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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대와 함께하는 ‘국방안보 진단’] 안보 지형 전략적 공간 확보하라

입력 2025. 07. 15   16:20
업데이트 2025. 07. 1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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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대와 함께하는 ‘국방안보진단’
31. 샹그릴라와 향산포럼에서 본 미·중 경쟁과 한국의 전략 

미, 샹그릴라 대화서 동맹 역할 강조
중, 향산포럼서 글로벌 사우스 강화
‘선택’ 요구하는 미·중 전략경쟁 속
9월 서울안보대화 전략적 기회 삼아
실질적 협력의 장으로 발전시켜야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 격화 속에 아시아·태평양 안보 지형은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그 중심에는 서방과 중국을 각각 대표하는 국방장관 회의체가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중국이 주최하는 ‘베이징 향산포럼’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주관하는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다. 이들 회의는 단순한 안보 논의의 장을 넘어 미·중 양국이 각자의 안보 비전과 국제질서 구상을 경쟁적으로 제시하며 세력 결집을 시도하는 전략 무대가 되고 있다.


‘2025 샹그릴라 대화’, 미국의 대중 억제와 동맹의 역할 요구

지난 5월 30일~6월 1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2025 샹그릴라 대화’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회의였다. 미·중 전략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분수령이 됐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샹그릴라 대화에서 “공산주의 중국의 대만 침공 시도가 인도·태평양과 전 세계에 파괴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중국의 위협이 실재하고 임박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헤그세스 장관은 ‘힘을 통한 평화’를 위한 전략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전방 전개 병력을 제1·2도련선(오키나와~대만~믈라카 해협)을 따라 서태평양에 우선 배치하는 것이다. 둘째, 동맹 및 파트너들이 자국 방위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안보 의존자가 아닌 능동적 주체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셋째, 인도·태평양 산업 회복력 파트너십(PIPIR)을 통해 방위산업 기반을 재활성화하는 것이다.

아울러 헤그세스 장관은 동맹국에는 현실적 위협에 상응하는 국방비 증액과 방위 역량 강화를 책임 있게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유럽이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국방비를 늘리는 상황에서 더 큰 위협에 직면한 아시아 동맹국이 오히려 낮은 지출을 유지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또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기대면서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병행하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를 ‘단호한 애정(tough love)’이라고 표현했다.

샹그릴라에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다수 참가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 문제를 통해 중국을 압박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대한 북한군 지원과 중국의 이중용도 수출을 지적했다. 이처럼 샹그릴라 대화는 서방의 위협 인식이 집약되는 전략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다.


‘2024 향산포럼’, 글로벌 사우스 결집과 중국의 다극 구상

지난해 9월 13일 열린 향산포럼에서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와의 결속을 강화하고,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관한 대안을 제시했다. 시진핑 주석은 축하 메시지를 통해 다극체제 전환과 글로벌안보구상(GSI)을 강조하며, 평등과 질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세계질서를 발표했다.

이어 둥쥔 중국 국방부장은 강대국의 제로섬 사고와 약소국에 대한 압박을 비판하며 ‘편 가르기’가 아닌 상호 존중과 공존을 강조했다. 특히 소규모 동맹 서클보다 공동 이익을 중시해야 한다는 발언은 미국의 배타적 동맹 체제와 대비되는 중국식 포용 전략을 부각하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향산포럼에 참여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발언은 중국의 전략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줬다. 글로벌 사우스는 아시아·중남미·중동·아프리카의 신흥개발도상국을 말한다. 가령 파키스탄 합참의장은 중국과의 관계를 ‘검증된 전천후 전략적 협력’이라며 중국의 지역 리더십을 지지했다. 또한 I2U2(미국·UAE·이스라엘·인도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협력체)와 같은 소지역주의·배타주의를 지양해야 한다며 서방 주도의 협력 체제를 비판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쟁 중인 러시아가 중국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방차관은 중·러가 평등과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다극 질서를 구축하는 핵심 파트너임을 내세웠다. 그는 미국이 글로벌 우위에 집착해 대만해협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한·미·일 연대를 통해 한반도 안보 상황을 악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서방이 나토와 유사한 새로운 안보 블록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하려 한다는 시각도 덧붙였다.

물론 중국의 비전과 전략에는 분명한 모순이 존재한다. 중국은 글로벌안보구상에서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을 강조하면서도 남중국해에서는 일방적 영해권을 주장하고 국제법정 판결을 부정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영토주권 침해에 침묵하면서 평화 수호자를 자처하는 모습도 이율배반적이다. 글로벌발전구상(GDI)은 수원국에 ‘부채 함정’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향산포럼은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를 미·중 경쟁 속 우호 세력으로 결집시키려는 전략적 구상을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한국의 전략은? 국익 중심의 실용 모색 필요

두 포럼은 미·중 전략경쟁이 역내 국가들에 점차 ‘선택’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 국방장관은 “동맹국과 우방국이 중국에 종속되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며 동맹국의 분명한 입장을 촉구했다. 중국 국방부장은 ‘역외 세력 개입’을 비판하며 역내 국가들이 외부 압력 없이 자주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양측의 압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지지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전략적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오는 9월 개최될 서울안보대화(SDD)는 이러한 국면 속에서 주목할 만한 전략적 기회다. 향산포럼의 형식적 포용이나 샹그릴라 대화의 대중 견제 중심 틀을 넘어서 중견국 연대와 글로벌 사우스를 아우르는 실질적 협력의 장으로 서울안보대화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만의 포용적 안보 대화 브랜드를 구축하고, 강대국 경쟁 사이에서 건설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지역 불안정의 핵심 사안으로 지속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적 외교도 시급하다. 샹그릴라 대화에서 북한 위협은 러시아 전쟁 파병이나 국방비 증액을 정당화하는 사례로만 언급됐고, 향산포럼에서는 아예 논외로 취급됐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북핵 문제가 점차 주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한국은 북핵의 심각성과 시급성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회복하고, 이를 확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한국 조선업의 세계적 역량은 전략 자산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샹그릴라 대화에서 미국이 ‘동맹국의 세계적 함정 수리 능력’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주요 안보 현안에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같은 외교적·전략적 노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한국은 국익을 실현함과 동시에 국제질서 유지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건설적 행위자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숙연 국방대학교 교수
이숙연 국방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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