 남성의 트월킹이 희화화되지 않은 채로 하나의 완성된 무대를 선보인 사례는 엑스러브가 최초다. 커다란 포즈를 취하는 보깅댄스를 가미한 엑스러브의 트월킹은 성적 대상화와 문화 전유의 논란을 완전히 제거한 채 몽환적인 비트 위에서의 에너지를 강조한다는 비현실적 목표를 현실에서 구현하고 있다.
힙합곡 ‘비즈니스’는 어떤가. 보이그룹이 치마를 입고 무대에 선 경우는 많았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엔하이픈이 머릿속에 스쳐 간다. 하지만 폭 넓은 치마를 적극 활용하며 고난도 동작을 수행하는 엑스러브를 보면 보이그룹의 패션보다 걸그룹의 퍼포먼스가 먼저 떠오른다. 심지어 걸그룹도 섹시 콘셉트의 시대가 지나며 좀처럼 해답을 풀지 못하던 의상을 대범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K팝의 젠더리스 역사는 유구하며 오늘날 이를 거부하는 그룹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보이그룹과 걸그룹으로 양분돼 암묵적인 대중의 기대를 콘셉트로 구현했던 2000년대 이후 많은 K팝 그룹이 변화하는 소비자 수요에 맞춰 다양한 성적 매력을 표현해 왔다. 타이트한 티셔츠와 치마, 반바지로 퇴폐미를 강조하는 보이그룹들의 패션은 현재 대유행이다.
아쉽게도 이 흐름이 스타일을 넘어 노래로 각인된 경우는 태민의 ‘무브(MOVE)’를 제외하면 많지 않았다. 걸그룹의 젠더리스 도전 사례도 최근 아이들의 ‘굿 싱(Good Thing)’을 제외하면 흔치 않은 게 사실이다.
엑스러브가 그 벽을 허물고 있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조립해 만들어지는 오늘날 K팝 시장에서 프로듀서이자 리더인 우무티는 드물게 창작을 하고 있다. 단 4곡으로 재능을 증명하고 가능성을 제시했다. 계속 지켜봐야 할 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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